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9년차 잡감

Posted by on Sep 25, 2017 in 단상, 삶을위한영어공부, 일상 | No Comments

TA 시절까지 어언 강의 9년차.
가르친 과목이 대충 25개.
최대한 얕고 최대한 다양하게 가르쳤다.
뭐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니 어쩌겠는가.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유난히 마음이 가는 수업이 몇 있다.

사회언어학과 언어교육
사회문화이론과 영어교육
어휘와 문법 지도법
영어로 논문쓰기,
영어교육방법 및 교육공학

애정하는 주제도 몇 있다.

인지언어학과 영어교육
메타포와 영어교육
멀티리터러시

하나씩 소책자로 묶어 모음집을 만들어도 좋겠다.

(하지만 현실은 단 하나의 주제도 책으로 써내지 못했을 뿐이고…)

걸작을 써낼 능력은 없으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모아
쓸만한 지식으로 정리해 낼 필요를 느낀다.

월급 들어왔다 나간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기엔
세상에 대한 집착이 좀 남았나 보다.

올해가 가기 전에
5년간 써온 긴 글 하나, 짧은 글 하나를 마치려 한다.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끝낼 것이다.
사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한계를 인정하고
소소한 소통을 꿈꾸는 중.

이론 수업에서의 ‘확증편향’

Posted by on Sep 25,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확증편향 (確證偏向, 영어: Confirmation bias)은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이다. 쉬운 말로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가 바로 확증편향이다.” (위키백과)

개론 수업에서 다양한 이론을 다룬다. 예를 들어 언어를 보는 다양한 관점, 언어습득을 설명하는 다양한 가설 등이 등장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해당 챕터를 읽고 새롭게 배웠거나 의문이 드는 대목 등을 제출하는데, 나는 이를 수업의 주요 테마로 삼는다.

대부분의 과제에서 공통적인 경향이 발견된다. 개별 이론의 메시지를 확증편향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A 이론은 나의 경험 중에서 이런 면을 설명하고, B 이론은 저런 면을 설명한다. C 이론은 이런 에피소드에 적용하면 괜찮을 것 같다 등등과 같은 설명이다.

인문사회과학에서 특정 이론이 세계를 완벽하게 설명해 낼 수 없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이론이라 하더라도 특정한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토양에서 태어나 자란 것이고, 이를 발전시킨 학자들 또한 자신이 속한 학문 공동체의 담론지형 및 연구경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론은 세계의 사태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다. (총체성을 부정하는 이론마저도 ‘총체성이 부재하는 세계’라는 ‘총체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일련의 경험을 수많은 이론의 모자이크로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론의 존재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말이다.

학문적 다양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개별 이론이 지향하는 사고와 해석의 총체적 틀을 파고드는 시도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애매한 절충주의(Eclecticism)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합리화하는 이론-쪼가리들을 낳는다. 학생들도, 나도 이론이 우리의 확증편향을 위해 존재하는 그럴듯한 도구가 아님을 기억해야겠다.

자동 요약 및 바꿔쓰기 기술

Posted by on Sep 23, 2017 in 강의노트, 링크, 수업자료 | No Comments

자연어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의 하위 분야로 난이도가 높은 표현을 좀더 쉬운 표현으로 변환하거나 특정 텍스트를 요약하는 기술이 있다. 완벽한 바꿔쓰기(paraphrase)나 적절한 요약과는 거리가 있지만 꾸준히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영어 텍스트 처리가 가장 앞서나가는 듯하다.

관련하여 Rewordify, Simplish 두 서비스가 눈에 띈다. 아래 링크에서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다. 참고로 Simplish는 2천5백 단어 이내의 텍스트 요약이 무료이고, Rewordify에는 단어수 제약이 없다.

http://rewordify.com/index.php
https://simplish.org/

“어떤 수업이예요?”

Posted by on Sep 23,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수업이 끝났다. 한국어가 조금 서툰 두 유학생을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났다. 말을 건넸다.

“오늘 수업 끝나신 거예요?”
“아니오. 오후에 한 개 더 있어요.”
“아 금요일 오후에 힘들겠다. 어떤 수업이예요?”
“그게 어… 영…” (다른 학생) “영어문…”
“아 과목 이름이 좀 어려운가 봐요.”

학생들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진다. 순간 옆에 서 있던 한 남성이 불쑥 끼어든다.

“이름이 좀 긴가요? 영미OOOO. 헷갈릴 수 있죠.”

허걱 담당교수시다. 급인사 모드. 얼굴이 밝지는 않은 듯. 이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모두와 헤어진다.

친근함으로 말을 건넸으나 학생들에겐 당황을, 담당교수에겐 씁쓸함을 안긴 것 같다.

