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영어교육학 강의 (1) – 언어학습? 언어습득? 언어구축?

Posted by on Jul 15, 2017 in 강의노트, 삶을위한영어공부 | No Comments

외국어를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과정과 관련해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동사는 아마도 ‘학습하다’와 ‘습득하다’일 것이다. (외국어를 학습/습득하다; learn/acquire a foreign language) 실생활에서는 구별 없이 쓰기도 하지만 개념적으로 보았을 때 약간 다른 함의를 가지고 있다.

학습(learn)은 무난한 표현으로 가장 널리 쓰인다. 이에 비해 ‘습득’은 미묘한 함의를 담고 있어 언어학습에 대한 생태학적 접근(ecological approach)을 추구하는 소수 학자들에게는 피해야 할 동사로 인식되기도 한다. 왜 그럴까?

습득(acquisition)은 (1) 외부에 있는 것들이 내부로 들어와서 (2) 자신의 소유가 된다는 함의를 지닌다. 경영학에서의 인수합병(M&A(Mergers & acquisitions)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직역은 ‘합병인수’인가? ^^)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정보가 개인의 소유가 된다는 관점은 서식처(habitat)와 어포던스(affordances)를 강조하는 생태적 접근과 충돌하는 것이다.

이를 비판하며 제시된 대안적 개념으로는 참여(participation)가 있다. 여기에서는 언어를 소유물로 보고 이를 습득하는 것으로 파악하기 보다는 특정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는 과정으로 파악한다. 즉, 외국어를 배우는 일은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코드들을 습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문화적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일이다. ‘합창의 기술을 습득한다’와 ‘합창단의 일원이 되어 활동한다’라는 두 명제를 비교하면 ‘습득 vs 참여’라는 관점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인지언어학을 공부하면서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언어를 창조 혹은 구축한다’라는 개념이다. 이는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영장류 연구를 이끌며 용법기반 언어습득을 연구하는 마이클 토마셀로의 역작 <Constructing a Language>의 제목이기도 하다. 학부생 한 명과 나누었던 대화 한 토막을 살펴봄으로써 “언어의 구축”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

나: “그러니까 문자를 아직 안배운 아이들을 생각해 봐요. 주변 소리를 모방해서 “가(go)”, “감(persimmon)” 같은 것을 발음하면서 두 단어 모두 ‘가’를 포함하고 있고, 다른 단어들에도 /ㄱ/, /ㅏ/, /가/ 소리가 반복해서 등장한다는 것, 나아가 /가/가 자음 ‘ㄱ’과 모음 ‘ㅏ’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할 수 있죠. 이런 점들을 인지하지 못하면서도 발음을 해낼 수 있어요.”

학생: “발음을 할 수 있는데,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죠?”

나: “특정한 발음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 발음이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거든요. 성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해가 안될 수 있지만, 말을 처음 배우는 아이들이 분절음의 체계적인 조합으로 단어가 이루어진다는 걸 깨닫는 데는 시간이 필요해요. 문법적인 규칙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고요.”

학생: (연신 갸우뚱대며)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을까요?”

………..

언어학습 이론을 공부하면서 흔히 나타나는 오류를 보여주는 듯한 장면이다. 아이들이 ‘성인의 언어, 나아가 ‘성인이 이론적으로 체계화해놓은 언어”를 배운다고 생각하는 것 말이다. 이는 아동의 언어습득과정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우리는 대개 아이들이 언어를 습득한다(acquire a language)고 표현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른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커뮤니티에 참여(participation)하면서 언어를 구축(build/construct a language)하고 있다. 다시 말해 언어는 성인에게서 아이들에게로 전달(transfer)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다양한 의사소통적 상황을 경험하면서 창발(emerge)한다.

이미 언어습득을 마친 성인의 입장에서 보면 성인언어가 언어학습의 최종 목적지인 듯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어습득을 위한 최소한의 생물학적 기제(architecture)만을 장착하고 있을 뿐어떠한 설계도도 갖고 있지 않다.

아동의 언어발달은 주어진 최종 설계도에 따라 집을 짓는 일이라기 보다는, 설계와 시공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성인이 보는 언어체계의 광대한 지도를 아동들이 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래도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질 수밖에 없다.

