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우화] 역사의 변화에 무임승차란 없습니다

Posted by on Nov 28,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아래 이야기는 ‘무임승차’라는 단어를 단초삼아 일종의 우화를 쓴 것일 뿐 현 정치지형을 겨냥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무임승차론” 이야기를 읽으니 성경의 비유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뼈대만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한 포도원 주인이 일손이 필요해 사람들을 모집했습니다. 무난한 일삯, 하루 1 데나리온 을 준다는 조건이었죠.

일꾼들이 한 번에 다 모였으면 좋았겠지만 꽤 큰 시차를 두고 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오전부터 하루 종일 일한 사람들에서, 반나절 일한 사람들, 마감 바로 전에 와서 잠시 일손을 거든 사람들까지 있었죠.

하루 노동을 마치고 일당을 나누어 주는 시간,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종일 일한 사람, 잠깐 일한 사람 관계 없이 모두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도대체 이런 셈법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불공평하다며 따지는 소리가 이리 저리서 터져나왔습니다.

포도밭 주인이 말했습니다. 자신은 처음부터 일당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였고, 그것을 주었는데 무엇이 부당하냐고, 얼마를 일했건 오늘 수고한 이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고자 한다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주인은 불공평하고 공의롭지 못한 사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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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일이지만 저 또한 ‘무임승차론’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었던 듯합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쉽게 하루 일당을 벌지?’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던 겁니다.

대학 초년, 세상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자유나 평등, 해방과 같은 단어들을 무슨 뜻인지도 모른채 집어 삼켰습니다. 커다란 개념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때였죠.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습니다. 이리 저리 모임이란 모임은 죄다 참여하려 했고, 여러 세미나에도 열심히 나갔죠. 다양한 공간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종종 저를 찾아오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저 친구는 집회에 참여하는 것 같지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삶 속에서 체험으로 깨달은 것 같지도 않은데 어떻게 저렇게 쉽게 ‘평등’이나 ‘자유’ 같은 이야기를 하지? 저렇게 막 말해도 되는 걸까?’

특정한 개념을 너무 쉽게 말하는 듯한 친구들에 대한 불만이었죠. 사실 그들이나 저나 별반 다를 게 없었음에도 나름 진지하게 고민했던 듯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디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말입니다.

자유도, 평등도, 해방도 누군가 선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개념들은 수천 년 역사를 통해 인류가 함께 만들어 온 생각의 도구이자 사회적 목표, 나아가 삶의 양식이지요. 당연히 한 사람이 소유할 수도 없고 특허를 낼 수도 없습니다. 먼저 알았다고 뻐길 것도 없고 조금 늦게 접했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저 그런 개념을 만나고 사회를 보는 눈이, 나아가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고민하면 될 일입니다.

이런 단순한 사실을 간과했던 저는 이런 개념들이 ‘너무 쉽게 소비되는 듯한’ 상황이 적잖이 불편했던 것입니다. 사실 저 개념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저같이 편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불편했겠죠. 정말 한심해 보였을 겁니다.

진보를 독점하려는 사람들은 진보일 수 없습니다. 좋은 것을 추구하는 이유는 좋은 것을 나누기 위함이니까요. 그리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소수가 좋은 것을 만들어서 선심쓰듯 나누어 주려는 게 아니라, 과정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 즉 함께 사회를 개선해 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듦으로써 각자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서니까요.

‘무임승차’를 경계하는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애시당초 기차의 소유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인이고 우리 모두가 승객입니다. 아니 애시당초 모든 인간들이 모여 역사라는 기차를 구성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기차에 먼저 탔다고 기차의 주인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을 경계합니다. 먼저 탔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보상임을 잊은 사람들, 먼저 탄 사람의 책무를 잊은 사람들 말입니다.

존경하는 하워드 진 선생은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투를 따라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역사의 변화에 무임승차란 없다.”

흘러간다

Posted by on Nov 28,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대면조사 거부.

세월호 골든타임 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대통령. 수천만 국민이 자신의 과오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데도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 드는구나. 무서운 일관성이다.

반대로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수천만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리 저리 뒤집을 수 있는 대통령. 한두 사람과의 약속도 어기게 되면 며칠 꿈자리가 사나운 사람들의 마음을 알까.

