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써내려간 글

Posted by on Apr 14, 2017 in 강의노트,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작가가 술술 써내려간 글을 읽기 위해 독자는 오르막길을 오르고 또 올라야 한다. 반대로 작가가 오르막에서 흘린 땀만큼 독자의 이해는 깊어진다. 쓰기가 쉬워지는 순간 읽기는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글쓰기를 뇌에 담긴 생각을 외부로-밀어내는(ex-press) 행위로 보느냐, 원석(초고)을 깎고 다듬어 조각으로 탄생시키는 행위로 보느냐는 적지 않은 차이를 가져온다. (11시59분에 오탈자 가득한 글(원석)을 내는 분들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분들 원석 깎는 게 제 일인데요 뭐.)

행복한 사전

요즘 Merriam-Webster 사전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Kory Stamper의 책 <Word by Word: The Secret Life of Dictionaries>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가 마이너스가 되는 직종이래나 뭐라나. Oxford 영어사전 이야기를 다룬 <교수와 광인>, <The meaning of everything>이나 Roget 유의어 사전의 탄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The Man Who Made Lists> 같은 책을 가지고 사전학 수업을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덤으로 영화 <행복한 사전>도 함께 보면 좋겠다.

==========================

며칠 전 짝과 함께 <행복한 사전>을 보았다. 여러 분들께 이 영화를 추천받았는데, 가장 먼저 보자고 한 건 짝이었다. 그냥 저 동네에서 일어나는 꽤나 감동적인 픽션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우리의 현실로 다가온 건 직업 때문이었을까? (짝은 책을 만들고 나는 언어학을 공부한다.)

‘사전’하면 단어와 뜻풀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종이사전을 열면 단어들이 주욱 나열되어 있고, 단어마다 n개의 의미가 정리되어 나온다. 하지만 이 모습은 빙산의 일각이요 유구한 세월 끝에 달린 찰나다. 영화가 잘 보여주듯 사전을 만드는 것은 복잡다단한 일이다. 컴퓨터가 아니라 손으로 단어와 의미를 일일히 기록해야 한다면 그 수고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책으로서의 사전은 시쳇말로 ‘역대급 노가다’가 만들어 낸 거대 구조물의 표면일 뿐이다.

하지만 사전작업은 철학이 반드시 필요한 노가다다. 사전의 방향을 정하고 표제어를 고르는 일이 시대의 윤곽을 그려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너무 거창한가? (직업적으로 선입견에 찌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생각해 보자. 새로운 사전 편찬의 첫걸음은 원칙에 따라 더할 단어들과 뺄 단어, 그리고 남겨둘 단어들을 고르는 일이다. 먼저 떠나야 할 단어와 남겨둘 단어, 그리고 새로 맞이해야 할 단어들로 새로운 사전이 채워지면서 지난 사전들의 시대와 새로운 사전이 열어젖힐 시대 사이의 세계가 윤곽을 드러낸다. 이런 의미에서 표제어의 선정 자체만으로도 역사와 시대를 구획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표제어 선정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후 더 큰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고 분류하는 일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정 단어를 하나의 표제어로 처리할 것인지, 두 개의 표제어로 처리할 것인지부터 엄청난 골칫거리다. 유의어와 반의어를 정의하고, 용례를 설명하는 데까지 이르면 해야 할 일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다.

이뿐이 아니다. 많은 인력이 동원되는 장기간의 작업에서 특정 단어의 의미 분류에 적용한 원칙을 모든 단어에 일관성 있게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각각의 단어에 알맞는 예문을 확보하고 분류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사전 작업은 그야말로 산너머 산이다.

사전을 만드는 사전 편찬자는 바보가 될 운명이다. 사전이 출판되는 순간 많은 단어들의 의미와 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A라고 정의했던 단어는 B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고, C라는 단어는 유행에서 사라지고 없다. D라는 단어은 그 뉘앙스가 180도 바뀌어 있고, E라는 단어에는 정치색이 너무 많이 들어가 버렸다. F를 사용하면 꼰대스럽고, G를 사용하면 왠지 잘난체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단어를 모으고 정의와 예시를 써내려갈 때는 안그랬는데 말이다. ㅠㅠ

그렇다.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사전을 만든다고 해도 표제어 중 상당수가 화석화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세월을 막을 수 없기에 단어들은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어간다. 사전은 이렇게 삶과 죽음, 성장과 퇴화, 변심과 배반의 모습이 모두 들어있는 세계의 축소판이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사전을 만드는 것은 인생과 같다”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사전을 만드는 것이 나의 인생을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 그런데 <나>라는 사전을 채울 단어와 의미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내가 아닌 세계와 타인에게서 온다. 세상과 사람들에서 배운 것들로 <나>라는 사전을 채워가고, 의미를 써내려간다. 사전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소통이다.