다른 용무 때문에 내주를 기약했으니, 다음 수업이 끝나고도 학생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 이걸 이해 못시킬 수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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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습은 단지 습득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언어는 (실제적/상상적)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일이고,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기도 하다.

#모두를위한영어교육학강의

‘시점’ 단상

Posted by on Jul 12,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 No Comments

‘전지적 작가 시점’이란 말은 좀 이상하다. 개념상 ‘전지’와 ‘시점’이 충돌한다.

‘작가 관찰자 시점’은 좀 으스스하다. 어디든 따라가서 엿보고 엿듣는 것 같아. 스토킹도 아니고.

‘1인칭 주인공 시점’은 불가능하다. 내가 주인공일리가 없잖아.

‘1인칭 관찰자 시점’은 음… 그게 객관화가 되냐고요.

2인칭 시점은 ‘1인칭 거울 시점’이 아닐까. 상대가 주인공 같지만 자신의 마음에 비친 자기 버전의 인물일 뿐이니.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할머니 생각

Posted by on Jul 11,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할머니는 ‘밥하는 아줌마’로 수십 년을 사셨다. ‘권문세가(權門勢家)’라고 불릴만한 집이었지만 쥐꼬리만한 벌이였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민주주의 사회라는 외연 속에 사실상의 노예제가 횡행하던 시절, 보상도 감사도 받지 못하고 평생 누군가를 살리는 밥을 짓기 위해 삶을 송두리째 유보해야 했던 이들이 있었다.

흔히 식모(食母)라고 불렸던 그들. 누군가에게 ‘부엌데기’였을지 모르지만 내겐 밥하는 어머니였고 할머니였고, 사회를 떠받치는 노동자였다. 적지 않은 이들의 성공은 말 그대로 그들이 잘 차려준 상에 숟가락 하나 얹은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배운다는 것

Posted by on Jul 10,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배움.

이해되던 일들에 이해를 거부하게 되고, 이해되지 않던 일들이 자연스레 이해되는 과정. 깨어나 다독이는 일.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밥하는 동네 아줌마’

Posted by on Jul 10,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밥하는 동네 아줌마가 왜 정규직이 되어야 하나?” – 무지와 편견, 차별의 종합오물세트같은 발언이다. 다양한 비판들이 있었으나 나는 ‘동네’가 가운데 끼여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동네’는 또 ‘저잣거리’는 왜 차별적 함의를 갖게 되었는가? 무엇이 우리 삶의 터전을 업신여기게 만들었는가? 노동과 시민에 대한 개념도, 생활정치에 대한 이해도 없는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일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린 모두 동네 사람인 것을.

OECD 성별 격차 지수 Gender Gap Index

Posted by on Jul 9, 2017 in 링크 | No Comments

OECD가 발간한 2016년 World Gender Gap Report에 따르면 한국의 성별간 격차(Gender Gap)는 세계 116위입니다. (참고로 2013년에는 111위였네요.) 지수 산출 기준은 경제부문의 참여도와 기회, 교육성취, 보건 및 생존, 정치적 권한 등입니다. 아이슬란드와 핀란드, 노르웨이가 1-3위를 차지했군요.

Rankings

화용론 단상

Posted by on Jul 9,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화용론(話用論, pragmatics)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문맥에 따라 말(話)을 어떻게 사용(用)하는가를 설명해내는 언어학의 하위 분야입니다. ‘적절성(appropriateness)’은 화용론의 뼈대가 되는 개념 중 하나구요.

모국어를 공유하고 동일한 사회 내에서 성장하며 일정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화용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것이 언어학 교과서의 암묵적인 가정입니다. 비슷비슷한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같은 말을 쓰며 자랐으니 언제 ‘미안합니다’라고 해야 하는지, 언제 ‘와 쩌네요’라고 해야 할지 모르기는 힘들다는 것이죠.

이런 가정이 순진한 것임을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온라인에서의 포스팅과 댓글을 보면 할말 못할 말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정치적 올바름을 비판한답시고 혐오의 언어를 내뱉는 사람들도 많구요. 때로 말을 고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말할 타이밍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구별해야 할 순간들은 수시로 찾아오죠.