결론: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길치 그리고 시지프

Posted by on Sep 22, 2017 in 단상 | No Comments

최첨단 GPS로 무장한 세계의 길치들은 시지프의 신화가 2차원 평면에서도 가능함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슬프고도 용감한 ON

Posted by on Sep 21,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가장 용감하지만 무엇보다 슬픈 ‘on’은 “move on”에서의 ‘on’인 것 같다. Time to move on.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슬픔, 그리고 희망

Posted by on Sep 14,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직업인으로서 슬픈 말 둘.

(1) 시간강사: 언제 하고 싶은 수업 한 번 해봤으면 좋겠는데, 그런 날이 올 지 모르겠어요. 하긴 먹고 사는 것만 해도… (개개인의 슬픔임과 동시에 엄청난 지식과 경험의 낭비. 생존에 내몰리다 보면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이 뭉툭해질 수밖에 없다.)

(2) 연구자 일반: 한국 저널에 내봤자 읽는 사람 없어요. 그래도 써야죠 뭐. 별수 있나요? (아무도 읽지 않는 논문이라… 주장은 사람이 사람한테 하는 것 아니던가. 출판은 되었으나 읽히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개인적으로 슬펐던 상황 둘.

(1) 논문 지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 저는 논문을 지도할 자격이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같은 신참보다야 논문 출판에 대해 훨씬 잘 아는 분들에게 받는 게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다음 학기에 강의를 꼭 다시 듣고 싶은데요. – 다음 학기 어찌 될지 몰라서요. (아직 성적 안나갔으니, 보고 결정하시… 아닙니다. 말씀만이라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 두 가지.

(1) 이번 학기 출발하면서 많이 걷고 있다. 이번 주 하루 평균 도보시간 1시간 이상. (이틀간 폭풍 사진은 한시간 반씩 산책한 결과입니다. ^^)

(2) 좋은 분들과 함께 단기 논문쓰기 특강을 하게 되었다. 예전 자료를 다시 손보고 있다. (관심은 있었지만 무지했던 분야의 분들이라 기대가 됩니다.)

나의 한계를 본격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고, 잡글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부족하나마 쓰고 싶은 책이 생겼고, 무엇보다 날씨가 좋다.

Life goes on.

Posted by on Sep 12,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틈은 존재들 사이에서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드러내지만 자신을 둘러싼 존재들을 경멸하지 않는다. 존재들이 스러져갈 때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틈같이 살았던 이들, 그런 ‘틈의 화석’을 발굴하려 또다른 틈이 되는 이들이 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모두를 위한 영어교육학 강의 (3) – 주어의 재발견

구조에 대한 설명에서 의미를 이끌어내는 활동으로

먼저 다음 두 시나리오를 봅시다.

시나리오 1

교사: “자 여기, 문장 제일 앞에 나오는 이걸 뭐라고 하죠?”
학생: “명사요.”
교사: “그건 품사구요. 문장에서 하는 역할이 뭐예요? 5형식 배운 사람은 알텐데…”
학생: “주어요!”
교사: “맞아요. 주어. 그럼 이 자리에 나올 수 있는 거 뭐뭐 있지?”
학생: “명사요.”
교사: “좋아요. 명사. A cat 같은 거. 그리고 또?”
학생: “……”
교사: “명사를 대신하는 거, 뭐 있지?”
학생: “대… 명사?”
교사: “그렇죠. 명사를 대신하니까 대명사. ‘대’가 대신한다는 뜻이예요. It, she, he 이런 것들이 대표적이죠. I도 있구요. 명사, 대명사. 그리고 또?”
학생: “……..”
교사: “명사나 대명사 말고 동명사나 To 부정사도 올 수 있죠. 오케이? 자주는 아니지만 That 절도 올 수 있어요. 여기에서 That은 명사절을 이끄는 거죠. 그럼 예문을 몇 개 더 살펴볼게요.”

시나리오 2

교사: “자 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볼 수 있어요.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랑, 그 주제에 대한 설명. 앞의 것을 subject라고 하고 뒤의 것은 predicate라고 해요. 근데 이런 용어는 몰라도 돼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거지. 자자 다시. 문장은 뭘로 이뤄진다?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랑 그것에 대한 설명. 따라해 봐요. 주제와 설명.“
성우: “주제와 설명.“
교사: “오케이 좋아요. 그럼 성우는 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성우: “음… 영화요.“
교사: “영화요? 그럼 이렇게 시작하면 되겠네요. “The movie” 따라해 보세요. “The movie”.
성우: “The movie”.
교사: “영화가 어쨌어요?“
성우: “지루했어요.“
교사: “지루했다… 그럼 지루했다를 표현하는 단어를 찾아봐야겠네요.“
성우: “어떻게 찾죠?“
교사: “음 쉬워요. 한영사전을 찾으면 되죠.
성우: “(사전을 찾는다) Boring?“
교사: “맞아요. 근데 예문을 잘 봐요. 거기 boring만 있어요?“
성우: “아니오. 앞에 is가 있네요.”
교사: “그렇죠? 그러니까 boring은 혼자 못쓰이고 is 같은 애들이랑 같이 쓰여요. ‘is boring’ 이렇게. 좀 재미있게 표현하려면 The movie made me yawn. 그러니까 영화는 나를 하품하게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쓸 수도 있겠죠?”
성우: “네.”