그 오랜 세월 대면보고를 꺼리며 서면보고를 고집한 대통령. 자신이 임명한 사람들마저 멀리한 대통령. 수천만의 국민이 얼굴 한 번 보자는데 끝까지 숨으려 드는구나. 사람을 멀리하고 국민으로부터 도망치려 드는 사람이 대통령의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학교를 생각해 본다. 학생들을 외면하고 그들로부터 도망치는 선생. 학생들을 기만하고 무시하는 선생. 그런 선생이 총애하는 ‘신복’ 몇몇과 함께 권력을 휘두르는 교실.

그냥 지옥이구나…

참담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타락한 정치의 해악은 정치경제, 사회문화 등 거시적 수준 뿐 아니라 국민들의 불규칙한 수면으로, 스트레스로, 홧병으로, 때로는 폭식과 과음으로 나타난다. 몸도 마음도 삐걱거린다.

2016년 겨울.
우리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알 수 없으니
그저 함께 고통받는 이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필 뿐.

내가 모르는 나

Posted by on Nov 27, 2016 in 단상,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니는 중학생 둘과의 대화.

나: 이제 곧 기말이죠? (A를 보며) 시험 관련해서 질문할 거 있으면 해주세요.
A: (머뭇머뭇) 시험 범위를 몰라서요.
B: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 알아!
(순간 침묵)
모두: ㅇㅎㅎㅎㅎㅎㅋㅋㅋㅎㅎㅎㅎㅎㅎ

뭐가 그리 재미났던지 셋이 배꼽을 잡고 한참을 웃었다. 생각해 보면 “자기도 모르는 자기를 타인이 알고 있음”에 대한 훌륭한 유비 아닌가! 몇 년을 지나며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을 이 친구들이 알게 되었겠지.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거고.

그러고 보니 함께 할 2016년도 다섯 주밖에 남지 않았구나.

JTBC 뉴스룸의 강점이 빛나는 대목 몇 가지

Posted by on Nov 23, 2016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1.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 손석희 앵커는 뉴스 곳곳에서 이 표현을 사용한다. 실제로 단순한 사실의 전달을 넘어 사건의 배경과 진행 상황, 앞으로의 전망 등을 짚는다. 이처럼 “한 걸음 더 들어가는 뉴스”를 보다가 사실만 툭툭 던지는 뉴스를 보면 밍밍하기 그지없다.

2. 대화적 진행 – 손석희 앵커는 혼자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기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팩트에 기반한 내러티브를 구성한다. 뉴스를 ‘연설’ 포맷이 아닌 ‘대화’로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3. 대화를 구성함에 있어서 “…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물론 …는 좀더 봐야 되겠습니다만”, “음… 그런가요?” “일단 알겠습니다” “…는 어떨까요?” 등의 표현을 통해 뉴스의 본질 즉 ‘관점에 기반한 팩트의 구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화를 통한 뉴스 전개는 시청자를 대화상대로 끌어들이는 듯한 효과를 낸다.

4. 팩트체크 – 매일 팩트체크 코너를 마련하는 것 자체가 큰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내가 주목하는 것은 스타일 연출에 있어서의 디테일이다.

오대영 기자는 늘 셔츠를 팔목까지 걷어 입고 나온다. 뭔가 해보겠다는 느낌을 준다. 실제 ‘소매를 걷어붙이다’라는 말은 적극적으로 어떤 일에 임하는 모습을 뜻하지 않나?

또한 다른 기자들에 비해 화면을 가리키거나 역동적인 제스처를 쓰는 경우도 많다. 강세를 준 말투도 자주 사용된다. 이러한 일련의 스타일은 ‘팩트체크’라는 코너의 성격과 맞물려 내용의 신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5. 시청자의 ‘선택’ – ’11월 23일’ – 사진, 말, 인물, SNS 등의 아이콘 등이 등장하고 이것을 클릭하는 간단한 애니메이션을 제공하여 시청자들이 선택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늘은 뭘까?’ 은근 기대도 하게 된다.

