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정체성

Posted by on Apr 25, 2016 in 강의노트, 단상, 일상 | No Comments

수년 간 모든 역량을 가르치는 일에 쏟아부으면서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은 희미해졌다. 관념이 아니라 실천의 양태가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금의 나는 연구자라기 보다는 응용언어학/영어교육 커뮤니케이터에 가깝다. 스타강사와 대형학원으로 대표되는 사교육이 영어교육을 자본의 논리로 이끌고, 대다수 국민이 영어교육 전문가가 되어버린 현실에서 ‘커뮤니케이션’에 쏟아붓는 노력이 어떤 가치를 지닐지 모르겠다. 다만 돈을 위해 이론을 알아볼 수 없는 괴물로 만들어 버리거나, 이론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다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잊지/잃지 않기를 바란다. 요약하면 사기치지 않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지식을 나누면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인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오늘밤에도 함께 뭔가 써보자 했던 이들의 얼굴이 바람에 스치운다.

휴일을 보내며

Posted by on Apr 24,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일요일 오후는 태풍의 눈이다.

휘몰아치는 한 주가 시작되기 전, 휴일은 저문다기 보다는 무너진다. 쿵쾅거리는 마음과 침묵하는 마을이 묘한 긴장을 엮어내는 동안 삶의 궤도 밖으로 온전히 튕겨내지 못한 일들은 대반격을 준비한다. 저녁을 먹고 나면 그들의 침공 준비도 끝나 있겠지.

그렇다 해도 이 고요함을
온전한 평화로 만드는 이들이 있다.

 

한 영국 학생과의 대화

Posted by on Apr 23, 2016 in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1. “선생님, 한국에 살려면 손이 세 개 필요하답니다.”

“세 개요?”
“네. 왼손, 오른손, (손을 머리 중간에 올려 닭벼슬 모양을 만들고 고개를 까딱 하면서) 겸손.”
“아하 ㅎㅎㅎ”
“한국 사람 칭찬하면 무조건 아니라고 하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겸손이 필요합니다!”
“네네 ㅎㅎㅎ”

2. “한국말을 정말 잘하는 거 같아요.”
“아닙니다. 제가 5년 째인데 얼마 전까지 지하철에서 카드 찍을 때 “환승”하는 소리를 “학생”으로 알아들었습니다. 처음 왔을 때는 나 선생님이었는데 자꾸 학생이라고 해서 이상했어요.”
“ㅎㅎㅋㅋㅋ”

3. (석사생들 몇몇이 지도교수 선정 이야기를 꺼내길래) “Who would you recommend as a thesis advisor?” ((박사과정에 계시니) 논문 지도교수로 누구 추천하시겠어요?)
“I would avoid that question.” (그 질문은 좀 피하고 싶네요.)
“Oh, I see. The question is too politically charged.” (아 알겠습니다. 질문이 너무 정치색이 짙네요.)
(단호하게) “Yes.” (넵!)

4. “제 수업은 들을만 해요?” (한국어 수업이라서 던진 질문)
“네 재미있습니다. 근데 한국말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더 이상 집중을 못해요. 그래서 사실 지난 번에는 물고기(fish) 생각을 했어요.”
“아 ㅎㅎㅎ ‘피쉬 앤 칩스’에서 그 피쉬요?”
“네. 어쩔 수가 없을 때가 있어요. 집중의 한계랄까.”
“아 그쵸. ㅎㅎㅎ”

학생들과 밥을 먹으면 교실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참 많이 보인다.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좋아하고 김치찌개를 즐겨 먹는, 정치 코미디와 사회언어학에 관심이 많은, 늘상 자전거 안장을 떼어서 들고 다니는 이 친구에게 더 많이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간의 강행군,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풍성한 밤이다.

수업에 전혀 도움 안되는 애들

몇몇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위 ‘공부에 관심없고 말썽피우는’ 학생들이 종종 “수업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애들”이라는 말로 묘사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워딩은 조금 다르지만 무려(?!) 3명의 교사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교육과 학생에 대한 애정이 큰 분들이 악의 없이 솔직히 내뱉은 말이었기에 과도한 해석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표현을 연거푸 접하면서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아래 두서 없이 던져놓는다.

1. 이 표현은 학생들을 “수업을 돕는” 혹은 “도와야만 하는” 존재로 규정한다. 학생들은 왜 수업을 도와야 하는가?

2. 만약 도와야만 한다면 학생들은 어떤 식으로 수업을 도와야 하는가? 수업을 돕는 일은 왜 특정 과목에서 과거에 거둔 성적에 의해 제한되어야 하는가? 성적은 수업에 진입하기 위한 일종의 자격인가?

3. “수업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애들”이 있다면 “수업에 조금 도움이 되는” 학생들도 있고, “수업에 도움이 많이 되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움이 안되는 학생들”을 만드는 주체는 학생 자신인가? 수업(교사)인가? 학생이 수업에 도움이 안된다면 수업 또한 학생들에게 도움이 안되는 것 아닌가?

4. 이러한 구조를 생산하고 인가하는 학교와 제도 또한 “도움이 안되는 학생들”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철저히 방치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에 대한 반대-힘은 어떻게 키울 것인가?