…(중략)…

교사: “그럼 영화 말고 다른 거 이야기해 보고 싶은 거 없어요?”
성우: “친구 충식이요.”
교사: “오케이. 그럼 “friend”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My friend 충식 이런식으로 쓰면 되겠네요.”
…(중략)…
교사: “근데 영화나 중식이, 컴퓨터나 비디오 게임 이런 거 말고 다른 이야기도 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음… 뭐 좋아해요?”
성우: “사진찍는 거요.”
교사: “오 좋아요. 사진찍는 거. 그렇게 뭔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 수가 있어요. Taking photos 같이 표현하면 되죠. 사진찍는 거 어때요?”
성우: “재미있어요.”
교사: “그럼 Taking photos is fun.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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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시나리오에서 ‘주어’를 설명하는 방식은 사뭇 다릅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주어는 구조적 관점에서 설명되고, 그 예 또한 명사, 대명사, That-절 등의 문법용어(grammatical terms) 혹은 상위언어 용어(metalinguistic terms; 언어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쓰는 언어)입니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 주어는 문법용어로 전달되기 보다는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가’라는 의미 범주로 제시됩니다. 이에 따라 학생은 자기가 이야기하고 싶은 소재를 이야기하고 (저는 이걸 ‘던지고’라고 종종 표현합니다) 교사는 이에 대한 설명을 이끌어 냅니다. 사실 이것이 본래의 “subject”/”predicate” 짝에 근접한 설명일 수 있습니다. 문장이 사실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던지고, 이에 대해 설명을 하는 두 가지 파트로 이루어지는 거죠.

요약하면 “문장 = 말하고 싶은 주제를 던지는 부분 + 그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 정도 되겠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주부와 술부 정도 될 듯하네요. 그런데 ‘주부’나 ‘술부’ 같은 용어도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꽤 많더군요.

결국 시나리오 2에서는 시나리오 1에서와 같이 상위언어에서 상위언어로 이어지는 구조적 접근이 아니라, 말하고 싶어하는 소재를 이끌어내고 이에 대해 설명을 함께 만들어 가는 의미적 접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문법용어가 완벽히 자리를 잡은 성인이라면 첫 번째 접근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 이 사회는 너무나 많은 문법교육을 요구하죠. 거시적으로 보면 교실에서의 교사-학생간 소통 규약(여기에서는 문법용어를 지칭)을 확립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이 투입되고 있는 것입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문법용어 및 시험 때문에 영어를 포기하게 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꼭 필요한 비용인지 의문이 듭니다.

이런 면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문법용어와 형식적 측면을 배제하고 최대한 의미만으로 문법구조를 풀 수 있는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연령이 낮은 학생을 가르친다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이죠.

하지만 여전히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습속(habitus)에 뿌리를 둔 문법 설명은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조금씩 변해가는 중에서도 오로지 문법으로만 영어를 배운 이전세대의 교육방식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자신의 세력을 지켜내고 있다고나 할까요?

911 수업자료 하나

[911 관련 중고교 수업 자료] 오늘이 911이군요. 세월이 참 빠릅니다. 놀란 동생이 TV를 보라고 소리쳤는데 너무나 비현실적인 장면에 순간 영화 아닌가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만, 당시 테러공격으로 인해 수많은 비행기들이 항로를 돌려 캐나다의 Gander라는 도시에 착륙했습니다. 총 인구 9천명의 작은 도시였는데 하루 아침에 7천 명 정도의 승객이 밀려들었죠. 갑자기 사람이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나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Gander 주민들은 귀찮다 여기지 않고 성심성의껏 도왔습니다. 아무런 댓가 없이, 상대가 누구냐에 관계 없이 자신들의 시간과 정성을, 삶의 터전를 나누어 준 것입니다. 종교도, 국적도, 피부색도, 성적 지향도, 그 어떤 것도 Gander 주민들의 환대를 막진 못했죠. 이를 USA Today가 보도한 영상입니다. 자막이 있어서 틀어주기 좋을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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