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사, 부정관사, 그리고 총체와 가능성으로서의 세계

철학과 언어가 절묘하게 교차하는 듯한 예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the”와 “a”가 world와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다음 예문을 보시죠.

a) The world is full of sorrow.
b) We want a better world.

위의 두 예문에서 ‘world’ 앞에 서로 다른 관사가 쓰였습니다. a)에는 정관사 the가, b)에는 부정관사 a가 쓰였죠. 왜 이런 차이가 오는 것일까요?

아시다시피 일반적으로 ‘세계’라고 말할 땐 ‘the world’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유일한, 그리고 특정한(specific)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b)에서 ‘world’는 가능성으로서의 세계입니다. 지금 눈앞의 세계는 하나일지라도 미래에 가능한 세계의 가능태는 수없이 많고 그 중의 하나가 바로 ‘a world’입니다. 그렇기에 ‘a better world’ 뿐 아니라 ‘a greater world’, ‘an ideal world’ 등의 표현도 가능하죠.

예를 하나 더 들어보죠. 현재 지구에서 ‘달’이라고 하면 하나의 달을 떠올립니다. (여기에서 지구를 돌고 있다는 다른 달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도록 하죠. ^^) 그렇기에 ‘달’이라면 “the moon”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달의 양태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래서 달의 여러 모양 중 하나인 ‘큰 보름달’은 ‘a great full moon’이라고 할 수 있죠. ‘A blue moon’이나 ‘a half moon’이라는 표현도 가능하구요.

세계는 하나의 총체이지만 가능성으로서의 세계는 무한히 열려 있습니다. 달은 하나이지만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죠. 유일하게 정해진 것(definite)처럼 보이는 것들도 결코 특정한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는(indefinite) 것입니다. 총체로서의 세계와 양태로서의 세계는 이렇게 언어 속에 절묘하게 드러납니다. 적어도 영어 관사의 경우에 말이죠.^^

학문의 흐리멍덩함에 대하여

Posted by on Jun 29, 2016 in 강의노트, 과학, 단상 | No Comments

인문사회과학 전반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교육 및 응용언어학 관련된 논의에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명확히 제시되지 않는 개념은 많은 학생들에게 골칫거리다. 시험을 칠 땐 더더욱 그렇다. 학문의 큰 꿈을 품고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들은 학문의 ‘흐리멍덩함’에 더 깊이 실망하기도 한다. 나 또한 그랬다.

공부는 완벽한 정의를 내리는 작업이 아니라 더 나은 정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에 눈뜨게 되면서 정제된 이론이 아니라 ‘치고 받음의 역사’에 주목하게 된다. 내용(content)을 가능케 하는 방법론(methodology)의 중요성이 날로 커진다. 궁극적으로 이론과 현상은 따로 존재할 수 없으며, 고유의 방법론에 의해 그 관계가 설정되는 변증적 관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흐리멍덩한 학문’의 근본적 한계는 삶이, 관계가, 언어가, 교육이 언어로 환원될 수 없는 총체적, 초다면적(超多面的), 역사적 현상이라는 데 있다. 언어가 모든 종류의 아름다움을 정의할 수 있다면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발달의 모든 측면들을 언어로 기술할 수 있다면 개개인의 고유한 삶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언어는 그저 엿볼 뿐이다. 세계를 한꺼번에 볼 수는 없으니 말이다. 참으로 다행이지 않은가? 말로 소진될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뻘글’을 덜 쓰는 이유

Posted by on Jun 29,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아침이면 후회할 글을 덜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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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이 안되어서… (눈물)

아이고 의미없다?

Posted by on Jun 28, 2016 in 강의노트,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삶에는 원래 의미가 없다”는 말. 물리적, 진화적 관점에서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들을 때마다 까끌까끌. 왜 그럴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먼저 저 말은 굉장히 강력한 의미를 만들어 낸다. (“요즘 사는 게 영 그렇네.” “인생에는 원래 의미가 없어.” “뭐 어쩌라고?”) 둘째, 저 말의 화자는 탈인간적이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인생에는 원래 의미가 없는 거더라.” “그럼 지금 네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냐?”) 마지막으로, 인간은 의미가 없는 데서 의미를 만드는 존재 아니던가? (“잭슨 폴락의 새로운 기법은 예술의 새로운 의미를….” “그게 무슨 의미야? “…”) 의미-없음이 의미-과잉에 대한 해독제가 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아이고_의미없다

1학기 종강 & 강의평가

Posted by on Jun 27, 2016 in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강의평가를 그닥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는다. 2년차 까지는 평가점수에 일희일비하는 우를 범하였으나,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 자신의 대답이다.

