알파고와 과자

Posted by on Mar 12, 2016 in 강의노트,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나: “이번 주에 별일 없었어요?”
학생1: “뭐 맨날 똑같죠.”
나: “TV에는 이세돌이랑 알파고 얘기가 많이 나오던데요?”
학생2: “그것밖에 안나오던데요? ㅎ”
나: “ㅎㅎㅎ 그런가요?”
학생1: “네. 여기도 그 얘기 저기도 그 얘기…”
학생2: “인터넷에 알파고 CPU 천 몇 개, 이세돌, 휴먼 브레인 1, 커피 1 뭐 이런 짤 돌아다니는 것 봤어요.”
나: “아 저도 봤어요.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들하고도 그 이야기 많이 했어요?”
학생2: “아니 뭐 잘 몰라서…”
학생1: “친구들하고 내기 했어요.”
나: “아 무슨 내기요?”
학생1: “누가 이기나.”
나: “아 그래서 맞췄어요?”
학생1: “네. 맞춰서 과자 먹으러 가요.”
나: “아 과자 사주는 거예요?”
학생1: “네. 천원 씩 내서…”
나: “ㅎㅎㅎ 과자는 먹는 걸로?”
학생1: “네네.”
나: “알파고보다 과자!”
학생1: “ㅋㅋㅋㅋㅋ”

(구글, 딥마인드, AI 등의 개념에 대해 수박 겉핥기 식으로 설명)

나: “그래서 인공지능이 사람을 앞서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날이 올까요?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요. 어떤 영화에서 보면 사람을 지배하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학생1: “모르겠어요.”
학생2: “저 죽기 전까지는 안올 거 같아요.”
학생1: “안왔으면 좋겠어요.”
나: “저도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은 안왔으면 좋겠어요. 그럼 시간이 지나서 우리 다음 세대에는 어떨까요?”
학생2: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든 말든.”
학생1: “맞아. 죽은 다음에 알게 뭐야.”
나: (장단을 맞추느라) “ㅎㅎㅎㅎㅎ 그런가요?” (아이들 안보이게 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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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들이 살게 될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 친구들이 맞게 될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

오늘은 너무 심각했다.
다음 번엔 좀더 실없는 이야기를 하며
맛난 과자를 먹어보는 걸로.

2016.3.11.

Posted by on Mar 11,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인공지능에 대한 폭발적 관심, 쏟아지는 분석 속에서 입가에 내내 머무르는 단어. 인간과 기계가 사정없이 경쟁하는 시대, 더욱 천착해야 할 것은 ‘인간 두뇌의 우월함이나 패배’가 아니라 ‘대체될 수 없는 몸뚱아리’ 아닐까. 그 어떤 지력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아픔을 안고, 세상 모든 분노와 슬픔을 다 삼켜버린 고통에 찌들어버린 몸.

쓰기 – 표현물 vs. 사고의 도구

단시간에 글을 잘 쓰게 되는 방법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아는 글 잘쓰는 사람들이 가진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글쓰기를 완성된 사고의 표현(expression of complete thoughts)으로 보지 않고 사고의 도구(a thinking tool)로 이해하고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쓰는 게 아닙니다. 단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쓰는 것만도 아닙니다. 생각을 내어놓고, 검토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쓰는 것입니다. 손끝에서 나오는 텍스트와 머리 속 사고과정이 끊임없이 교섭하고 상호작용하는 과정, 보이지 않는 생각의 흐름이 보이는 텍스트가 되고 이것이 다시 사고의 재료가 되는 과정, 그 전부가 쓰기입니다. 이런 면에서 쓰기는 잡히는 것과 잡히지 않는 것을 엮어내는 신비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쓰기수업강의노트

알파고, 사회문화이론, 그리고 중재

Posted by on Mar 10, 2016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사회문화이론(sociocultural theory)의 중재 혹은 매개(mediation) 개념은 암묵적으로 인간의 의도적 도구 사용을 전제로 한다. 언어와 같은 상징적 도구이건 삽과 같은 물리적 도구이건 간에 인간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사용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인지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능력을 압도하는 인공지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주체적이고 의도적인 도구의 사용’이라는 대전제는 깨질 수밖에 없다. 인지적 부하를 덜어주거나 특정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역할을 넘어서, 인간의 사고와 의도를 계산해 내는 도구의 시대, 기존의 중재/매개 개념은 새롭게 정의되어야만 한다.

