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호러

모두에게 같은 교육을 시키고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건, 모두에게 똑같은 안경을 씌우고 최고의 안경사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문제는 이 비유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도 평가의 문제에서만큼은 모두 같은 시험을 봐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는다는 것. 거기에다가 ‘누가 눈 나쁘게 태어나랬어’라든가, ‘눈이 나쁘면 좋은 안경할 돈이라도 있어야지 쯧쯧’이라는 말을 붙이는 사람들을 만나면 정말 할 말이 없어진다.  수십 만의 학생들이 똑같은 EBS 교재를 달달 외울 정도로 공부하는 걸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학교에 출몰하는 귀신보다 학교가 백만 배는 더 무서운 것이다.

당신의 ‘우정질문’은 무엇입니까?

“Do you know (about) ~” 구문을 배운 학생들에게 개인화 미션이 주어졌습니다. 이름하야 ‘우정 질문(friendship question)’ 만들기. 친구라면 알고 있어야 할 것을 아래 빈칸에 넣어 질문을 완성하고, 실제 반 친구들에게 물어보라는 거였죠.

Do you know __________ ?

학생들은 빈칸을 채워나갔습니다. “My birthday”, “my favorite food”, “my hometown”, “my favorite singer” 등의 표현들이 보이더군요. 그때 한 학생이 커다란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 ‘인생’이 뭐예요?”
“인생? Life라고 하면 돼.”

학생은 자신의 빈칸에 “my life”라고 쓰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니가 내 인생을 알어?”

아…

순간 타인의 인생을 다 안다는 듯 떠들어대는 몇몇 이들이 떠올랐습니다.

‘네 인생을 다 안다면 친구가 아니지.’
그러자 저는 모든 걸 아는 자들이 미워졌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나의 우정 질문은 이것입니다.
‘Do you know that you don’t know me?’

당신의 ‘우정질문’은 무엇입니까?

글로 배운 문법의 한계

아래 이야기를 좀더 해보면 이렇습니다. 외국어를 배울 때 동원할 수 있는 다양한 자원이 있고, 그중 전형적인 문법교육이 의지하는 것은 개념적(conceptual) 자원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대부분 그러셨겠지만) 저는 문법을 글로 배웠습니다. 그래서 3인칭 단수를 배울 때 “주어가 3인칭 단수면 동사의 현재형에 -s 를 붙인다”라는 설명을 외웠죠. 그리고 문제를 열심히 풀었습니다. “아 Tom은 나도 너도 아니고 다른 사람인데 1명이니까 -s를 붙여야지’라고 생각하면서 동사에 s를 붙이고 흐뭇해했죠. 이 예에서 저는 오직 개념적 설명에 의지해 문제를 풀었습니다. 지필평가에서는 문제가 없었죠.

하지만 외국어 학습에서 개념적 지식은 다양한 지식의 양태(mode)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외에 어떤 양태가 있을까요?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지각(perception)입니다. 발화와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청각일텐데요. 다음 두 예시를 봅시다.

A building is …
The buildings are …

첫 번째 표현에서는 “A”가 나옵니다. 발음은 /ə/죠. 그리고 나서 “is”가 등장합니다. 이런 표현 즉, <단수를 나타내는 부정관사 a/ə/+명사>에 광범위하게 노출되면 /ə/라는 소리와 단수 동사 사이에 연관이 있음을 우리 뇌가 기억하게 됩니다.

이에 비해 두 번째 표현은 “BuildingS are …”와 같이 복수를 나타내는 “s” 즉 /z/ 발음이 나오고 뒤에 복수 동사인 are가 나옵니다. 이렇게 명사 끝에 /z/ 발음이 나오고 are가 나오는 예에 광범위하게 노출되면 /z/와 / άːr/가 결합되는 소리(한국어로 대충 쓰면 즈아 ^^)가 귀에 익어서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입니다.

이에 더해서 A building is … 나 The buildings are … 와 같은 표현들을 반복적으로 발음하면 /zάːr/와 같은 발음에 익숙해집니다. 흔히 ‘입에 붙는다’고 하죠. 이때 형성되는 것은 운동기능(motor skill)을 기반으로 하는 절차적 지식(procedural knowledge) 입니다. 이건 “3인칭 단수에 s를 붙여라”라고 하는 개념적 지식과는 매우 다른 양태를 띄고 있어서, 뇌와 구강, 혀의 움직임 등이 실시간으로 협응(coordination)되어야만 제대로 작동합니다.

