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문화, 군대식 비유, 그리고 문화적 차이

“그 수업 토론과정에서 한 예시로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쟁용어를 언어에서 많이 쓴다는 의견을 들었다. 책을 안가져온 학생에게 전쟁에 총을 놓고 나간다는 등의 표현이나, 투자금을 의미할 때에도 총알이라는 은유를 사용하곤 한다고 하였다. 또, 예전에 지나가다 의대에 다니는 친구에게 들은 얘기인데, 의대과정에서는 6년간 다같이 가까이에서 공부하고 지내기 때문에, CC를 딱 한번에 기회만 있다는 뜻으로 선배들이 “총알은 딱 한발만 있다. 정말 확신을 들 때에만 쏴야한다.”라고 조언해주었다고 했다.” (은유와 관련된 수업과 관련해 한 대학원생이 보내준 글의 일부)

나: (캐나다 학생에게) 혹시 캐나다에서 이런 비유를 쓰나요? 수업은 전쟁터(battlefield), 교과서는 총(guns).
캐나다 학생: (소스라치게 놀라며) 아뇨. 절대요.
나: 이상한가요?
캐나다 학생: 네네 정말 이상해요.
영국 학생: 음…. 이해를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저런 비유를 쓰는 사람은 없을 거 같아요.
나: (대만 학생에게) 대만에서는 어떤가요?
대만 학생: 쓸 수도 있을 거 같지만 못들어봤어요.
나: (카자흐스탄 학생 쪽을 향하며) 카자흐스탄에서는요?
카자흐스탄 학생: 어 저런 비유는 안쓰고요. 카자흐스탄에서는 “차라리 머리를 놓고 오지.”라는 표현을 많이 써요.
좌중: ㅋㅋㅌㅌㅎㅎㅋㅋㅋ
나: 머리요?
카자흐스탄 학생: 네. 머리(head)요.

서로 다른 문화는 서로 다른 메타포를 만들어 낸다. 군사문화로 점철된 한국사회에 다양한 군대 메타포가 존재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고리를 끊지 않는 이상 학생들은 계속 ‘총’을 가지고 ‘전투’에 참가하는 ‘군인’일 수밖에 없다.

우리말, 우리은행, 그리고 alien

영국 학생: 한국에서 좀 기분 나쁠 때가 있는데, 제가 한국말을 하면 사람들이 “와 우리말, 우리나라말 잘하시네요.”이렇게 말하는데 기분이 별로 안좋더라구요. “우리나라 말”이라는 게 우리, 너희, 이렇게 가르는 거니까. 한국말이라고 하면 될 걸 왜 꼭 ‘우리말’이라고 하는지.
나: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네요. 제가 영어로 말하는데 누군가가 “You speak our language very well.” 이려면 기분이 좋지는 않을 거 같아요.
영국 학생: 네. 말하는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하는 말인데,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기분 나쁠 수 있을 것 같아요. 서류 작성할 때 외국인 신분을 에일리언(alien)이라고 하느데 (다른 외국인 학생들도 급공감) 이 말도 좀 그럴 때가 있어요.
나: 아 alien. E.T.?
학생들: ㅎㅎㅎ
영국 학생: 그리고 제가 싫어하는 은행이 있는데
나: ???
영국 학생: 우리 은행.
좌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국 학생: 우리 은행. 너희는 오지 마.
좌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국: 볼 때마다 잘 이해가 안되고… 무슨 말인지 알지만 기분은 별로 안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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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학생: 제 친구 중에 하나는 한국 존대말 문화에 잘 적응을 못했어요. 그 친구가 한 가지 룰이 있는데, 자기한테 존대말로 말 걸면 존대말로, 반말로 말을 걸면 반말로 대답하는 거예요.
나: 아… Eye for eye…
영국 학생: 네. 그렇죠. 그러니까 자기보다 나이가 얼마나 많냐, 높은 사람이냐 그런 거 상관 없이 무조건이요.
다른 학생들: (웅성 웅성)
영국 학생: 그래서 어떤 일 있었냐면은,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이 자기한테 반말을 했는데 반말로…
나: 친구가 선생님인가 봐요.
영국 학생: 선생님 이.었.어.요.
나: 아… 과거형… ㅠㅠ 지금은…
영국 학생: 사정이 있어서… (말끝을 흐린다.) 아무튼 그 친구는 자기한테 반말하는 걸 인정하질 못했는데 나랑 그 친구 와이프가, 아 그 친구 와이프는 한국 사람인데, 같이 설명을 하려고 했는데 절대 말을 안듣더라고요. 그러니까 한국 사회에서는 무시하지 않더라도 나이 많은 사람이 반말을 쓰기도 한다고 얘기를 했는데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어요.
나: 아 그럴 수 있을 것 같네요. 저는 그런 경험은 없지만 중고등학교 때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똑같이 발음하려고 하는 친구들이 싫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긴데 그땐 그냥 너무 싫었던 거 같아요. 이성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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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훈

1. 언어는 말하는 사람의 소유다. 한국어는 한국어를 말하는 사람이 소유하는 것, 영어는 영어를 말하는 사람이 소유하는 것, 모든 언어는 그 언어의 화자에게 열린 자원.