6. 앵커브리핑 – 내가 보기에 앵커브리핑은 뉴스룸에서에서 튀는 별도 코너가 아니라 전체 내러티브의 중심축이다. 하루 하루 쏟아져 들어오는 뉴스를 나열하기도 벅찬데 앵커브리핑의 주제를 잡는 게 얼마나 힘들까 생각도 들지만, 뒤집어 보면 앵커브리핑으로 중심을 잡고 다른 것을 배치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7. 언어를 유심히 관찰하는 입장에서 앵커브리핑의 가장 큰 강점은 특정 단어를 ‘개념어’로 다룬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애국심’, ‘여리박빙’, ‘수치심’, ‘가드독’ ‘바보’ 등의 단어를 던지고 이의 사전적 의미와 일상적 의미, 그리고 현재 정세에서의 의미를 엮어내는 식이다. 한 단어가 담고 있는 세계를 실타래처럼 풀어내면서 문제의 본질을 보여줌과 동시에 시청자의 공감을 자연스럽게 얻어내는 방식. 손석희 앵커의 능력과 오랜 경험이 가장 빛나는 대목 아닌가 싶다.

덧: 최근 뉴스룸은 사실과 관점, 스타일과 내러티브까지 챙기려는 무리수를 두고 있는데… 모두 성공하고 있다! 게다가 전략적 팩트 분산 기법까지 완벽하게 시전중. 다음에 한국판으로 <하우스 오브 카드 + 웨스트 윙 + 뉴스룸>쯤 되는 드라마 찍어도 될 듯. 물론 그 전에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역사의 심판을.

 

잡생각 몇,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Posted by on Nov 17,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잡생각 몇,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개인적으로 11월 말과 12월 초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매우 커지는 시기다. 방학과 새 학기가 어찌될지 모르는 상태로 지내야 하기 때문인데, 비정규직 강사로서 늘상 겪지만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이 계절, 모든 것을 압도하는 정국의 소용돌이로 나의 불안감은 하찮아 보이기까지 한다.

시대에 휩쓸려가지도 내면으로 도망가지도 않는, 역사의 속도와 나의 심장박동을 엮어 삶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내공에 아직 이르지 못한 자신을 발견한다. 비틀거린다. 그러다 문득 돌아보면 적지 않은 이들 또한 나와 비슷한 상황임을 깨닫는다.

‘다들 힘들구나.’

손을 내밀면 폐가 될까 두렵고, 팔짱을 끼고 있으면 화난 사람으로 보일까 두려운 시절이다. 이렇게 밖에 느낄 수 없는 상황이 길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방학에 뭘 해야 할지 머리를 굴린다. 늘 그렇듯 어떤 일이든 일어나고, 어떻게든 ‘살아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웃으며 ‘뭐 별일 없지’라고 말하는 이들의 얼굴에 스치는 고통을 알아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덧.

지난 주 성긴 언어로 마음을 나누었던 학생이 다시 메일을 보내왔다.

“어제 광화문에 다녀왔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찬 바람에도 춥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학생이 말하는 ‘사람들’, 백만 중에 하나로 있었다는 아무것도 아닌 사실에서 아주 작은 힘을 얻는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그저 함께 버텨내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싸워야 할 이유

Posted by on Nov 13,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100만을 만난 집회에서 돌아오는 길,

허리가 100도 쯤 휜 할머니 한 분이 폐지를 줍고 계셨다.

싸워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우리에겐 쉬운 삶이 필요하다

Posted by on Nov 11,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택시를 탔다. 구수한 목소리의 상냥톤 “안녕하세요”, 대번에 마음이 놓인다. (많이 타지도 않는 택시인데 괴로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나: OO역 사거리 지나서 바로 세워주세요.
기사님: 여기서 직진하면 되는 건가요?
나: 아 네네. 바로 가시면 사거리 나오거든요. 그냥 직진하시면 됩니다.
기사님: 이게 참… 2년 가까이 했는데 아직도 멀리 오면 길이 긴가민가 하네요.
나: 아 길 익히는 게 젤 어렵죠.
기사님: 그러게, 이게 정말 쉽지가 않아요.
나: 쉬운 게 정말 하나도 없죠. 게다가 새로운 일 하시니…
기사님: 뭐 인생이 쉽기만 하면 밋밋하고 재미가 없죠.
나: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기사님: 그래도 최순실이는 20년 넘게 참 쉽게 살았겠어요.
나: ㅎㅎㅎ 네.
기사님: 그냥 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 앞에서 벌벌 떨고…
나: 그랬겠죠. 근데 이젠 그리 못하겠죠.
기사님: 우리같은 사람들은 밥 1-2만원 짜리 먹어도 손이 떨리는데 딸한테 한달 용돈을 천만원 씩이나 줬다니까…
나: 아 그랬나요?
기사님: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이젠 뭐 감옥에서 좀 있어야지.
나: 그렇죠. 검찰이 제대로 해야 될텐데.
기사님: 진짜 제대로 해서 죄지은 사람들 좀 싹다 넣었으면 좋겠는데.
나: 그렇게 쉽게 되진 않겠죠.
기사님: 그렇겠죠. 그래도 바랄 수는 있는 거니까.