선생, 사서, 그리고 국회의원

Posted by on Mar 10,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간만에 급한 일로 택시를 탔다. 사범대로 가자 하니 기사 아저씨가 말을 꺼낸다.
“요즘에는 선생님 되기 진짜 힘들다던데.”
“그쵸. ‘고시’라고 부르잖아요.”
” 선생님 되기가 힘들어 그렇지 되면 좋지.”
“네. 경쟁률도 엄청나고요.”
“그럼 선생 하는 건가?”
“아뇨. 저는 교사자격증만 있어요.”
“임용고사를 합격해야 나오는 거 아니야?”
“그건 아니고요. 사범대 졸업하면 자격증을 주고, 그걸 가지고 공립학교에 가려면 임용고사를 봐야죠. 사립학교는 따로 시험을 보거든요.”
“아 그렇구만. 내 동생이 사립학교 선생이야. 옛날이라서 시험도 없었지. 그래도 돈 안내고 잘 들어가서 오래 했지. 이사장이 괜찮은 사람이었어.”
“아… 잘하셨네요.”
“선생도 좋고 사서도 좋은데…”
“네네. 사서 중요하죠. 근데 사람들은 오해를 하더라고요. 그렇게 많이 할일 없는 것처럼.”
“어이구, 사서가 일이 얼마나 많은데. 국회도서관 사서 같으면 그 일이 얼마나 많겠어. 완전 전문직이지. 그 왜 국회의원들은 말고. 시정잡배들이 너무 많아. 다 솎아내야 되는데, 그게 잘 안돼.”
“네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기사님 말씀이 맞아요.”
“내가 60댄데, 생각은 좀 젊게 하고 살려고 그래.”
“충분히 젊으신데요.”
“그런가? ㅎㅎㅎ”
“네네.”

간만에 ‘탈없는’ 대화를 나누고 내렸다. 사실 택시기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려면 살짝 용기를 내야 한다. 편안히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한 투자인데, 때때로 불편하고 위태로운 마음으로 택시에서 탈출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사서는 중요한 전문직이고,
국회의원은 솎아내야 한다.
선생도 괜찮은 직업이다.

알파고 그리고 교육

Posted by on Mar 9, 2016 in 강의노트, 과학, 단상 | No Comments

“인공지능은 저만큼 앞서가는데, 우리 는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여 아이들에게 뭘 가르치고 있는가?”라는 말은 “구글이랑 애플은 돈을 쓸어담는데 우리들은 뭐 하고 있는 건가?”라는 질문 만큼이나 허망해 보인다. 교육은 기술의 발전을 멈출 수도, 그 방향을 제어할 수도 없다. 눈앞에 거대한 실업이 보이는데 교육 타령을 하는 멘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감추는 언어

Posted by on Mar 9, 2016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인지언어학 | No Comments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협한다.”
기술과 자본으로 무장한 인간들이 그렇지 못한 인간들을 위협하는 게 아니고?

“월스트리트가 세계 경제를 위협한다.”
소수의 금융가들이 정치인들의 비호 하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게 아니고?

“후기 산업사회의 탐욕이 대규모 환경 파괴를 가속화했다.”
소수의 인간들이 대지와 바다에 독을 쏟아 붓고 수많은 동식물을 죽인 게 아니고?

언어는 많은 것을 감춘다.

아니 그들은
추상화와 메타포, 우회적 표현 뒤에 숨는다.

아무도 감춘 이 없다 말하지만
감춰진 것들이 세상을 지배한다.