2. 말하는 사람은 그냥 하는 말이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오해나 상처가 될 수도 있다.

3. 우리은행이 잘못했네. 한국어로는 우리은행, 영어로는 YOUR Bank라고 해야 되나?

인지언어학과 행동경제학

행동경제학과 인지언어학은 경제학과 언어학의 중심에 “생각하고 느끼며 상호작용하는 인간”을 놓았다. 바로 이점에서 고전경제학과 행동경제학의 관계는 형식언어학과 인지언어학의 관계와 매우 닮았다고 할 수 있다. 변화 이후의 관점에서 “아니 이때까지 사람을 빼고 어떻게 경제와 언어를 이해한다고 한거지?”라는 질문이 나올 법하지만, 새로운 관점이 시대를 관통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다만 학문별로 변화의 속도는 다르게 느껴지는데, 경제학보다는 언어학에서 인간의 인지와 정서, 사회적 요인들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연구들이 더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경제학은 방법론의 측면에서 수학에 크게 기대고 있고, 이것이 학문적인 아비투스(habitus)로 작용하여 연구자들의 적극적 변화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반면에, 인지언어학은 60년대 이후 일어난 인지혁명의 흐름 속에서 주변 분야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 아닐까 싶다.

선생의 일, 맨땅에 헤딩 막기

Posted by on Apr 28, 2016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선생으로서 가장 즐거울 때는 삼년 쯤 맨땅에 헤딩하며 공부한 것을 세 시간 쯤으로 압축해서 나쁘지 않은 수업을 했을 때다. 어쩌다가 ‘이 분야를 진지하게 공부해 보고 싶다’는 메일을 받으면 기쁨이 더 커진다. 사실 인간이 만든 기계인 알파고도 수많은 사람들의 대국 위에 ‘올라서서’ 바둑을 두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이야 말로 인류가, 우리 사회가 진정 수치스러워 해야 할 일 아닌가?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는 뉴튼의 말*을 새겨보니, 선생의 일은 ‘맨땅에 헤딩’의 대물림을 막고, ‘거인의 어깨’에 오르는 원정대의 노련한 셰르파 역할을 하는 거 아닐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뉴튼의 말로 알고 있는 이 표현을 처음 쓴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살았던 Bernard of Chartres라고 한다. 자세한 것은 아래 링크를 참조.)

http://www.businessinsider.com/misattributed-quotes-2013-10

유발 하라리 vs. 마크 트웨인

유발 하라리가 “현재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의 80~90%는 이 아이들이 40대가 됐을 때 전혀 쓸모없을 확률이 크다. 어쩌면 수업 시간이 아니라 휴식 시간에 배우는 것들이 아이들이 나이 들었을 때 더 쓸모 있을 것이다.”라 말했다고 한다. 읽자 마자 마크 트웨인이 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나는 결코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나의 교육을 방해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I have never let my schooling interfere with my education).”

Quote Investigator에 의하면 이런 취지의 말을 처음 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마크 트웨인이 아니라 Grant Allen이라고. Allen은 이 아이디어를 퍼뜨리기 위해 자신의 저작 여러 곳에 비슷한 이야기를 남겼다고 한다. 트웨인이 비슷한 취지로 처음 발언한 것은 1907년으로 추정되는데 정확한 표현은 “Don’t let your boy’s schooling interfere with his education.”이었다고 한다.

“I have never let my schooling interfere with my education.”