하지만 늘 베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 멋대로 단어를 만들 수는 없지만 <나>라는 사전에 등재할 표제어를 고를 권한은 나에게 있다. 그 표제어에 가장 알맞는 예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직접 예문을 써내려 갈수도 있다!

사전이 언제나 미완성이듯 나도 언제나 뒤죽박죽이다. 지금 내 안에는 새로운 생각과 죽어가는 생각, 오랜 시간 나의 일부로 살아온 생각이 혼재되어 있다. 지지리 못났지만 내가 살아온 세계를 오롯이 담고 있는 사전이 바로 <나>다.

우리 각자가 사전이라면, 당신의 ‘행복’과 나의 ‘행복’은 조금 다를 것이다. 당신의 마음에 들어있는 단어 중에서 내 마음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도 있으리라. 당신이라는 사전에서는 ‘돈’이 스무 가지 뜻으로 풀이되는 밝은 단어이지만, 나라는 사전에서는 두어 가지 뜻을 지닌 어두운 단어일지도 모른다. 당신이라는 사전에 등재된 수많은 단어들이 내 사전에서는 단 하나의 추상어로 나와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존재할 것이다.

이렇게 우린 참 많이 다른 사전이지만 몇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나라는 사전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당신들이라는 사전이 필요하다는 것. 살아가는 것은 그렇게 서로를 정의하고 서로에 의해 정의당하는 일이며, 그 와중에 이해와 오해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기 마련이라는 것. 그래서 때로는 잘 정의된 단어로 나 자신을 빼곡히 채우는 것보다 빈 페이지들을 넉넉히 남겨두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

2014.4.10.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Posted by on Apr 9, 2017 in 단상, 링크, 일상 | No Comments

얼마 전 학생들과 함께 Candy Chang의 <Before I die>라는 TED 강연을 봤다. 각자가 죽기 전에 뭘 하고 싶은지 써보는 시간도 가졌다. 여행애 대해 언급한 학생들이 제일 많았고,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다거나 자기 집을 직접 디자인해 보고 싶다는 친구도 있었다.

나에게도 뭘 해보고 싶냐고 묻길래 “죽기 전에 작은 뮤지컬 하나를 기획하고 전곡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몇몇 학생들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설마’, ‘에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급발동한 자격지심에 “아무도 안보러 와도 괜찮아요. 만드는 게 중요하죠.”라며 능청을 떨었다. (아무도 안오기만 해봐라.)

오늘은 오랜만에 건반이 있는 방에 들어섰다. 좁은 공간에 온갖 책들과 잡동사니가 널려 있어 환기를 시켜도 잔먼지가 쉬이 가시지 않는다. 알러지성 비염이 있는 나에게는 고통스런 환경이다.

그래도 한 학기에 한두 번은 쳐야 되지 않을까 싶어 (미안하다 건반아) 마스크를 끼고 건반을 연주했다. ‘음… 역시 녹슬었어. 하지만 뭐 하루 이틀이냐.’ 신나게 두들기다 보니 손이 꼬이며 숨이 차온다.헉헉. 이게 사는 건가.

생각해 보니 아무도 안보러 오는 건 둘째 치고 배우로 나설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뭐 안되면 내가 다 불러서 라디오 드라마처럼 만들지 뭐. 그럼 또 아무도 안들을 거 아냐? 아 급 우울해진다. 이도 저도 안될 거 같은데 그냥 꿈을 바꿀까? “죽기 전에 미세먼지와 비염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로.

https://www.ted.com/talks/candy_chang_before_i_die_i_want_to

 

‘극과 극은 통한다’

Posted by on Apr 4, 2017 in 강의노트,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다.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는데 정치의 영역에서는 (극)좌파 인사가 우파, 그 중에서도 극우 정치인으로 변신했을 때 종종 등장한다. 이 말의 매력은 (1) 직관적이며 (‘극’이랑 ‘극’ – 결국 같은 ‘극’이잖아?) (2) 명확한 예시를 찾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예전에 골수 운동권 OOO, 지금은 XX당 최고위원이잖아?).