교육 – 자투리 단상

Posted by on Mar 8, 2016 in 강의노트, 단상 | No Comments
1.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수업에 대한 고민만큼이나 절실한 ‘선생이 하고 싶은 수업에 대한 고민’
 
2. 답을 바로 알려주지 않는 일 만큼이나 중요한 ‘답이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기’
 
3. ‘호기심이 앎으로, 앎이 사랑으로 진화하는 과정’으로서의 교육.

The Sense of Style

수업 준비차 스티븐 핑커의 <The Sense of Style>을 읽고 있다.

전에도 지적했듯이 “유명한 사람은 뭘 해도 또 유명해지는 경향”이 있다. 인지과학 분야의 걸출한 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핑커가 글쓰기 책을 썼고, 언론은 열심히 ‘책광고’를 해주었다. 이곳 저곳에서 강연 요청 또한 쇄도했다. 학계에서는 더 유명해질 것도 없는 사람이지만 이번엔 대중적인 글쓰기 분야로까지 유명세를 넓혔다. 경제 뿐 아니라 학문과 출판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은 진리인 듯하다.

그렇다고 이 책에 고유한 강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가나 비평가가 아닌 인지심리학자가 쓴 글이기에 특정한 법칙을 제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지적 기제를 설명하려는 노력이 여기 저기 보인다. ‘내 말 들어. 이게 맞고 더 있어보여’가 아니라 ‘이렇게 써야 독자에게 더 확실히 전달돼. 내가 차근 차근 설명해 줄게’라는 식이다.

학문적으로 핑커를 좋아하건 그렇지 않건 그의 글쓰기 재주에 대해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의 필력과 입담의 노하우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소장해도 좋을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있는 분들께 아래 링크를 추천한다.

Guardian 리뷰
https://www.theguardian.com/science/2014/sep/03/the-sense-of-style-the-thinking-persons-guide-to-writing-in-the-21st-century-steven-pinker-review

New Yorker의 관련기사
http://www.newyorker.com/culture/cultural-comment/steven-pinkers-bad-grammar

Edge.org의 인터뷰
https://www.edge.org/conversation/steven_pinker-writing-in-the-21st-century

NYT 리뷰
http://www.nytimes.com/2014/10/19/books/review/steven-pinker-the-sense-of-style-review.html

핑커 자신의 소개
http://stevenpinker.com/publications/sense-style-thinking-persons-guide-writing-21st-century

겨울 방학때 이 책 독파 모임이나 해볼까. :)

그랬겠지

Posted by on Mar 5,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건물을 빠져나오자 마자 달린다. 열차 출발 10분 전. 역까지 대략 10분 거리. 설렁 설렁 걷다가는 열차를 놓칠 판이다. 비는 쏟아지고 신호는 유난히 길다. 우산은 바람에 휘청거리고 조바심난 걸음은 젖은 길 위에 미끄러진다.

시장통을 거의 지났다. 모퉁이를 돌면 역이다. 흐흐… 탈 수 있을 것 같다. 우산 무리의 틈을 잰걸음으로 빠져나온다. 희망이 보인다. 그런데…

“퍼벅. 쿠당.”

노인 하나가 쓰러졌다.
어… 움직임이 없다.
정말 꿈쩍하지 않는다.
잽싸게 다가가 어깨를 흔든다.

“괜찮으세요?”
“…”
“괜찮으세요?”
“…”
“괜찮으세요? 괜찮으세요?”
“괜찮은…지… 모르겠어.”
“어디 다치신 거 같으세요?”
“모르겠어… 어… 모르겠어…”

아… 술냄새가 진동한다. 순간 나까지 취한 줄 알았다.

“아, 약주 하셨어요?”
“어…”
“…”
“많이 했지. 너무 많이… 했지.”
“일단 일어나 보세요. 걸으실 수 있겠어요?”
“모르겠어… 모르겠어… 모르겠어.”
“진짜 힘드시겠어요?”
“고마워… 고마워…”

팔을 잡고 일어서는데, 비는 사정없이 쏟아붓는데, 지금 휘날리게 달리지 않으면 열차는 바이바인데, 표는 출발 시간 지나서 환불이 안될지도 모르는데, 지금 이런 상황에서 표값 생각나는 나는 참 못난 사람인데, 이 어르신은 나 혼자 일으키기엔 너무 덩치가 큰데, 아 이놈의 비는 사정없이 쏟아지는데…

그 순간 들려온 한 노중년 사내의 목소리.

