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의 죽음, 죽음 곁의 삶.

Posted by on Jul 31,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착했던 사촌형이 너무 빨리 떠나버렸다. 슬픈 날이다.

간만에 만난 동생은 기적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교회에서 한참 보이지 않던 친구가 갑자기 생각나 ‘조만간 보자’고 메시지를 남겼다. 얼마 후 그 친구를 만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몇 주가 흘렀다. 그리고 그 친구의 놀라운 고백을 들었다.

“사실 그때 죽으려고 한강에 갔어요. 핸드폰 옆에 놓고 뛰어내리려고 했는데… 마침 그때 메시지가 온 거예요. 사실 나 하나 가도 그 누구도 보고 싶어할 사람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문자를 보니 죽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삶 속의 죽음, 죽음 곁의 삶.
짧게 또 길게 스친 얼굴들을 떠올리는 밤.

정치와 쇼

Posted by on Jul 30, 2016 in 강의노트, 단상, 일상 | No Comments

정치를 쇼와 비교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정치의 본질을 ‘보여주기’로 치환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둘이 닮았기에 그런 유비가 종종 사용되는 것 아닐까? 내 생각에 이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보는 사람들을 탓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관객을 탓하는 쇼는 망하고, 국민을 탓하는 정치는 추락한다. 무대의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왜 웃지 않느냐’고 소리지르는 순간 쇼는 끝나고,. 정치인들이 ‘어쩔 수 없는 국민들’이나 ‘무지한 대중’을 입에 올리는 순간 정치는 끝나는 것이다. 관객은 쇼를 탓할 수 있어도 쇼는 관객을 탓할 수 없다.

Jason Bourne을 보고

Posted by on Jul 29, 2016 in 단상, 링크, 일상 | No Comments

본은 자신을 찾으려 하고, 정보기관은 본을 잡으려 한다. 본이 기억을 복구하면 자아를 되찾지만, 기관은 내부로부터 와해된다. 본의 세계는 무너진 파편으로 뿌옇지만, 조직은 모든 채널을 통해 세상을 투명하게 본다. 그렇게 물고 물리는 관계 속에서 현실은 늘 흔들린다. 끊임없이 비틀거리는 화면은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세계에 대한 유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를 손바닥처럼 볼 수 있는 조직도 자기를 찾으려는 의지를 가진 인간을 꺾지 못한다.

내게 본 시리즈는 불가능에 대한 알레고리다. 힘있는 인간은 막강한 조직의 비호하에 탄생하지만, 조직에 투항하지 않는 인간의 탄생은 기억의 상실로만 가능하다. 그야말로 극단적인 방법(Extreme ways)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들의 좌표를 벗어나야만(off the grid) 하지만,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럴 수 없는 운명의 이름 본(Bourne).

한 더운 낮의 꿈, 혹은 그리움

Posted by on Jul 27,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더위에 앉은 채 깜빡 잠이 들었다.

공부하던 학교에 갔다. 여전히 허름한 Sparks의 그때 그 교실. 선생님들 대부분이 퇴임하셨고, 친구들도 다 졸업했다. 날 알아보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교수로 부임한 옛 친구가 반가운 인사를 건넸고, 대번에 로봇임을 알 수 있는 학생 둘이 구석에 앉아 있었다. (커다란 사기 주전자를 뒤집어 쓴 듯한 친구는 예전에 즐겨보던 만화영화의 등장인물을 연상시켰다. ㅠㅠ) 세미나 주제는 자연어 처리. 쓱 보니까 방금 공부하던 파싱(parsing) 관련 내용이었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서야 등장한 지도 교수는 너무나 늙어 있었다. 반가움보다 큰 슬픔이 밀려왔다. 얼마 전 큰 상을 받으실 때 목이 메어 말씀을 잇지 못하셨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건강은 괜찮으세요?’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데 지이이이잉~ 핸드폰이 울린다. 스팸이다. 진짜 괘씸한 스팸이다. 젠장.

더위와 싸우다가 멍때리다가 졸다가 하루가 갔다. 어렸을 때 ‘더워 죽겠다’는 습관적인 과장법이지만 노인들에게는 실존을 위협하는 열마熱魔에 대한 객관적 진술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다들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관사의 쓰임과 발화의 맥락

여행중에 처음 가보는 지역에 갔습니다. 은행을 찾고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길을 묻습니다. 다음 중 어떤 표현이 적당할까요? 답을 생각해 보세요.

a. Where is the bank?
b. Where is a bank?

.
.
.
.
.
.
.
.
.
.
.
.
.
.

