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영어공부를 허하라!

한국 중등영어교육의 문제가 한둘은 아닙니다만 요즘 곰곰히 생각해 보는 건 이겁니다.

“(영화, 광고, 힙합, 유머, 만화, 소설 등) 재미난 걸 가지고 수업을 하면 학생들이 싫어한다. 시험에 안나오니까. 시험에 도움이 안되니까.”

영어학습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있습니다만, 아주 단순화시켜 보면 ‘동기(재미)X노출X활용’ 의 함수로 설명됩니다. 동기와 재미를 유지하면서 오랜 시간 언어를 접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이 원하는 의미를 표현해 봐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재미가 없으면 오랜 시간 노출되는 게 괴롭습니다. 인지적인 면에서 특정 교과내용에 지속적인 주의(attention)를 가능케 하는 동력은 재미와 관심인데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의 상당 부분은 학생들의 흥미와는 거리가 멉니다. 지속적으로 언어에 노출되지 못하면 의미를 표현하기 위한 레퍼토리를 쌓기 힘듭니다. 말하고 쓸 꺼리가 없으니 영어와 나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게 되고요. 동기와 재미는 점점 떨어집니다. 악순환이죠.

수업을 온통 영화와 팝송으로 채우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재미난 꺼리를 수업에 도입하면 ‘영어 수업이 이래서는 안된다’라는 비판을 받게 되는 구조에는 분명 문제가 있죠. 교육과정에 명시되어 있는 영어과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재미 있는 영어공부가 필요합니다.

“재미난 영어공부를 허하라!”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실현되기 힘든 요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선생님들도 재미 없긴 마찬가지입니다. 모두에게 재미 없는 영어공부는 왜, 누구를 위해 계속되는 걸까요?

텍스트 주석을 활용한 관사학습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관사공부] 일전에 포스트로 ‘관사 공부는 다양한 명사의 용법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오늘은 그 예로 짧은 단락에 사용된 다양한 명사들을 관사의 쓰임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In (1) China, (2) people remember (3) the period from roughly 1849 to 1949 as (4) the “century of humiliation.” (5) The time was turbulent, from (6) the First Opium War ((7) a defeat by (8) the British) through many other defeats and unfavorable treaties in which Chinese people were dominated by (9) the Japanese, French and English. Although (10) the century was declared over in 1949 when (11)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was established, the Chinese remember (12) the sting of those times and still interpret (13) modern events through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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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hina – 일반적인 국가명은 무관사로 사용됩니다. 특히 한 단어로 된 국가명은 무관사 사용이 원칙입니다.

(2) people – 특정한 사람들이 아닌 막연한 복수의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3) the period – 본문에서 특정한 기간을 나타냅니다. 특정(specify)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뒤에 나오는 from … to 를 생각하면 확실히 정해진 기간임을 알 수 있기에 the를 사용합니다.

(4) the century of humiliation – 한 세기는 a century, 두 세기는 two centuries와 같이 사용합니다. 하지만 “~의 세기”와 같이 한 세기를 특징짓는 단어와 함께 사용될 때에는 “the century of …”와 같은 형태가 사용됩니다. “The era of artificial intelligence”와 같이 “era”도 비슷하게 사용할 수 있겠죠. 널리 알려진 다큐멘터리 제목 중에서 “The century of the self”가 생각나네요.

(5) The time – ‘time’이라는 명사는 처음 나오지만, 실제 이 시간이 가리키는 것이 명확합니다. 즉, 앞에서 언급한 세기를 말하기에 ‘the time’으로 쓰는 것이 맞습니다.

(6) the First Opium War – 제 1차 아편전쟁. ‘1차, 2차’ 등의 수식어가 서수로 붙는 경우 앞에 the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7) a defeat 여기에서의 ‘패배’는 특정한 패배라기 보다는 수많은 패배 중 하나입니다. 영국이 당한 많은 패배 중 하나라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the defeat”가 아닌 “a defeat”가 사용되었습니다.

(8) the British – the + 형용사로 특정 국가의 사람들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9) 위 (8)의 설명을 참고하세요.