세상 일 쉽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딴에는 나름 힘들다고 하겠지만
그런 걸 힘들다고 하는 게
법 위의 특권이며
평범한 삶에 대한 모독이며
수많은 이들에 대한 착취임을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세상에 쉬운 일만 있으면
뭐가 재미있겠냐는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어떤 뜻인지도 알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좀더 쉬운 삶이 필요하다.

그렇게 쉬운 삶을 방해하는 조직을
모두의 힘으로 걷어낼 때다.

그것을 거두어 내어도
삶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라를 우롱하는 자들의 쉬운 삶은
조금 줄어들겠지 않겠는가.

잘 피우고 가세요

Posted by on Nov 11, 2016 in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집에서 나오는데 주차장 구석에서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십대 남자 셋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한 친구와 눈이 마주친다. 흠칫 놀란 나는 고개를 돌린다. 요즘 아이들 무섭다잖은가. 그래도 순간 할 말은 해야겠다 싶어 다시 그리로 고개를 돌린다.

“담배 피우시는 건 좋은데 그쪽에서 피면 창문으로 연기가 다 들어와요.” (사실 담배 피우는 건 안좋다. 무지 안좋다.)

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친구가 담배를 든 오른 손을 번쩍 들며 우렁차게 이야기한다.

“죄송합니다! 이거까지만 피우고 가겠습니다!”
“(꼬리를 내리며) 네.” (근데 저 명랑함은 뭐지? 담배의 효과인가?)

이내 고개를 숙여 배꼽인사를 하는 친구.

“안녕히 가세요!”

나도 얼떨결에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네. 잘 피우고 가세요!”

아니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잘 피우고라니, 잘 피우고라니… ㅠㅠ
목례를 하며 한 말이 고작
“잘 피우고 가세요.”라니.

때론 내가 말을 하는 건지 상황이 말을 빚어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미네르바 스쿨에 대하여

Posted by on Nov 8, 2016 in 강의노트, 링크, 수업자료 | No Comments

주말 동안 <미네르바 스쿨>의 학제와 전공, 교육철학과 접근법을 대략 살펴보았다. 미네르바 대학의 특징을 다음 다섯 가지 항목으로 정리해 본다.

1. 미국실용주의(American Pragmatism)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아래 Stephen Kosslyn 학장의 강연에서도 언급되듯이 미네르바의 교육은 실용적(practical) 지식을 추구한다.

‘실용적’이라는 말에서 신자유주의적 역량모델을 떠올릴 수 있으나, 미네르바가 말하는 ‘실용’은 전적으로 기업이 원하는 지식을 말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지식을 위한 지식, 세계를 묘사하고 설명하려는 지식 전달을 넘어 현실의 다양한 문제를 실제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려 한다는 점에서 “쓸모있는 지식”을 추구한다고 봐야 한다. Peirce와 James, Dewey 등이 초석을 닦은 미국 실용주의의 세계관을 충실히 반영한 교육모델로 보인다.

–> 실제로는 신자유주의적 교육과 미국적 실용주의를 절묘하게 짬뽕해 놓은 듯하다. 미국의 사회경제체제에서 이들이 원하는 ‘실용주의 노선’의 한계는 뚜렷하지만, ‘실용’을 ‘구출’하려는 생각이 엿보인다.

2. 인지신경과학(Cognitive neuroscience)의 기반 위에서 커리큘럼을 구축하였다.