답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입니다. ^^;;

큰 도시에 방문해서 번화가를 헤매고 있다면 둘 중에서 b를 택할 확률이 높습니다. 가까운 곳에 여러 개의 은행이 있으리라 가정하고, 그 중에 하나의 은행을 찾는다는 생각으로 질문하는 거죠. 따라서 “the bank”보다는 “a bank”로 기울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인구가 몇백 명쯤 되는 작은 도시라면 근처에 은행이 여러 개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 무리입니다. 예를 들어 캐나다의 TV 시리즈 중에서 <Corner Gas>이 있습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Dog River는 사방 60km 안의 유일한 주유소가 있는 작은 시골 동네입니다. 실제 지역은 아니고 작가가 만든 가상의 마을이죠. 만약 이런 동네에 가서 길을 걷다가 마을 주민에게 ‘은행이 어디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the bank”를 쓸 확률이 아주 높아집니다.

그렇다면 ‘애매한 경우’도 있을 거 아니냐고 물으실 분들이 계실텐데요. 원어민들에게도 분명 애매한 경우가 있습니다. 확실치 않을 경우에는 “Where is the bank?”와 “Where is a bank?”의 사용이 갈릴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대규모 조사를 해보진 못했지만 두 명의 언어 전문가 원어민이 ‘애매한 경우가 있다”는 답을 해주었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관사의 쓰임이 텍스트 내부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상호작용하며 역동적으로 정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여러 번 강조했듯이 관사의 선택에는 텍스트의 규칙을 넘어 화자의 의도 및 발화의 상황이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관사공부중
#무조건정답은없음
#뭣이중하냐고의도와상황이중허지

전국영어교사모임 교사 연수 단상

Posted by on Jul 24, 2016 in 단상, 삶을위한영어공부, 일상 | No Comments

1. 동료 선생들에게 배우지 않는 선생은 동료 과학자에게 배우지 않는 과학자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2. 나눔과 배움의 에너지가 충만한 곳에 다녀오면 삶의 에너지가 충전된다.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3. 한 해 경험을 꼼꼼히 기록하고 가감없이 나누어주시는 분들을 보며 느낀 것. ‘내가 해봐서 아는데’는 좋지 않지만 ‘제가 해보니 이런데’는 참 좋다.

4. 중등영어교육 연구자들이 중등영어교육을 모른다. 나부터가 그렇다. 부끄럽다. ㅠㅠ

5. 인지언어학 더 열심히 공부하자. ㅋ

6. ‘한국사회는 불합리를 덮기 위해 더 많은 불합리가 동원되는 구조.’ – 한 선생님의 일갈이 뼈아팠다.

7. ‘단 한번 소중한 만남’
이번 만남이 선생님들께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빈다.

 

포켓몬 vs. 책, 그리고 뉴미디어

Posted by on Jul 22, 2016 in 강의노트, 단상, 링크 | No Comments

‘간장 두 종지’를 쓰셨던 분의 속초 관련 칼럼을 읽었다. 젊은 시절 자신의 경험 몇 장면만으로 최근의 문화적 흐름을 깡그리 부정하는 ‘가공할만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나아가 가상/증강현실을 “속초의 무선통신망과 스마트폰 속에만 있는 포켓몬”이라고 폄하하는 부분은 미디어의 지형 변화를 읽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포켓몬 고>가 문제라면 책도, 사진도, 영화도 다 문제인가? 이들 또한 한 때 기존 세대가 받아들이기 힘든 ‘신매체’였으니 말이다.

넓은 의미에서 책도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며, 몇몇 이들에게는 가장 뛰어난 가상현실이기도 하다. 아 그리고 나는 그의 칼럼을 ‘대한민국의 인터넷 통신망과 브라우저 속에나 있는’ 유령같은 웹을 통해 읽었다.

http://goo.gl/OyyYGt

식사명과 관사

일반적인 식사를 나타내는 표현들은 무관사를 원칙으로 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표현들입니다.

have breakfast / lunch / dinner (아침/점심/저녁을 먹다.)

그런데 특정한 식사를 이야기할 때에는 앞에 the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The lunch after the ceremony was just terrible.” (식후 점심은 정말 끔찍했어.) – 이 경우에는 “the lunch”가 되어야 하죠.

이런 용례는 정관사 the의 일반적 특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특정한(specific) 식사’를 가리키는 말이니 ‘the’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부정관사도 쓰일 수 있습니다. 식사의 특징을 나타내는 표현의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보죠.

“They had a big breakfast.” (그들은 아침을 거하게 먹었다.)