각종 사건의 가해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보면 제대로 사과하는 법을 배우는 일만큼 어려운 게 또 있을까 싶습니다. 조금이라도 논란이 될만한 신문기사의 답글을 보면 처참하기 짝이 없습니다. 문맥도 적절성도 사라진 자리에 ‘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꼴이랄까요.

언젠가 길을 잃고 빙빙 돌아 무려 3천 원 정도를 더 받아간 택시 운전 기사는 결제를 마치고 제 카드를 돌려주면서 당당하게 말하더군요.

“먼길 돌아오셨습니다.”

말을 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문맥은 사회문화적, 제도적, 이데올로기적 영역이 아닌 자신의 두개골 영역에 한정되어 있죠. ‘말은 소통의 수단이다’와 ‘문맥은 내가 정한다’ 사이에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입니다.

——

저 또한 이런 실수를 종종 합니다. 모르고 지날 때도 있고, 오해를 사서 억울할 때도 있고, 바보같은 말에 부끄러울 때도 있습니다. 실수를 알아채고도 사과할 타이밍을 놓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슬쩍 넘기기도 하고요. 언어학을 공부했다는 게 때로는 별무소용이라는 걸 깨닫기도 합니다.

그간 제 의미없는/바보같은/느닷없는/설명충같은/짜증나게 하는 답글에 마음 상했던 분들께 죄송합니다. 순전히 제 부족이요 잘못입니다. 앞으로는 좀더 적절한 언어사용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나의 영어공부 이야기 (2) – 고등학교 (전편)

I.
외고에 진학하면서 나의 영어공부 ‘성공기’는 자기기만이었음을 깨달았다. (성문시리즈의 진도와 독파 횟수로 대표되는) 친구들의 ‘실력’을 보며 중학교때의 노력이 하찮아 보였다고나 할까.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쫄 일도 아니었지만 당시 어린 마음에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던 듯하다.

일단 보는 책부터가 달랐다. 나는 기본영어를 후반부를 처음 공부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몇몇 친구들은 이미 기본영어를 3-4번 마치고 종합영어를 보고 있었다.

‘종합’이라는 제목이 주는 압도적 포쓰. 기본영어 두께를 비웃는 볼륨감. 귀퉁이 빼곡한 깨알 글씨. 너덜너덜해진 책 귀퉁이.

우쒸. 이 인간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공부를 한 거야!!

당시 해외 거주 경험을 지닌 친구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두세 반에 한 명 정도 어린 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친구들이 있었다. 걔네들 영어 발음은 천상의 것이었다. 지상에 존재하지 않았어야만 하는 발음이었다고나 할까.

사실 나는 그런 발음에 익숙치 않았고 반감마저 가지고 있었다. 한국 애들이면 한국 애들답게 발음을 해야지. (말투 전환) 지가 뭔 미국인이냐? 미국인이야? 지금 와서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지만 당시엔 그리 느꼈다.

일 주일에 두 번 영어회화 시간이 있었다. 이게 나의 영어실력에 미친 영향은 어땠을까?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고등학교 때 회화를 했어? 엄청 좋았겠네.” 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와 정반대였다.

영어회화 한 시간 수업(고등학교이므로 45분 수업이었던 것으로 기억)에 내가 발화는 인사말과 Yes/No 정도. 어쩌다가 말을 할라 치면 턱턱 막혀 스스로에게 실망. 이 과정의 반복.

결국 몇 번 시도하다가 침묵의 단계로 들어섰다. (겉으로는 ‘회화시간에는 과묵한 아이’로 포지셔닝.) 그래서 고등학교 3년간 회화시간에 이야기한 문장이 몇백 개 안될 것이다. 돌아보면 회화수업비를 따로 내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게 한스럽다.

II.
고등학교 들어가서 첫 해 받은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애들이 왜 이렇게 다 괴물같은 건가. (나중에 알고 보니 다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혼자 끙끙 싸매고 고민하다가 부모님께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모건 프리먼 급의 중저음으로 딱 두 마디를 하셨다.

“전학갈래?”
“자퇴할래?”

그래서 난 이야기했다.