사실 강의평가 점수는 들쑥날쑥이다. 같은 내용을 같은 방식으로 가르쳐도 판이하게 다른 평가가 나온다. 수업 방식에 대해서도 반응이 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성평가(수업에 대한 의견 기술)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학생 개개인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피드백이다. 강의의 내용만큼이나 교수자와의 상호작용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얘기다.

상대평가 시스템, 성적경쟁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학생들은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찾는다. 아니 그런 각박한 현실이기에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관계에 더더욱 목말라한다.

거의 2주에 걸친 페이퍼 읽기와 성적 산출도 이제 끝이 보인다. 학기가 끝나 속시원하지만 벌써 학생들이 그립다. 그러나 대부분 다시 못볼 친구들. 스쳐가는 인연이라지만 4개월이면 꽤 긴 스침 아닐까 싶기도 하고.

The Inevitable: 거부할 수 없는 기술 트렌드12가지

Posted by on Jun 27, 2016 in 강의노트, 과학, 링크, 수업자료, 인용구 | No Comments

“The greatest products of the next 20 years have not been invented yet.” (48:40)

12 Inevitable Tech Forces That Will Shape Our Future by Kevin Kelly | 기술의 미래에 대한 Kevin Kelly의 SXSW Interactive 2016 강연 중 인상깊었던 구절. 굳이 편을 들어야 한다면 Kevin Kelly 보다는 Jaron Lanier 쪽에 가깝지만, 그의 이번 책 <The Inevitable: Understanding the 12 Technological Forces That Will Shape Our Future>에서 다양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강연 링크:

새로운 것을 보기 vs. 새롭게 보기

Posted by on Jun 27, 2016 in 강의노트, 과학, 단상, 인용구 | No Comments

“The task is . . . not so much to see what no one has yet seen; but to think what nobody has yet thought, about that which everybody sees. 과업은 아직 아무도 못본 것을 보는 데 있다기 보다는 모두가 보고 있는 대상에 관해 이제껏 누구도 하지 못한 생각을 해내는 데 있다.” – Erwin Schrödinger 어윈 슈뢰딩거

 

한국 교육: 어떤 유비

Posted by on Jun 25, 2016 in 강의노트, 링크,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스포츠를 보면서 종종 한국교육을 떠올린다. (직업병 인정) 예를 들어 한 가지 유비를 들어 보자. 아래 비디오에서 학습자는 2루수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대개 지극히 평범한 공을 잡아 1루에 송구하도록 훈련시킨다. 방향도 바운드도 다 정해져 있다. 지극히 평범한 공이 오니 살짝 무릎을 굽혀 공을 잡아 1루에 송구하면 된다. 이 과정을 꽤나 열심히 반복한다. 예외적 상황은 예외이니 가급적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한다. (응?)

하지만 실제 경기에서 공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몸을 움직여야 하고 속도를,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송구방식도 달라져야만 한다. 시시각각 새로운 상황과 과제가 전개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 교육은 2루수에게 무조건 1루에 던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아래 상황에서 2루수가 유격수에게 토스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된다.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모든 걸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2루수가 유격수에게 공을 토스하는 일이 일어나면 1루로 송구되기 전에 게임을 정지시키고 말한다.

“야, 너 누가 유격수한테 토스하라 그랬어? 무조건 1루로 던져야 할 거 아냐?”

많은 학습자들은 자기 앞에 떨어지는 공만을 기다린다. 절대 루틴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인재가 되어야 한단다.

한국의 학습자들은 Omar도 Esky도 되기 힘들다. 하지만 최고의 장면은 바로 이런 ‘변주’로만 가능하다.

 

https://www.facebook.com/Royals/videos/10153102967253691/?pnref=story

채점은 AI에게

Posted by on Jun 25,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언어교수학습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가 아니라,
“인간과 기계는 어떻게 공진화할 것인가?”가 화두가 된 시대
외국어 습득, 통번역의 ‘특이점’이 오고 있다 호들갑을 떨기도 하지만.

아직 멀었잖아.

그러니
밥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하던 대로 열심히 해야지.

#하지만채점은AI에게맡기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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