(10) the century – 앞에 나오는 특정한 세기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the + century로 써야 합니다.

(11) 국가명 중에서 여러 개의 단위가 모인 국가들은 중간에 of가 붙는 경우가 많고, 앞에 the를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the United States of America라고 쓰죠. 줄임말을 사용할 때도 “the U.S.”와 같이 쓰셔야 하구요. The United Arab Emirates 나 The Federated States of Micronesia 등의 국가명에도 the가 붙는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12) the sting of those times – ‘그 시대의 고통’은 특정할 수 있는 고통입니다. 따라서 ‘the’를 붙이는 것이 맞습니다.

(13) modern events – 무관사(zero article)로 사용되었습니다. 수많은 사건들 중 특정되지 않는 단일 사건(an event)이나 특정한 사건(들)(the event(s))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막연히 ‘현대의 사건들’을 가리키기에 관사가 붙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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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텍스트에 주석을 달아가며 관사를 공부해 보았습니다. 관사가 하루 아침에 정복되지 않지만, 이런 방식으로 주석을 달며 공부하다가 보면 조금씩 감이 잡힙니다. 주석에 자신이 생기면 실제 글쓰기 상황에서도 정확히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지문 출처
http://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the-power-of-collective-memory/

#관사공부중
#텍스트주석을이용한문법학습

네니오

Posted by on Jul 19, 2016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네니오.”

오늘의 키워드.
긍정도 부정도 아닌,
‘네’이지만 동시에 ‘아니오’인,
질문자의 YES/NO 선택지를 무력화하는 답변.

“진정한 의식은 고통 없이 이루어질 수 없어요”

Posted by on Jul 18, 2016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잡생각 몇 가지.

1. 완벽에 가까운 통역 기계가 나오면 사람들이 외국어 배우기를 그만둘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완벽에 가까운 기계’가 나온다는 것은 ‘완벽에 가까운 선생’이 나온다는 뜻이고, 이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고도의 정확성을 지닌 통역기의 개발은 몇년 안에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사람들이 외국어 배우기를 그만둘 거라는 생각보다는 노심초사 아이들에게 가능한 많은 것을 주입하려 드는 어른들 걱정이 먼저 든다.

2. 교육학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이 “강의는 범죄(crime)”라는 표현을 썼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강의 자체가 나쁘다는 말이었는데, 정황상 강의가 비효율적이라는 몇몇 연구 결과를 강조하기 위해 쓴 말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강의는 나쁘다”는 말은 “독서가 나쁘다”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좋은 강의인가 아닌가, 강의를 듣는 이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따져보지 않고 강의가 나쁘다고 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강의는 나쁘다”는 선언은 질낮은 강의만큼이나 나쁜 것 아닐까?

3.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글 번역기는 “heavy metal music”을 “중금속 음악”으로 번역했다. 오늘 해보니 “헤비 메탈 음악”으로 제대로 나온다. 그래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긴 한가 보다.

4. 다음 학기 준비를 빙자하여 <Humans>를 열심히 봤다. 인상적인 대사가 많다. 의식을 갖게 된 로봇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본 사람의 “너도 고통을 느끼니?”라는 질문에 돌아온 답.

“진정한 의식은 고통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어요.”

이에 의하면 고통당하지 않고 의식만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은 가짜 의식에 시달리는 셈이다.

5. <Her>를 좀더 자세히 봐야겠다.

Longman Exams Dictionary

Posted by on Jul 18, 2016 in 링크, 삶을위한영어공부, 영어 | No Comments

영영사전은 꽤나 열심히 찾아보는 편인데, 이런 사전이 있는지 몰랐네요. 살펴보다 보니 역시 원소스 멀티유즈의 최고봉은 사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들기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만들어 놓으면 쓸모가 많죠. 다른 컨텐츠로 변환할 때 품이 들어가지만 원재료는 거의 갖추고 있는 셈이니까요. ^^

 