이렇게 보니 짧은 표현 하나에 한국 공교육의 모순이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듯하다. “수업에 도움이 안되는 애들”이 “수업에 도움이 되는 애들”을 넘어 “수업을 확 뒤집어버리는 애들”이 되게 하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사투리 그리고 네이티브 스피커

한국 사회 내부의 “사투리”에 대한 선입견과 차별은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학습에서) “네이티브 스피커”에 대한 선망 및 열등감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아름답고 깔끔한 표준어’의 관점에서는 언어변이의 존재가 다양성이 아닌 규범의 틀에서 해석되며, ‘틀린 것들을 제거해야만 하는’ 문제적 상황이 된다. 진정 무서운 것은 언어학적으로 ‘표준’은 존재하지 않음에도 사회문화적 ‘권력’은 강력하게 행사된다는 사실이다. ‘표준어’나 ‘네이티크 스피커’ 같은 실체 없는 개념들이 언어학습 및 사용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 전성원 저, 인물과 사상사,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에서 가져온 표현.

배운대로 평생 가르칠 수 있는 사회?

약속시간이 20분이나 지났는데 나타나지 않는 두 친구. 기다리고 있다고 문자를 보내니 한 친구에게 이런 답이 왔다.

“뛰구.,..잇사ㅓ.ㅏ.요.,..”

진짜 바쁜가 보다.

오늘 뭐할지 물으니 시험 대비를 해달라 한다. 백만년 만에 학원강사 컨셉으로 두 시간 문법 정리를 시전. 뭔가 뿌듯하다.

근데 문법 프린트를 보니 내가 배우던 거랑 어째 똑같냐. 수십 년 차이 문법으로 대동단결도 아니고 ㅜㅠ

배운대로 평생 가르치는게 가능한 사회라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진다.

잡담같은 인생

Posted by on Apr 22,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인생을 철되면 돌아오는 꽃나무 사진이나 시시껄렁한 잡담 따위로 채워가고 있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다가도, “그럼 뭐 딴 거라도 있어?”라고 반문하는 일이 잦아졌다. 나이가 들면 게을러지는 게 아니라 기운이 빠지는 거라는 변명도 잊지 않는다. 차 한잔 친구삼아 느릿 느릿 봄초록 길 걸으며 뭉쳐진 먼지나 부치지 못한 편지같은 이야기들을 떠올리는 게 젤 좋은 듯하다.

Tenets in Constructionist Approach to Grammar

Found this while revisiting Goldberg (1995), a classic work in CL.
http://www.cs.indiana.edu/~port/teach/sem05/Goldberg.constrctns.TrCgSci.03.pdf

“Tenet 1. All levels of description are understood to involve pairings of form with semantic or discourse function, including morphemes or words, idioms, partially lexically filled and fully abstract phrasal patterns.

Tenet 2. An emphasis is placed on subtle aspects of the way we conceive of events and states of affairs.

Tenet 3. A ‘what you see is what you get’ approach to syntactic form is adopted: no underlying levels of syntax or any phonologically empty elements are posited.

Tenet 4. Constructions are understood to be learned on the basis of the input and general cognitive mechanisms (they are constructed), and are expected to vary crosslinguistically.

Tenet 5. Cross-linguistic generalizations are explained by appeal to general cognitive constraints together with the functions of the constructions involved.

Tenet 6. Language-specific generalizations across constructions are captured via inheritance networks much like those that have long been posited to capture our non-linguistic knowledge.

Tenet 7. The totality of our knowledge of language is captured by a network of constructions: a ‘construct-i-con.’” (p. 219)

새로운 국회, 당부의 말

Posted by on Apr 18,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모멘텀이 생겼다.
‘이 힘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
눈치보고 회의하고 논쟁하다가 힘이 다 빠진다.
이건 다 네 탓이라며 싸움박질을 시작한다.

이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딱 한 가지만 하면 된다.
국민과의 약속을 즉각 실행하는 것이다.

실행하는 족족
또 다른 모멘텀이 생긴다.
더 많은 지지세를 얻는다.

힘이 생겼다면
머나먼 미래,
장기전략에 골몰하기 보다는
지키지 못했던,
지금 이곳에 당장 필요한 일들을 하라.

착각 말라.
잘해서 뽑아준 것이 아니다.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다.

기억하라.
국민에게 진
빚을 갚을 기회다.
청산하면
새로운 밑천이 생긴다.

명심하라.
맘대로 해도 된다는
완장이 아니라
4년짜리
‘사회봉사명령’이라는 걸.

‘A number of’는 ‘많은(many)’이 아닙니다.

학교 문법에서 종종 ‘a number of ~’ 와 ‘the number of ~’ 를 비교하여 가르칩니다. 전자는 ‘많은’이라는 뜻을 갖고 있고, 뒤에 복수명사가 나오며, 복수형 동사를 취한다고 하죠. 아예 “(=many)”라는 필기를 해주기도 하구요. 이에 비해 후자는 “~의 수”라는 뜻이므로 단수 동사를 취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설명에는 중대한 오류가 있습니다. The number of 에 대한 설명은 맞지만 “a number of ~”는 무조건 “많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맥에 따라 “some”이나 “several”의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지요.

예를 들어 “We have a number of options.”라고 말할 때 “문맥에 따라서 선택지가 많다” 보다는 “몇 가지 옵션이 있다” 정도가 더 적절한 해석일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시다시피 Dictionary.com과 Oxford Dictionary는 a number of의 대표의미로 “several”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A number of”가 “많은”의 의미로 해석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A number of Koreans”라고 하면 “많은 한국인들은” 정도의 의미가 되는데, Koreans 자체가 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다수의/많은 한국인들은’ 정도로 해석해도 무방한 것입니다. 구성원의 수를 아는 경우 “a number of”를 쓸 때는 보통 2/3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같구요.

결론은 “a number of”를 무조건 “many”로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관행이라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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