– This quote has been attributed to Mark Twain, but until the attribution can be verified, the quote should not be regarded as authentic. (Barbara Schmidt, the TwainQuotes website)

Never Let Schooling Interfere With Your Education

The End of Average

Posted by on Apr 27, 2016 in 강의노트, 과학, 링크 | No Comments

인간의 다양한 특성에 대한 표준화, 교육과 비즈니스에서 평균의 폐해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하버드 교육대학원장 Todd Rose가 쓴 <The End of Average: How We Succeed in a World That Values Sameness>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http://www.amazon.com/End-Average-Succeed-Values-Sameness/dp/0062358367

번역된다면 <평균의 종말> 정도의 뻔한 제목을 갖게 될 거 같지만, 최근 4-5년 간 읽은 교육 관련 대중서 중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준 책입니다. 방학 때 백수가 된다면 독서모임을 꾸려 읽으려고 합니다. 아래 NPR 링크에서 대략적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www.npr.org/sections/ed/2016/02/16/465753501/standards-grades-and-tests-are-wildly-outdated-argues-end-of-average

국가가 된 개인, 개인이 된 국가

Posted by on Apr 27, 2016 in 강의노트, 단상, 일상 | No Comments

인간은 모체와의 분리를 통해 세계와 마주한다. 어머니의 밖으로 나옴으로써 세계의 내부로 진입하는 것이다.

아이가 처음 만나는 세계에는 피아 구분이 없다. 자신이 세계이며 세계가 자신이다. 아직 세계도 자신도 존재하지 않는,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지 못한 상태다. 그래서 아이들은 종종 자신의 방귀 소리에 놀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동은 성장하며 자신 앞에 드러나는 세계의 윤곽을 목격한다. 동시에 내면 심리가 형성된다. 나와 세계라는 개념이 동시에 생겨난다. 이들 사이의 거리 또한 확보된다.

몸이 어머니와 분리되는 사건이 출생이라면 사회문화적 발달을 통해 세계와의 거리가 확보되는 과정은 개인의 탄생이다. 개인은 사회로 말미암지만 오로지 사회적인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특이함을 지닌 존재로 성장한다.

개인의 탄생과정에서 확보된 개인과 사회의 거리는 상호작용(interaction)을 가능케 한다. 내가 세계이고 세계가 나라면 상호작용 애당초 불가하다. 영어 접두어 “inter-“는 두 개 이상의 개체를 전제로 성립된다. A는 A와 상호작용하지 못한다.

상호작용이 가능해지면서 자신과 사회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객관화가 가능해진다. 아울러 세계와 나 사이의 균열과 불화 또한 점점 커져간다.

인간과 세계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내면화 되면서 나(I)와 내(me)가 소통하는 내적 대화가 가능해진다. 자신을 대상화하고 자신의 생각을 관찰할 수 있는 메타인지(metacognition)가 발달한다.

안타깝게도 개인과 국가 사이의 거리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 있는 듯하다. 개인이 국가이고 국가가 개인인 사람들. 그들은 국가가 되기 위해 짐이 될 필요가 없다.

시민은 커녕 개인도 탄생시키지 못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자유란 참으로 요상한 개념이다. 하물며 ‘자유주의’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국가가 된 개인은 개인이 된 국가만큼이나 위험하다.

매점 아저씨 과로사?

Posted by on Apr 27, 2016 in 강의노트, 단상 | No Comments

유발 하라리: “현재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의 80~90%는 이 아이들이 40대가 됐을 때 전혀 쓸모없을 확률이 크다. 어쩌면 수업 시간이 아니라 휴식 시간에 배우는 것들이 아이들이 나이 들었을 때 더 쓸모 있을 것이다.”

하라리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학교는 수업 10분, 쉬는 시간 45-50분으로 체제로 바꾸어야 할 듯. 근데 그러면 정부에서는 ‘창의 융합 인재 양성을 위한 쉬는 시간 교육과정’을 제정하고 ‘쉬는 시간 지도 전문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전면 시행할지도 몰라. (먼산)

AJ+ | Change Storytelling

Posted by on Apr 27, 2016 in 링크, 일상 | No Comments

내가 언론인이라면 일해보고 싶은 회사. 최근 가장 자주 시청하는 동영상 뉴스콘텐츠를 만드는 곳. 구인공고에서 변화의 방향을 읽을 수 있군요. 영어교육에서의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바꾸어 갈 수 있을지 고민하게 하네요. (맨 아래 영상을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상당히 큰 규모네요. ^^)

http://ajplus.net/english/jobs/

 

경청, 혹은 “So what?”이 불편한 이유.

Posted by on Apr 26, 2016 in 강의노트,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한 분야에 대해 주워 들은 몇 마디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버리지 않는 일. “그래서 이거 어디다 쓰는 건데? 나한테 도움이 되긴 하는 건가?”라고 묻기 전에 ‘그들의 생각과 삶’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마음. 수 세대에 걸쳐 수많은 이들이 생을 걸고 연구한 바에 대해 잠시나마 판단을 유보하는 자세. 불평을 하건 맞짱을 뜨건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건 개인의 자유겠지만 표면만 보고 켜켜이 쌓인 퇴적층을 다 알 수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So what (can it do for me)?”라고 묻기 전에 “So what (more should I understand)?”라고 질문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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