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아니라’와 글쓰기 교육

“다름이 아니오라”는 메일에서 피해야 할 어구로 종종 지적된다. “다른 게 아니고” 같은 표현들은 가급적 피하라는 것. 생각없이 나오는 군더더기 표현으로 정보가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저 표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다름이 아니오라”는 메일의 내용이 아니라 문화적 사고패턴에 대한 정보를 담기 때문이다. 내용상 필요없을 지 모르지만 문화적으로는 통용되는 메시지 전달의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메시지가 아닌 메타-메시지의 영역이다.

유난히 ‘있잖아’, ‘그거 알아?’ 등의 표현을 자주 쓰는 친구가 있다. (그런 친구 하나쯤은 다 있지 않나.) 이들은 그 자체로 특정 내용을 담고 있진 않다. 그래서 이런 말장난을 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실행에는 옮기지 않는다. (대신 써본다.)

“있잖아.”
“응 있지. 분명 있어.”

“그거 알아?”
“그거? 이건 아는데.”

“있잖아”가 전달하는 내용은 없다. 하지만 화자가 “있잖아”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청자는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있잖아’라는 말을 짜증스러워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오랜 기간 특정 문화 속 대화를 통해 사고구조를 형성해온 사람들은 “있잖아”를 듣는 순간 뭐가 있는지 순간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다름이 아니오라”는 상대방이 메시지를 읽기 전 짧은 준비를 할 여지를 준다. 뒤에 나오는 내용이 상대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하거나, 업무를 요청하거나, 불쑥 질문을 던지거나 하는 일일 수 있다는 신호(signal)다.

그렇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일은 무례하게 비춰질 위험을 무릅쓰는 꼴이다. “다름이 아니오라”는 진부하고 정보성도 떨어지지만 이런 위험을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하는 전략으로 유효하다. 겨우 두 단어지만 말이다.

“다름이 아니오라”를 쓰지 말라고 할 때 “안좋으니 쓰지 마세요”라고 말하기 보다는 이 구절이 여전히 우리 곁에서 떠나지 않는 문화적, 인지적 이유를 설명하면 어떨까? 안좋으니 쓰지 말라고 하기보다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나눠보면 어떨까?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느냐고,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고 핀잔만 듣게 될까?

하지만 때로는 ‘어쩌라는 것’ 보다는 ‘그렇다는 것’이 더 나은 글쓰기 교육일지 모른다. ‘~하라’ / ‘~하지 말라’만 난무하는 글쓰기 교육은 테크닉을 주고 생각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다름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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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뵙고 싶습니다!

Posted by on Jul 27,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꼭 뵙고 싶습니다.”

이렇게 설레는 멘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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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신청 정원 초과시 학생들의 메일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강사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거의 모든 메일에 부사 ‘꼭’이 등장한다. 위의 문장도 어느 학생의 메일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다.

내가 수업을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학기 말이면 그런 말은 나오지 않는다. 가끔 ‘꼭 다시 연락하겠다’는 친구들도 있지만 인연을 이어가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연락하고 만나고 지내는 학생들은 큰 인연이지 싶다.

이렇게 2학기가 성큼 다가왔다. 학생들을 보고 싶지만 방학을 보내고 싶진 않다. 딜레마는 언제나 시간이 해결해 준다.

현재란 무엇인가?

Posted by on Jul 25,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현재’는 흔히 생각하듯 ‘물리적 순간’이 아니라, 특정 시점에서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 100% 확실하게 예측 가능한 사건들의 집합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아무말 대잔치

Posted by on Jul 21, 2017 in 강의노트,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1. Literally는 ‘말 그대로’이지만 비유적으로 사용될 때가 더 많은 듯하다.

예: “It literally killed me.” (<-안죽고 살아서 신나게 말하고 있음.)

2. ‘아무말 대잔치’를 제목으로 한 글들은 대개 읽을만하다. 아무말 대잔치는 진지하게 쓴 글 중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3. 유명인의 아무말 대잔치는 아무댓글 대축제로 급속히 발전한다.