“자퇴하기 전에 그래도 한 번 해볼게요.”

일단 충격 받고 그대로 물러나는 게 싫었다. 어떻게든 그 밀림에서 살아남고 싶었다. 그래서 영어의 고군분투는 다시 시작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리 비장할 필요도 없었는데. 어리다는 건 멋지고도 웃긴 것이다.)

III.
내 또래들이 대부분 그랬겠지만 고등학교 때 영어공부는 한마디로 ‘입시공부’ 였다. 학력고사 시절이어서 발음 문제가 출제되고, 문법 문제의 난이도도 상당했다. 무엇보다 주기적으로 보는 모의고사 점수가 진로의 모든 것을 말해주던 때였다.

살아남기 위해서 영어에 매달렸다. 1-2학년 때 꽤나 많은 시간을 영어에 투자한 게 모의고사에는 유효했다. 졸업할 때까지 영어과목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계속되었다. 외고에 다니면서도 말한마디 못하는 신세라니.

IV.
그나마 고등학교 영어 공부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풍부한 어휘 습득이다. 고등학생 치고는 상당히 많은 어휘를 외웠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어휘를 외우는 데 가장 기여한 요인은 ‘사전’이었다.

한 마디로 ‘사전을 끼고 살았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었고, 전자사전도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나는 혼비 영영한사전과 함께 3년 내내 동고동락했다.

특별한 비법은 없었다. 다만 주요 어휘라고 불리는 (주로 뜻이 엄청 많은) 놈들은 5번 이하의 뜻까지 외우려고 노력했다. 어떤 것은 15번 이상의 뜻까지 정리하고 예문을 적기도 했다. 주로 동사군들을 중심으로. 그렇게 정리한 두꺼운 단어장이 십수 권이었다. (이후 이 단어장들은 비극적 사건으로 사라지게 되고… ㅠㅠ)

말하기 꽝, 듣기 꽝의 영어실력이었지만 나름대로의 어휘실력을 길렀던 고등학교 시절.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그 때 쌓아 놓은 어휘 실력으로 대학교 4학년을 보냈으니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하편 계속)

나의 영어공부 이야기 (1)

<초등(아니 국…)학교 시기>

언제였나, 영어공부를 시작한 게… 아마 ABC쏭을 따라 부르기 시작한 건 5학년 말쯤이 아니었을까? 그 전에는 영어라는 말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널리 쓰이는 건 몰랐고 그냥 미국말인 줄 알았다. Thank you. Hi! 정도를 따라 했던 것 같다.

세상에 영어공부를 위한 책이 존재한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6학년 여름 방학. 같이 살던 외삼촌으로부터 단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책 제목은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알파벳과 주제별 단어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ABCD가 나왔었고, 대문자와 소문자가 나왔었던 것 같다. 글자를 따라 쓰는 연습도 있었던 것 같고.

본문은 주로 단어 위주였다. 1-12월의 이름을 그림-철자로 배우고, 계절의 이름도 배웠다. 비온다, 춥다 등의 ‘날씨를 나타내는 형용사’들이 기억나고, 유명한 지역의 지명을 영어로 읽어보았던 것도 같다. 뉴욕 뭐 이런 거?

돌아보면 이 시기 공부가 썩 만족스럽진 않다.

외삼촌은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렇게 발음이 좋지는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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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의 학습을 지금의 영어교육과 비교해 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사실 가장 큰 차이점은 “소리”가 없이 영어를 대했다는 것이다.
소리가 있었다면 외삼촌의 발음을 따라 했다는 것! 순식간에 그 발음에 익숙해져버렸다. 음하하…

사실 아동의 언어학습에 있어 자연스런 음성없이 언어를 처음 접한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렇게 한참을 공부했다. 중학교에서도 선생님이 진도에 맞추어 들려주시는 교과서 본문과 다이얼로그 외에는 영어 말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 듣기평가도 활성화 되지 않았던 시절 아닌가.

중학교 초반까지 한 주에 한 번 외삼촌으로부터 ‘사교육’을 받았지만, 영어 소리는 너무나 낯선 것이었고, 나는 영어가 그렇게 재미있는 과목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즉, 영어를 암기과목으로 공부하고 있었고 단어-뜻 짝을 암기하는 식으로 공부 패턴을 잡아가고 있었다.