자세한 사항은 아래에:
http://goo.gl/oJzm8y

개별과 평균, 정관사와 복수

평균이 존재하고 개별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존재하는 것’들’을 추상화한 것이 평균이다. 이상적인 학습자가 먼저 존재하고 그 변종으로서 다양한 학습자들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학습자’들’의 특징을 추상화하여 이상적인 학습자의 모습을 만든다. (일반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 ‘학습자’라는 의미로 “the learner”를 사용할 때가 종종 있지만, 이는 수많은 ‘learners’를 추상화한 개념적 결과물임을 기억해야 한다. 문법적으로 단수인 “The learner”는 “learners”에 선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관사공부중

누가 말하는가 그리고 언어의 의미

 

드라마 <Humans> 시즌 1 두 번째 편의 한 장면. 인간을 빼닮은 로봇 Anita가 Hawkins 부부의 집에 가사도우미로 온다. 인간의 감정을 소유한 Anita가 수상한 일을 벌이고 있음을 눈치챈 Laura Hawkins. 자신의 방에 찾아온 Anita에게 “I’m watching you.”라고 말한다. 그러자 Anita도 바로 응수한다. “I’m watching you, too, Laura.” (아래 예고편 22초) 똑같은 “I’m watching you”이지만 이 두 말의 의미와 효과, 뉘앙스는 사뭇 다르다.

언어가 중립적일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이야기하는가>가 말의 궁극적 의미와 효과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아래 예에서는 대화자의 범위가 인간을 넘어 기계로 확장되고있기에 <누가 말하는가>의 효과가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소비자의 입에서 나온 “괜찮은 가격”과 판매자의 “괜찮은 가격”은 다르다. 권력자가 말하는 “중립”이 사회적 약자의 “중립”과 같을 수 없고, “평등”이라는 말조차 누구에 의해 발화되는지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다. ‘누가 말하느냐’가 의미를 구성하는 핵심요소임을 고려한다면 겸양의 표시로 “제가 좀 모자라서요”라고 말한 사람에게 “동의합니다. 그쪽이 좀 모자라죠.”라고 말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의 영어교육에서 방기되어 온 맥락(context)의 복원. 오랜 시간 갖고 있는 화두다. 첫 걸음으로 <텍스트 쓰기>에서 <맥락 쓰기>로의 전환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인데, 아래 클립과 같이 “똑같은 문장으로 대화문 만들기”가 재미있을 것 같다.

Laura: I’m watching you.
Anita: I’m watching you.

The 7 biggest problems facing science

Posted by on Jul 14, 2016 in 과학, 링크 | No Comments

1. Academia has a huge money problem.
2. Too many studies are poorly designed. Blame bad incentives.
3. Replicating results is crucial. But scientists rarely do it.
4. Peer review is broken.
5. Too much science is locked behind paywalls.
6. Science is poorly communicated to the public.
7. Life as a young academic is incredibly stressful.

http://www.vox.com/2016/7/14/12016710/science-challeges-research-funding-peer-review-process

 

묵은 등치들

Posted by on Jul 14, 2016 in 단상, 일상 | One Comment

“그러고 보면 묵은 등치들이 너무 많아.”
“ㅎㅎㅎ ‘묵은 등치들’이요?”
“응. 그냥 남들 못봐주고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들. 나이들어서 자기 고집만 피우는 사람들 말야.”
“아아… 그런 사람들이 어디나 있죠. 그나 저나 이번 주는 그 왜 교육부 관료 때문에 난리던데. 국민들을 개돼지라고 해서.”
“그러게. 교육부면 더더욱 말조심해야 되는 거 아니냐? 왜 사람들을 개돼지로 만들고.”
“그렇죠… 더 조심해야죠. 다른 데도 그렇지만…”
“나이 꽤 먹었지?”
“아닐걸요? 저랑 얼마 차이 안나요.”
“정말?”
“네. 쉰도 안되었을 거예요.”
“그래? 난 그렇게 말하는 거 듣고 당연히 나이 많을 줄 알았다.”
“얼마 안먹었어요. 휴…”
“그럼 나이 얼마 안먹었어도 진짜 묵은 등치네.”
“아… 묵은 등치. 입에 딱 붙네요.”