4. “진실로”를 반복 사용한 수사 중에 예수의 말씀 빼고 쓸만한 얘기가 별로 없는 거 같다.

5. “It is true but…”, “I’m sorry but…” 등의 어구에서 “but”이 나오는 순간 앞의 ‘true’와 ‘sorry’의 가치는 땅에 곤두박질친다.

But은 진실이나 미안함보다 힘이 세다.

6. 내일 지방 강의가 있다. 진짜로 진짜로 자러 가야겠다.

새학기 준비

Posted by on Jul 20, 2017 in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고 흥미나 관심, 수준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16주 수업의 개요와 읽기자료, 과제 및 평가방법까지 모두 정해야 한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 두어 명의 중학생 친구들과 3년 여를 만나면서 제일 좋았던 것은 그날 그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 물론 학생수가 적었다는 게 컸습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상호 신뢰의 관계를 쌓을만한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 대학에서의 만남은 대개 강의계획서와 함께 시작됩니다. 첫 시간에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은 배움의 내용과 방향이 아니라 과제와 시험, 평가 기준에 대한 것입니다.
 
. 현재의 대학교육 체제에서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 하지만 자연스럽다는 게 바람직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 빈틈없이 짜여진 강의요목과 완벽한 변주로 흘러가기 – 이 둘 사이 어딘가에서 중심을 잡아야만 하겠습니다.
 
. 아직도 서툰 것은 이런 접근법을 ‘객관적’이어야만 하는 상대평가 구조에 통합하는 일입니다.
 
. 이번 학기에도 새로운 강의가 많습니다. 얕디 얕은 응용언어학/영어교육학 지식의 팽창은 계속되겠네요.
 
. 고민한다고 될 일이 아닌데 고민이 됩니다.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게 많습니다.

숭고함

Posted by on Jul 18,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반듯이 구별되진 않지만 약자가 자기 편인 사람이 있고, 자기 편이 ‘약자’인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둘다 약자를 위한다 믿고 살아가지만, 약자로서 약자를 섬기는 이들과 강자의 위치에서 강자를 키우려는 이들의 차이는 작지 않다. 영원히 약자로 남을 수 있는 강인함은 고통과 단련을 요구하지만 ‘숭고함’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단 하나의 성품 아닐까.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성평등 인권교육

Posted by on Jul 17,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해마다 돌아오는 교직원 대상 성평등 인권교육. 예전에는 뻔하고 지루해서 힘들더니 이젠 날것 그대로의 묘사가 사뭇 고통스럽다. 운좋게 폭력을 비껴 살아온 나도 이렇거늘 폭력을 경험했거나 위험에 상시 노출된 이들은 어떨까? 성’평등’ 교육이니 모든 이들이 동일한 내용의 교육을 받는 것을 당연히 여겨야 할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끔찍한 상처를 헤집어야만 하는 이들이 있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손편지와 전자우편

Posted by on Jul 16, 2017 in 강의노트, 단상, 링크, 수업자료 | No Comments

‘우편, 편지’를 의미하는 영단어 mail은 고대 프랑스어 male에서 온 것으로 초기에는 여행 가방을 의미했다. 이후 우편제도의 발달에 따라 ‘우편물’ 혹은 ‘편지를 부치다’등의 뜻으로 진화했다. 20세기 후반에 대중화된 e-mail은 ‘전자우편’이라는 뜻의 electronic mail의 준말이다.

편지가 이메일이 된 것은 전달의 매개 즉 미디엄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우편배달에 있어 궁극의 퀵서비스가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전달방식’으로만 이해한다면 전자우편 기술의 반쪽만을 보는 결과를 낳는다.