여기에서 ‘글로 배운 문법’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글로 배운 문법은 개념적 지식에만 의존할 뿐 소리를 인지하고 구별해 내는 지각(perceptual) 자원도, ‘몸이 기억하는’ 세밀한 운동기능도 활용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글로 배운 문법은 글쓸 때는 어느 정도 유용하지만 실제 발화에서는 매우 제한적인 역할만을 합니다. 문법교육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글로 배운 문법’을 넘어서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동사의 3단변화, 그리고 유창성 (fluency)

영어를 오래 해도 말이 안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만 그 중에 한 가지를 간단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모든 문장에는 동사가 있습니다. 동사는 의미적으로 문장의 뼈대를 구성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동사를 배울 땐 보통 ‘3단변화’를 익히죠. 예를 들어 ‘move’를 배우면 ‘move-moved-moved’라고 외웁니다.

이렇게 배우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친다면 문제가 되죠. 왜냐하면 우리가 실제로 발화할 때 ‘move-moved-moved’라는 표현을 쓸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영어 수업시간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예전에 <501 Spanish Verbs>나 <501 French Verbs>같은 책을 보면서 ‘뭐 별 내용도 없고 기본동사를 인칭과 시제 순으로 나열만 해놓은 이런 책을 왜 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분명 내용상으로 보면 기본동사 단어집 이상의 역할을 못하거든요.

근데 유창성(fluency)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책들도 분명 가치가 있습니다. ‘Move-moved-moved’ 식이 아니라, 아래와 같이 실제 사용되는 패턴을 연습할 수 있게 해주거든요.

분명한 것은 동사의 3단변화를 안다고 유창하게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영어의 경우도 다양한 주어와 함께 동사변화를 익히는 일이 시간낭비는 아닐 겁니다. 언어교육사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는 Audio-lingual method도 다 쓸모가 있다고나 할까요. :)

I move
you move
he moves
we move
you move
they move
I moved
you moved
he moved
we moved
you moved
they moved
I have moved
you have moved
he has moved
we have moved
you have moved
they have moved
I had moved
you had moved
he had moved
we had moved
you had moved
they had moved

어떤 아이러니

Posted by on Oct 6, 2016 in 강의노트, 단상 | No Comments

몇몇이 교육을 바꾸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회는 수많은 제약과 선결과제를 내세우며 변화에 저항한다. 세대가 지나 그간의 주장들이 조금씩 인정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때 쯤이면 이미 새로운 기술이 삶의 양태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뒤다. ‘그때 그 사람들 이야기가 일리는 있었네. 이젠 뭐 세상이 달라져서 달리 해볼 건 없지만.’

삶의 아이러니는 계속된다.

기타 배우기, 디자인, 그리고 언어교육

기타를 무척 좋아한다. 잘 치지는 못하지만 웬만한 코드는 잡는 거 같다. 손가락이 지판 위를 미끄러질 때 나는 마찰음을 좋아하고, 한없이 반복되는 단순한 리프가 새로운 세계로 빠져나오는 순간을 고대하곤 한다. 무엇보다 기타를 치며 옛날식으로 김광석 노래를 부르는 걸 즐긴다. (써놓고 보니 너무 아재틱… ㅠㅠ)

하지만 나같이 평범한 기타 초심자가 생각하는 기타와 기타연주를 예술의 경지로 올려 놓은 이들이 생각하는 기타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예를 들어 아래 Andy McKee의 핑거스타일 연주를 보자.

우선 이런 연주는 기타의 거의 모든 물성을 동원한다. 기타를 딱 봤을 때 눈에 띄는 표지(signifiers)나, 디자이너가 암묵적으로 제시한 지시사항들(instructions)은 그닥 의미가 없다. 핑거스타일은 기타를 단순한 발현악기가 아닌 타악기로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 둘을 동시에 실재로 만든다. Andy McKee는 그야말로 기타를 재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타를 배우는 일은 관습에 기반한 테크닉을 배움과 동시에 관습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탐색이 어느 경지에 오르면 기타는 현악기도 타악기도 아닌, 그저 ‘기타’가 된다. 그리고 그때의 기타는 그냥 개별 악기로서의 정체성을 뛰어넘어 Andy McKee가 되고, Tommy Emmanuel이 된다.