여기에서 영어공부의 첫걸음이 어그러진 것일까?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영어를 싫어하진 않았다.
암기는 나름 잘 했기 때문인가 보다.
혹은 삼촌이 조금 무서웠거나~

<중학교 시기>

I.
중학교 때 영어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은 오로지 성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암기과목으로 생각하고 공부해왔던 습관은 여전했다.

듣기평가는 아주 형식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듣기를 평가한다기 보다는 교과서의 본문을 제대로 암기했는지 평가하는 식이었다.

즉, 영어 소리 자체에 대해 익숙해지지 않더라도, 교과서 본문의 내용을 충실하게 암기하면 풀 수 있는 듣기 문제들이 많았다.

듣기 문제의 탈을 쓴 본문 암기 문제라고나 할까…

발음에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실 영어는 ‘말’을 하기 위해 배우는 것인데, 교실에서 말하기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선생님들의 수업을 옮겨 보면 대략 이렇게 된다.
(거의 모든 분들의 패턴이 똑같았다.)

1. 오늘의 단어 – 오늘 배울 단어를 선생님이 읽어주고 반 전체가 따라한다. 보통 한 단어를 2번 정도 따라 읽고 뜻을 배우는 식. 아주 가끔 선생님이 학생을 일으켜 발음을 하게 하고, 그 발음이 적절치 않은 경우 형식적인 교정을 해주셨다. (야 너 그거 쥐프트 아니고 기프트야.)

2. 오늘 배울 내용 들어보기 – 처음의 Listening 부분은 한 번에 다 듣고, 본문 부분은 여러 번에 걸쳐 나누어 듣는다. 예습을 해 온 경우에는 듣기가 아니라 교과서 내용 확인이 되어버리기도 하였다. 보통 1번 정도 듣게 된다.

3. 교과서 해석하기 – 교과서 문장들을 하나씩 해석하는 과정이다. 필요한 경우 선생님께서 처음에 나온 “오늘의 단어”들을 상기시켜 주신다. 이때 교과서 가장자리는 필기로 빼곡해진다.

4. 문법 설명 – 교과서 해석에 필요한 설명을 해주신다. 해석 시 중간 중간에 문법이 나오기도 하고, 그 과의 중심 문법 사항을 따로 설명해 주시기도 하신다.

5. 다시 듣기 – 일단 한 번 해석이 끝나면 다시 테이프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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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위의 순서에 따라서 공부를 하였다.

교과서에 Further Study라는 심화학습 부분에서는 주요 구문과 문법 및 발음을 다루었다. 요즘에야 발음 문제가 시험에 거의 출제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발음 문제는 반드시 시험에 출제되었던 기억이 난다. 또한 문법 문제의 비중이 꽤 되어서, 교과서 본문 독해 시간에도 문법 설명을 꽤 길게 들었던 적이 종종 있었다.

Dialogue를 배울 때는 두 사람을 일으켜서 Role Play를 시키시기도 했다. 사실 말이 Role Play지, 역할을 맡아 책을 읽는 수준이다. 사실 그 ‘읽는 수준’도 안되는 학생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에 Role Play는 많은 경우 다시 ‘따라 읽기’로 자연스럽게 바뀐다.

교과서 말미의 연습문제는 그냥 숙제로 내준다. 다음 날 검사를 하셔서 안해 온 아이들은 손바닥을 자로 맞았던 기억…

본문 뒤의 Comprehension Check-up은 “너희들이 해봐”라는 말과 함께 그냥 넘어간다.

지금 돌아보면 완벽한 문법번역식 수업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의미있는 의사소통이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모든 학생들이 영어의 초보였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것은 그 당시 수업 시간이 위에서 묘사한 방식으로 1년 내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영어가 원래도 어려운 과목인데 저렇게 가르치니 재미가 더 없어졌다.

“그래도 다른 과목에 비해 잘 하는 과목 영어.”

그거 하나 붙잡고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잘하는 과목이니 계속 잘해야만 한다는 이상한 의무감이랄까… 그래서 사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영어 성적이 참 좋았었다.