이메일은 메시지의 전달방식(delivery method) 뿐 아니라 정보의 저장방식(archiving method)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편지는 정보를 담은 물체가 공간이동을 하지만, 이메일은 정보를 복제하여 상대와 공유한다. 편지는 내 손을 떠나 보내는 것이 맞지만 이메일은 실상 나에게도 너에게도 보내는 것, 즉 ‘카피 앤 페이스트’하는 것이다. ‘이메일을 보내시겠습니까?’라는 말은 ‘이메일을 복사에서 홍길동의 메일 서버에 붙이겠습니까?’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동일한 디지털 정보를 두 사람이 갖게 되는 사태는 물성을 지닌 편지가 받는 사람의 소유가 되는 사태와 사뭇 다르다. 편지라는 미디어는 정보 및 그 담지자(carrier)의 비대칭성을 특징이지만 이메일은 정보의 대칭적 소유가 특징이다. 이런 의미에서 “SEND” 버튼은 “GIVE & TAKE” 아니, “TAKE & GIVE” 버튼이다. ‘보내기’ = ‘나 한부 갖고 너 한 부 갖자.’

편지를 보내는 순간 나에게서 떠난다. 사라지는 편지라야 진짜 편지라는 말이다. 이메일은 보내는 순간 나에게도 남겨진다. ‘보낼 편지함(미래)’에서 ‘보낸 편지함(과거)’로 이동하지만 여전히 내가 쥐고 있는 상황은 지속된다. 동일한 메시지를 담는다 하더라도 편지는 ‘사라짐의 미디어’이고 이메일은 ‘남겨짐의 미디어’랄까.

손편지를 쓰다가 뭐 이렇게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노트 필기였다면 이렇게 장황하진 않았을 거다.

숙제를 할 시간

Posted by on Jul 16,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일전에 언급했듯이 맘고생을 좀 심하게 한 수업이 있었다. 바보같은 두려움이 수업을 잡아먹었고, 몇몇 학생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연신 돌아보는 걸 보면 상처가 아직 다 아물진 않았나 보다.

처음부터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응용언어학 전공자로서는 드물게) 해당 분야에서 실무자로 일했고, 프로그램 기획, 구축, 실행, 평가의 사이클도 여러 번 돈 경험이 있었다. 해될 것이 없는 자산이었다.

두려움이 엄습한 것은 몇몇 학생들이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평가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분명 강사로서 수업상황에서의 권력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매번 면접관들 앞에 선 기분이었달까. 몇몇의 항의성 이메일과 거침없는 코멘트 속에서 느껴지는 태도를 요약하면 이거였다.

‘그래 너 얼마나 잘 하나 보자.’

가르치는 일을 하는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의 찌질한 트라우마를 차분히 들은 친구가 입을 열었다.

“요즘 친구들이 그런 경향이 좀 있는 것 같아. 얘네들이 어렸을 때부터 인강을 듣고 자랐잖아? 그러니까 유명한 강사라도 좀 보다가 ‘아니네’ 하면 다른 강사, 또 ‘아니네’하면 다른 강사. 이렇게 선생을 골라가면서 공부한 세대거든. 그리고 고등학교 때나 학원 같은 데서도 무기명으로 평가를 해. 그때 마음에 안드는 게 있으면 자기 감정을 여과없이 다 쏟아놓기도 하지. 그러니까 선생을 고르고 평가하고 여차하면 ‘버리는’ 데 익숙해지는 거야. 그냥 어렸을 때부터 죽 해왔던 일이라 너무 자연스러운 거지. 너 개인에 대한 태도라기 보다는 그렇게 자라온 걸 거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게 다는 아니겠으나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수업을 맡고 그들과 마주하면 구조탓을 할 수는 없다. 결국 내가 감당해야 할 일. 손쉬운 해결책은 없다.

숙제를 해야 할 시간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지!

Posted by on Jul 15, 2017 in 단상, 링크 | No Comments

“그래서 하고 싶은 게 뭐야? 정말 하고 싶은 걸 찾아야지.”

세월의 밑바닥에 켜켜이 쌓인 회한이 또다시 이루지 못할 꿈의 탄생을 재촉한다. 듣는 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고 해도 꿈을 찾으라는 충고 때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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