설립을 주도한 Stephen Kosslyn 박사가 인지심리학과 신경과학 전문가라는 점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의 전문분야가 심상(mental imagery)과 개개인의 정보처리 특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네르바의 교육방법론이 인지과학에 정초해 있다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 인지과학에 정초했다고 하지만, 결국 각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자들의 전공과 경험에 따라 수업이 달라질 것이다. 암튼, 이와 비슷한 논지는 저명한 인지과학자인 Roger Carl Schank의 <Teaching Minds: How Cognitive Science Can Save Our Schools>에서 살펴볼 수 있다. Schank 박사의 논리는 인지과학의 틀 위에서 교육의 새판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3. 글로벌 시민 양성 –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수많은 대학들이 세계시민 양성 구호를 외쳐왔다. 미네르바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매학기 세계 각처의 도시로 이동하며 학부를 마치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정규 교과는 대부분 화상강의로 이루어지지만 개별 도시에서 수행할 수 있는 교육 및 자원활동을 디자인해 놓았다. 현재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서울, 런던, 부에노스 아이레스, 벵갈루루, 베를린 등에 거점이 있다.

–> 8학기 동안 세계를 돌면서 공부하는 거, 괜찮은 거 같다. 돈이 좀 많이 들겠지만… 찾아보니 미국 사립대학 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싸다고 한다. (첨부한 그림 참조)

4. 핵심역량 – 전통적 분과학문 중심주의를 넘어선다.

미네르바는 전통적인 분과학문체계를 넘어서는 핵심역량을 키우기 위해 두 가지 개념적 도구(conceptual tools)를 동원한다. 각각은 기초개념(Foundational Concepts), 마음의 습관(Habits of Mind)으로 불린다.

각 강의는 특정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지식 체계를 비판적으로 종합, 분석해 낼 수 있는 기본 개념들 및 일련의 자동화된 사고방식을 배양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는 미네르바의 교육목표 중 하나가 “폭넓게 사고하는 인재(Broad Thinkers)” 양성이라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아울러 복잡계 시스템이 학부 전공 중 하나로 떡 들어가 있었다는 점도 신선했다.

–> 분석도구를 풍부하게 쥐어주는 건 아주 좋다. 다만 도구가 사고를 압도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사라지진 않는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온 세계가 못으로 보인다는 말도 있잖은가.

5. 기술의 활용 – 웹으로 모든 것을 진행하지만, 교수학습의 핵심 프로세스에 집중한다.

미네르바의 정규수업은 웹상에서 이루지고, 다양한 기술이 동원된다. 하지만 기술 활용은 교수학습의 핵심 요구사항에 집중된다.

미네르바가 강조하는 학습은 <능동적 학습(Active Learning)>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수업이 진행되는 내내 사고, 표현, 토론, 피드백 등이 끊이지 않는 형태다. 필요한 경우 전체 강의 모드에서 조별 토론 모드로 전환이 가능하고, 즉석해서 협업문서를 만들어 작업할 수 있다. 강사의 피드백은 개개인을 타겟으로 한다.

사실 이 모든 활동은 전혀 새롭지 않다. 미네르바의 기술 사용은 이같이 핵심적인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데 한정된다. “웹으로 모든 것을 진행하지만, 교수학습의 핵심 프로세스에 집중한다”고 말할 수 있다. 기술을 통해 전통적 강의식 수업의 단점을 극복하고 면대면의 강점을 최대화하는 방식이다.

–> 능동적 학습에 적합한 학생들은 괜찮지만 흔히 말하는 내향적 인간들에게는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가끔 장난스럽게 쓰는 말 ‘전형적인 미국적 나댐(Typical American assertiveness)’에 적합한 수업 및 평가방식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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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논의는 미네르바 대학측의 설명에 근거한 것이다. 따라서 실제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고, 학습자들과 교수자들의 평가는 어떤지 알지 못한다. 이 새로운 실험의 성공 여부는 졸업생이 사회에 나올 때쯤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으나 적어도 뭔가를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전통적 교육의 틀을 깨고 나오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관심있는 분들은 (1) 미네르바스쿨의 웹사이트를 둘러본 후 (2) 아래 링크의 강연을 시청하시길 권한다.

(1) 미네르바 대학 홈페이지

https://www.minerva.kgi.edu/

(2) 미네르바 설립을 주도하고 커리큘럼의 뼈대를 짠 Stephen Kosslyn 박사의 버클리대 강연

https://www.youtube.com/watch?v=5-NRAg0_y1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