이를 아래에서 살펴본 디자인 원리와 연결시켜 이해해 보자. 초심자에게 주어진 기타는 지켜야 할 규칙으로 가득하다. 줄을 튕겨야 할 위치가 있고, 몸통을 함부로 쳐서는 안되며, 몇몇 코드를 익히기 전에 자유로운 연주를 꿈꾸는 것은 해롭다. 단계를 하나 하나 마스터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무대 위에서 기타를 난폭하게 뽀개버리는 일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관습의 총합체로서의 악기를 파악하는 것은 악기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인가? 프로가 되려는 사람들은 모르겠으나, 아마추어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악기를 관습에 가두어놓는 것만큼 답답한 것도 없다. 개념적 측면에서 악기를 무한한 가능성으로 파악하는가, 행동의 제약조건으로 파악하는가는 분명 다른 태도와 결과를 가져온다.

‘가지고 놀기’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악기나 사진을 배울 때 기본기 연습에 눌려 흥미를 놓치고 결국 완전히 포기하는 경우가 적잖다. 그렇다면 처음에는 악기나 사진기와 놀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고 차차 본격적인 훈련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Play with the instrument”로 시작하여 with를 점차 떼어내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말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언어 구사를 위해 특정한 어휘와 문법을 완벽히 익혀야 한다고 강변하는 건 말에 대한 지식을 늘려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을 배우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수많은 문법서와 문제집이 제시하는 정답에 매여 말의 총체성 — 말의 아름다움과 추함, 소리와 리듬, 말에 얽힌 감정, 태도, 분노, 좌절, 그리고 삶 — 을 놓치고 있는 우리를 본다.

언어교육의 목표는 낡은 규칙을 배워 새로운 체계를 창조하는 데, 남의 규칙을 통해 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데 있다. 지금 우리는 낡은 규칙을 낡은 방식으로 가르쳐 이미 존재했던 세계 복제하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시간, 사람, 그리고 방법

Collins Cobuild 말뭉치에서 가장 빈도수가 높은 일반명사 셋은 다음과 같다.

1. TIME
2. PEOPLE
3. WAY

그저 통계치일 뿐이라고 생각하기엔 참으로 깊은 메세지를 전달해 주는 순위다.

우린 이 시간을 어떤 이들과 어떻게 살아가고/견뎌내고 있는가.

교과서가 지루한 이유

“교과서가 갈수록 재미 없을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어떤 면에서 그렇죠?”
“이게 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짧게는 6년, 초등학교까지 하면 10년쯤 배우는 건데, 그 교과서들이 사실 다 비슷비슷하잖아요. T/F 문제, Multiple choice 문제, 문법 설명, 단어 설명… 내용이 조금씩 바뀐다고 해도 체계가 똑같은 걸 10년 동안 배우는데 재미가 있을 수가 없죠. 뻔하잖아요.”

생각해 볼만한 대목이다.

반복은 학습에서 뺄 수 없는 요소다. 하지만 수많은 반복으로 학습이 ‘뻔한 것’이 될 때 배움의 기쁨은 사라진다.

디자이너의 딜레마

Posted by on Oct 5, 2016 in 강의노트, 수업자료 | No Comments

디자이너의 딜레마, 혹은 “By Design”이 모든 이들에게 정답이 될 수 없는 이유

UX 디자인을 하는 입장에서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든 예입니다. 네. 바로 iOS 10의 알람이 울릴 때 뜨는 화면인데요. 보시면 알겠지만 중간에 큼지막한 버튼으로 <다시 알림>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손가락으로 터치하기에도 무척 편리하죠.

이에 비해 ‘중단’은 맨 아래 훨씬 작은 폰트로 제시됩니다. 다시 알림에 비해 손가락으로 터치하기도 어렵죠. 이 UI는 마치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듯합니다.

“좀더 자야 되지 않겠어? 다시 깨워줄게.”

하지만 이 UI에 모두 만족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런지는 설명드리지 않아도 아실 듯하고요.

때로 디자이너는 사용자가 UI를 변경할 수 있는 옵션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 시스템의 복잡성이 높아지면서 시스템으로서의 UI Design의 일관성을 떨어집니다. 자칫하면 작은 자유를 주고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죠.