개념상 여기에서 “a big breakfast’는 특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big breakfast’가 엄청 많은데, 그 중에 하나를 먹은 거죠. 이것을 위의 ‘the lunch’와 비교해 보시면 좋습니다. 이때의 ‘the lunch’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이렇게 설명해 내는 것과는 별개로 일상적인 식사를 가리킬 때 적용되는 ‘무관사 원칙’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때 가장 효율적인 것은 빠르게 읽어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have breakfast’를 빠르게 읽다 보면 ‘have’의 /v/ 발음이 약화되고 뒤의 /b/ 발음이 따라오게 됩니다. 이걸 반복해서 빠르게 읽어내면서 입에 붙게 만들고, 나름 설명을 해보는 겁니다. “Have의 /v/ 다음에 /b/ 발음이 바로 오네.’ 이렇게 말이죠. 이렇게 하다 보면 중간에 a나 the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

#관사공부중

===

[식사명과 관사 – 보충설명] 아래 식사에 대한 관사글에 최서희님께서 흥미로운 제보(?!)를 해주셨습니다. 한 네이티브가 ‘I had a dinner at a ballroom in the palace.’ 라는 문장을 사용하는 걸 보셨다고 말이죠. 이야기를 통해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1. 일단 식사명을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때를 생각해 봅시다. “나 점심 먹었어.” “저녁 먹었어?”와 같이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무관사 원칙이 상당히 잘 지켜집니다. “Did you have a dinner?”라고 물으면 굉장히 어색하다는 거죠. (저는 이런 문장을 들었다면 “Did you have two?”라고 농을 던질 거 같기도 하네요. ^^)

사실 한국어에서도 보통 ‘저녁 먹었어?”라고 하지 ‘저녁 한 끼 먹었어?”라고 물어보는 일은 없죠. 반면에 다른 사람에게 “언제 점심 한 번 하시죠.”와 같은 이야기를 건넬 수는 있습니다. 언어의 분류상 한국어에는 영어와 같은 관사 체계는 없지만, 용례상으로 비슷한 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2. 그런데 위의 문장에서는 ‘at a ballroom in the palace”라는 수식어구가 붙어 있습니다. 특정한 상황이 주어지고 그 상황 하에서 저녁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때에도 물론 관사 없이 “had dinner”라고 쓰는 원어민들이 존재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a’를 붙이는 게 상당히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왕궁에 있는 볼룸에서 저녁 한 번 먹었어.” 같은 느낌이랄까요.

일전에 제가 “관사 사용의 절대적인 법칙(rules)” 보다는 “맥락과 의도를 반영한 용법(usage)”을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씀드린 것은 이런 취지입니다. 일상 생활에서 식사를 가리킬 때 관사는 쓰이지 않지만 특정한 상황이라면 (겉으로 보기에는 학교문법의 법칙에 어긋나는) 관사가 튀어나오기도 한다는 거죠. 무엇보다 거의 모든 언어규칙은 확률적(probabilistic)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관사공부중
#보충설명
#이렇게설명하면학생들은싫어하던데

가르치는 일, 잊지 않는 일

문득,
가르치는 일의 핵심은
잊지 않음에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몰랐던 때를 기억하고
왜 모를 수밖에 없었는지 기억하고
누구를 통해, 어떤 계기로,
어떤 방식을 써서 알게 되었는지를 기억하고,
여전히 모르는 게 많음을 기억하는 일.

혹은,
기억해 내는 일.

더 많이 알아 가르칠 수 있는 만큼
더 오래 기억해야 가르칠 수 있는 것 아닐까.

교수지식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미래 역량으로의 전진이 아니라
무지와 성장의 날들과의 재회에 있음을
다시 한 번 새기는 오후.

그러고 보면 학생들은
참으로 신비한 존재다.

우리들의 과거이자 미래이니.

관사, 조금씩 덜 틀리기

영어 관사 사용을 ‘넘사벽’으로 느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차피 안될 거 뭘 그리 신경쓰나’라는 심정,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사실 극소수의 직군을 빼면 완벽한 문법을 구사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비단 관사만의 문제는 아니고 문법 전반이 그렇죠. 의사소통에 심각한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영어를 하면 되고, 정확성을 확보해야 하는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비용이 조금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하구요.

하지만 한편으로 언어학습이 ‘아주 작은 변화’를 쌓아가는 과정임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차피 안될 것’이라고 체념하고 무조건 맡기려 하기 보다는 조금씩 공을 쌓는 거죠. 세상 모든 배움이 그렇듯 하루 하루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것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관사에 대해 강의를 할 때 종종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틀립니다. 그런데 공부하기 전보다는 훨씬 덜 틀려요.”

정확성을 요하는 일을 하지만 ‘계속 공부해도 틀릴 수밖에 없으니 포기하는 게 맘 편하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타인의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관사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분들은 그렇게 또 소통하시면 됩니다. 저처럼 ‘점점 덜 틀리는 것’도 나름 괜찮은 일이라 생각하는 분들은 언어의 규칙과 자신의 의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공부하시면 되겠죠.

다만 관사 공부를 하다 보니 필요한 분들께 ‘괜찮은 연장’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네요.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계속 파보고 있습니다.

 

#관사공부중

#넘사벽이어도괜찮아

#조금씩나아지면되지뭐

 

Lo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