하지만 과연 ‘극과 극은 통한다’는 명제가 통계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답은 모르겠다. 포괄적 정치인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이들의 정치성향 좌표를 시대별로 추적한 자료를 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나의 직관으로 ‘극과 극이 통한다’는 말은 과학적 데이터라기 보다는 인상/인물비평에 가깝다. 많은 정치인들의 성향은 조금씩 바뀌지만 극에서 극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극과 극이 통한다’는 말은 확증편향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저 진술에 맞는 데이터가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달까. 강력한 힘을 지닌 예시 몇 개가 모집단에 대한 판단을 결정하는 상황 말이다.

지난 미 대선에서 버니 샌더스와 도널드 트럼프의 유사성을 비교하며 두 후보를 같은 급으로 매도했던 기사들이 떠오른다. 이 둘은 같은가?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고, 이 판단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럼에도 ‘극과 극이 통한다’는 말이 효력을 갖는 이유는 극좌와 극우가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열망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인물이 우리 앞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경우 ‘극과 극이 통한다’는 사상적 좌표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광적인 집착과 관련된다. 즉, 상이한 정치세력 사이의 관계가 아닌 개개인의 품성에 대한 진술에 가깝다.

교육개혁의 이유

Posted by on Apr 3,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교육개혁 없이 미래 없다”라는 오랜 격언(?)을 들으면 ‘누군가에게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하며 미래를 걱정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 덕에 그 어떤 선택지도 없이 현재를 통째로 희생해야 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건 아닌가. 미루기야 인간의 속성이라지만 사회가 미룬 숙제 덕에 형편없는 정책들이 쏟아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미래세대’, 아니, 여기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지금세대’에게 돌아간다. 미래를 위해, 혹은 ‘4차산업혁명’ 때문에 교육개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 함께 살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다.

감수성의 정치

Posted by on Apr 3,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 No Comments

‘감수성’을 계급과 젠더, 생태 이슈의 중심에 놓는 일은 위험천만하지만, 감수성의 영역이 제도의 틀을 넘어선 아비투스의 문제이며 일상을 지배하려는 권력들의 전쟁터라는 사실을 놓쳐서도 안된다. 순간 순간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 어떤 사진을 찍고 포스팅하는지, 어떤 가사와 몸짓에 열광하는지, 어떤 ‘짤’이 순식간에 퍼지는지, 어떤 이미지에 가슴이 떨리는지, 어떤 용어들이 마음을 어지럽히는지. 결국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혐오하게 되는지는 감수성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오감의 작동방식과 정보에 대한 태도를 구획하는 감수성의 권력은 은밀한 만큼 강력하다. 계급, 젠더, 생태 이슈들에 대한 시민의 각성과 성장은 감수성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떼어놓을 수 없다.

주류와 비주류

Posted by on Apr 2, 2017 in 강의노트, 단상 | No Comments

철저히 개인적인 견해입니다만 주류의식을 가진 주류보다 주류의식을 가진 비주류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주류마저 인정하는 비주류라면 진짜 멋지겠지만 좀처럼 실현되기 힘들죠. 비주류 의식을 가진 비주류요? 부둥켜 안고 울고 웃을 수 있는 친구들이 꼭 필요하지 않을까요? (눈물)

물론 다들 밥은 먹고 다닌다는 전제 하에서 그렇습니다.

휴일을 확보하는 창의적인(?) 방법?

Posted by on Apr 2, 2017 in 강의노트, 일상 | No Comments

나: 4월까진 휴일 없죠? 그래도 중간고사 끝나면 좀 낫겠네요.
희: (학사일정 프린트를 꺼내어 5월 첫째 주를 가리키며) 5월에 휴일 많아요.
나: 그렇죠? 직장인들은 중간 중간에 쉬려고 벼르고 있던데… 거기다가 5월 9일에 대선이라 또 쉬잖아요.
학생들: 아싸~~
나: 노니까 좋죠?
학생들: 당연하죠. ㅎㅎㅎ
희: 선거 자주 했으면 좋겠다.
나: 아… 이번에는 탄핵 때문에 쉬는 거잖아요. ㅠㅠ
희: 그래도요.
나: 또 이러면 안되죠.
희: 후보들 다 거기서 거긴 거 같은데 탄핵하고 돌아가면서…
나: 아… 진짜 쉬고 싶은가 보다.
희: 놀면 좋죠.
수: 아 쉬고 싶다.

===

“연속 탄핵에 의한 휴일 확보 열망”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설교를 늘어놓진 않았다. 다만 중학생들이 ‘쉬고 싶다’는 말을 연발하는 사회가 좋지 않다는 건 확실하다.

Lo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