“(노인에게) 괜찮으신 겁니까? (나를 보며) 괜찮으신 거 같아요?”
“크게 다치시진 않은 거 같은데, 약주를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술냄새를 맡은 사내) “아이고, 이런 날씨에는 약주를 적당히 하셔야죠.”
“그래야지. 그래야지.”
“비가 이렇게 오면 더 조심하셔야 되는데…”
“내가 너무 많이 먹었지. 비도 오는데, 너무 많이 먹었어. 너무 많이.”

사내와 힘을 합쳐 노인을 일으켜 세운다. 이제 사내와 노인의 대화.

“댁이 어디세요?”
“OO동, OO동.”
“그럼 택시 잡아 드릴까요?”
“아이구 고마워요. 고마워.”
“그럼 저쪽으로 좀 걸으시죠.”
“고마워. 고마워.”

노인을 겨우 부축해 큰길로 나왔다. 비는 지치지도 않고 쏟아 붓는데 제길, 빈 택시가 없다. ‘예약’ 사인을 건 차들이 무심히 스쳐간다. 그렇게 15분 쯤 흘렀을까.

“안되겠네. 콜택시를 불러야겠어요.”
“(사내의 2G폰을 흘끗 쳐다보며) 아 네 번호 있으시면 그렇게 해주세요.”
“‘뭐 차가 없다고요?” 어휴, 알았어요. 지금 주변에 차가 없다는데… 그냥 이게 젤 낫겠네.”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사내.

“여기 옆 지구대에 연락했으니 곧 올 거예요. 이게 젤 나을 거 같네요.”

바닥에 다시 철퍼덕 앉은 노인은 연신 엄지를 치켜 세운다.

“좋은 일 하시는 거여, 좋은 일.”

그러더니 다시 고개를 떨군다.

10분 쯤 지났을까. 금새 나타날 줄 알았던 순찰차가 보이지 않는다. 내 다리에 기대다시피 한 노인은 자꾸만 내 운동화를 매만진다. 내려다 보니 젖은 신발끈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있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 저기 오네, 저기.”

경찰차가 그렇게 반가왔던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사내와 나는 경찰에게 상황보고를 한다. 어디 다쳤을 지도 모른다. 술을 많이 드신 것 같다. 좀 수고해 주시라. 잘 부탁드린다.

노인은 경찰차에 실려갔다. 그렇게 다가온 사내와 나의 작별시간.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 정말 좋은 일 하신 거야. 진짜로.”
“도와주셔서 한 거죠. 저는 여기 잘 몰라서요. 이제 기차타러 가야 돼요.”
“아 그래요? 그럼 얼른 가셔. 아무튼 좋은 일 하셨어.”
“고맙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역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오늘은 오랜만에 밥값은 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나쁘진 않다. 그래도 날린 표값은 아깝잖아. 그 생각에 환청인 듯 들려오는 내 바로 뒤 남녀의 대화.

“열차는 떠나도 환불이 다 돼요.”
“정말요?”
“네. 수수료 좀 내면 환불 다 되더라구요.”
“아 그렇구나. 좋네요.”

하마터면 뒤돌아서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넙죽 인사할 뻔했다. ㅎㅎㅎ

열차 안에서 인연 혹은 우연을 생각한다. 내가 워크숍에서 조금 일찍 나왔더라면, 시장통이 아닌 도로를 택했다면, 노인보다 조금 앞서 갔더라면…

그랬더라면 제시간에 열차를 탔겠지만 KTX 표는 시간이 지나도 환불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몰랐겠지. 그 인상좋은 사내와 ‘좋은 일 했다’며 서로를 추켜세울 일은 없었겠지. 무엇보다도 빗속에서 나의 신발끈을 매만지던 만취한 노인을 내려다 보는 일은 내 인생에 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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