그러나 나의 시련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II.

중학 때 영어교재는 교과서 + 두 권의 문법서였다.
그 유명한 성문 기초영문법과 성문 기본영어.
당시의 영어교육에서 빠질 수 없는 두 권의 명저(?!).

사실 주변에 영어를 제대로 공부하는 형 누나만 있었어도 나는 이 두권에 목을 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두 권의 책은 반드시 봐야 해. 그것도 달달 외울 정도로.”
라고 말했다. (비극의 시작~)

중간에 아버지가 안현필씨의 책을 두어권 사오셨다. 당시에는 성문에 대적할만한 세력이 없었고, 안현필씨의 시리즈 몇 권이 마니아층 사이에서 영어의 비법으로 통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안현필 시리즈를 본다는 것은 왠지 이단으로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독서실에 가면 누구 책꽂이에나 있는 성문 시리즈를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부터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까지 성문 기초영문법을 5번 정도 독파했던 것 같다. 그리고 고등학교 들어가기 바로 전 겨울방학 때 성문 기본영어를 반쯤 대충 봤고.

문제는 그거였다.

그렇게 공부해도 학교 성적은 잘 나왔고, 영어로 Communication할 필요도 없었고, 그러니 영어 듣기나 말하기를 늘려야겠다는 의지도 없었던 것이다. 문제집의 문제들은 독해 아니면 문법이라서 그럭 저럭 맞출 수 있었다.

그 달콤함이 고등학교 때의 쓰라림이 되었다.

흐흑….

III.

중학교 때의 영어공부 방법을 기억하면서 후회되는 점도 많지만 나름대로 스스로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도 있다.

여러 가지 면이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영어라는 과목을 ‘꾸준히’ 공부했다는 것이다. 특히 중학교 3학년 때는 하루에 1-2시간씩 거의 1년을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성문 기초영문법을 마지막으로 보고, 성문 기본영문법에 있는 문법과 독해를 꼼꼼하게 공부했다. 맨 뒤에 있는 구문 모음들도 꾸준하게 보아서 영어의 대표적인 패턴에 익숙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영어 자체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고,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쌓게 된 시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외고 입시 원서 마감 며칠 전에 “외국어 고등학교라는 곳에 가볼래?”라고 했을 때에도 영어가 그렇게 걱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시험은 무지 어려웠다. ㅎㅎ) 결과적으로는 외국어 고등학교 준비를 하지 않고도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OO년도 더 된 일이다.

중학교 시절 영어공부를 요약하면…

1. 쓸데없이 문법에 너무 치중했다.
2. 듣기는 아주 아주 기초적인 것에 머물렀다.
3. 말하기는 아예 생각도 못했다. 이점은 매우 후회된다.
4. 읽기의 input은 꽤 되었으나 나머지 영역에서의 언어 input은 거의 없었다.
5. 영어를 거의 매일 공부하는 습관을 길렀다. 결과적으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 점은 가장 큰 소득이었다.

나름대로 영어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나, 외고에 진학해서는 그야말로 강력한 문화적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다른 과목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우물안 개구리식의 영어공부가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던 것이다.

(고교편은 다음 시간에 ^^)

학습법에 대한 어떤 우화

학습법 이야기 나온 김에 예전 일화 하나. 예전에 시험공부하는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 시험에 붙고 떨어지고 이게 참 묘한데, 그래도 제일 중요한 요인이 뭐인 거 같냐?
친구: 한두 가지로 설명하긴 힘들지. 운도 있고, 컨디션도 있고, 또 과목이랑 나름 맞는가 문제도 있고…
나: 그래도 한 가지 바로 생각나는 게 있다면…
친구: 음… 오래 공부하는 사람들이 보면 학습법에 관심이 많아. 전략을 짜는 건 좋은데 계속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거든. 어떤 교재가, 어떤 강사가, 어떤 암기법이 좋은지 계속 이리 저리 알아봐. 스터디를 기웃거리는 사람도 있고.
나: 그럼 붙는 사람은?
친구: 학습법 알아볼 시간에 공부를 하지. 자기 스타일을 찾는 거라고 해야 되나.
나: 아하!

한줄 요약: 학습법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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