너무 빨리 ‘묵은 등치’가 되어버린 이들.
새 시대도 순식간에 묵혀버리는 생각과 행동.

그리 되지 말자 생각하지만
쉽지 않음을 느낀다.

관사 공부 키워드 둘 – 명사의 행동방식 그리고 개념화

대부분의 문법서에서 관사는 독립된 챕터로 구성됩니다. 관사의 복잡도를 고려할 때 별도의 장을 할애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한 일이죠. 그러나 이같은 구성은 관사의 성격에 대한 오해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이중 가장 큰 문제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드러납니다.

‘관사 챕터 적어도 세 번은 반복해서 봤는데, 계속 틀리네.’

왜 적지 않은 분들이 이런 경험을 하게 되는지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문장 내에서 관사가 수행하는 기능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사는 독립적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관사는 명사와 함께 쓰이죠. 그리고 명사는 굉장히 많구요. 여기에서 관사 챕터를 반복적으로 보는 것만으로 관사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됩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리자면 관사는 언제나 명사와 함께 나옵니다. 관사로서 “a”나 “the”가 홀로 쓰일 수는 없죠. “I have a.” 라고 말하면 상대는 분명 “A what?”이라고 대답할 겁니다. “I have a”는 불완전한 문장이니 완성을 하라는 요구입니다. (아마도 이런 면에서 거의 유일한 예외는 “What the…”가 아닐까 싶네요. ^^)

그렇기에 관사는 관사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명사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관사를 명사의 행동 방식과 관련지어 이해해야 한다는 거죠. A군에 속하는 명사는 이런 행동 패턴을, B군에 속하는 명사는 저런 행동 패턴을 보이게 되는데, 이들 행동 패턴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정관사(definite article)나 부정관사(indefinite article), 혹은 무관사(zero article)의 활용 방식인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명사의 종류가 관사의 쓰임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명사의 종류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특정한 명사를 어떻게 개념화(conceptualization)하는가죠. 예를 들어 명사 ‘result’를 봅시다.

Result는 ‘결과’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표현으로는 ‘as a result’가 있죠. 그런데 여기에서 왜 ‘a’가 붙었을까요? 앞에 특정한 사건을 이야기하고 나서 “그 결과 …”라고 이야기할 때 쓰는 말인데 “a”가 붙는 이유는 뭘까요? 반드시 “a result”가 되어야 할까요?

사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 예문을 보시죠.

“I tested the new app. The result was quite satisfactory.” (나는 새로운 앱을 테스트해 보았다. 결과는 꽤 만족스러웠다.”

“The stock market crashed. As a result, a lot of people lost their money.” (증권시장이 무너졌다. 결과적으로 많은 이들이 돈을 잃었다.)

사실 위 두 문장에서 result의 뜻은 비슷합니다. 하지만 a의 경우에는 “The result”가, b의 경우에는 “a result”가 쓰였죠. 왜 그런 것일까요?

답은 바로 ‘개념화’에 있습니다. 두 문장의 화자는 다른 방식으로 result를 개념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 문장에서 “result”는 어떤 사건에 대한 결과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사건-결과’를 짝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하지만 뒤의 ‘as a result’에서는 특정한 사건 이후에 일어나는 많은 결과들 중 하나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증권시장이 무너졌을 때 빈곤층 확대, 자살률 증가, 패션이나 예술 트렌드의 변화 등 다양한 영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As a result”는 그들 중 하나를 염두에 둔 표현인 것이죠. (이와 비슷한 개념화를 취하는 표현으로 ‘as a consequence’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관사 공부의 두 가지 원칙을 세울 수 있습니다.

1. 관사를 관사로 공부하지 말고 다양한 명사의 활용법으로 공부하라.

2. 명사의 활용법을 명사의 종류로 환원하지 말고 명사에 대한 개념화로 파악하라.

이 두가지 점을 염두에 두고 관사를 공부하시면 조금 더 나은 결과를 얻으실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관사공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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