이처럼 “By Design”이 모든 이에게 정답이 될 수 없는 상황은 너무나 많습니다.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도 마찬가지죠. 그렇다면 교재 개발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정답은 없습니다만, 교육적 함의는 명확합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교사의 역할이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단어가 안외워지는 이유

학생들이 잘 외워지지 않거나 헷갈린다고 답한 단어들. 여기에는 음성, 철자, 의미, 빈도수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중학교 때 deduce와 induce가 헷갈려서 한참 헤맸던 기억이 난다. (의미와 형태가 동시에 작용) inflammable은 flammable과 반대인가 싶었던 때도 잠깐 있었는데,(접두사 in-의 일반적인 의미를 적용하려는 습관) 한 학생이 똑같은 이야기를 해서 새삼 반가왔다. Pomegranate가 석류라는 건 몇 번 본 적이 있는 듯한데, 쓸 일이 전혀 없어 뜻을 잊는 경우가 잦다. 한 학생은 Innuendo와 같은 단어가 입에 붙지 않아 기억이 잘 안난다고 했다. (발음) 그리고 우리(적어도 나와 아래 한 학생)의 영원한 숙제 push & pull. 그냥 볼 때는 아는데 빠르게 걸어가며 문을 열어야 할 때 의사결정은 늘 어설프다. (의사결정의 상황) 이와 관련하여 예전에 썼던 글을 덧붙인다.

<Push와 Pull 그리고 USB>

*혹시 여러분들도 저처럼 push랑 pull 헷갈리시나요? 그렇다면 이 글을 재미있어 하실 지도 모르겠네요. pull 과 push 가 평생 헷갈리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과학적 실험은 안해봤지만 이런 요인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우선 언어적인 면이 있습니다. push / pull 자체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둘 다 /푸/로 시작하죠. 게다가 두 단어 모두가 무척 짧고, 음절 수도 같습니다. 원래 짧은 단어들이 구분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죠. 또 pull 을 “밀다”로 생각하게 되는 건 한국어와 영어 단어 사이의 음운적 유사성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밀다”에 [l] 발음이 존재하니까요.

두 번째로는 심리/인지적인 면이 있습니다. pull/push를 구별해야 하는 상황은 대부분 빠른 판단을 요하죠. 누구도 멀리서 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아, 저거 push니까 밀어야지. 불끈!”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문 앞에 바로 다다랐을 때 혹은 손잡이에 손을 대는 순간에 밀어야 할 지 당겨야 할 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인지적으로 부하가 걸리게 되죠. 모국어가 아닌 단어 선택에 대한 빠른 판단을 요하는 과업이므로 비원어민으로서 어느 정도 혼동이 되는 게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결정에 따르는 위험 risk 이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당겨서 안되면 밀면 되고, 밀어서 안되면 당기면 됩니다. 조금 창피한 건 시간 지나면 금방 잊혀지죠. 따라서 이 결정의 결과에 대한 학습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까 좀 헷갈려도 참고 사는 거죠.

이건 USB를 꽂을 때 겪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반대로 꽂아서 연결이 안되는 경우가 많이 있어도, 이후에 슬롯과 USB 방향을 정확히 맞추어서 꽂겠다는 생각은 잘 안하게 됩니다. 잘못 꽂으면 돌려서 다시 꽂으면 되고, 운이 좋아서 제대로 된 방향으로 한 번에 접속이 되면 왠지 횡재한 거 같거든요. (네, 저 단순합니다.) USB가 제대로 꽂힐 확률은 저처럼 부주의한 사람에게는 대략 50퍼센트일텐데, 실패한 경험이 머리에 많이 남아서 굉장히 자주 실패하는 것처럼 기억에 남습니다.

그나저나 한국에서는 ‘미시오’ ‘당기시오’로 통일하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 것 같습니다. 왜 어떤 문에는 push/pull 사인이 붙어있는지. ㅠㅠ 외국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장소라면 병기하면 될 거구요.

추신: 사실 오랜 시간 push/pull 구분이 바로 바로 안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탁구 용어 중에 Push라는 기술이 떠올랐죠. 그 이후에는 그나마 덜 헷갈리더라구요. 탁구에서 라켓을 잡아당기는 기술이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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