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치 그리고 시지프

Posted by on Sep 22, 2017 in 단상 | No Comments

최첨단 GPS로 무장한 세계의 길치들은 시지프의 신화가 2차원 평면에서도 가능함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슬프고도 용감한 ON

Posted by on Sep 21,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가장 용감하지만 무엇보다 슬픈 ‘on’은 “move on”에서의 ‘on’인 것 같다. Time to move on.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슬픔, 그리고 희망

Posted by on Sep 14,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직업인으로서 슬픈 말 둘.

(1) 시간강사: 언제 하고 싶은 수업 한 번 해봤으면 좋겠는데, 그런 날이 올 지 모르겠어요. 하긴 먹고 사는 것만 해도… (개개인의 슬픔임과 동시에 엄청난 지식과 경험의 낭비. 생존에 내몰리다 보면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이 뭉툭해질 수밖에 없다.)

(2) 연구자 일반: 한국 저널에 내봤자 읽는 사람 없어요. 그래도 써야죠 뭐. 별수 있나요? (아무도 읽지 않는 논문이라… 주장은 사람이 사람한테 하는 것 아니던가. 출판은 되었으나 읽히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개인적으로 슬펐던 상황 둘.

(1) 논문 지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 저는 논문을 지도할 자격이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같은 신참보다야 논문 출판에 대해 훨씬 잘 아는 분들에게 받는 게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다음 학기에 강의를 꼭 다시 듣고 싶은데요. – 다음 학기 어찌 될지 몰라서요. (아직 성적 안나갔으니, 보고 결정하시… 아닙니다. 말씀만이라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 두 가지.

(1) 이번 학기 출발하면서 많이 걷고 있다. 이번 주 하루 평균 도보시간 1시간 이상. (이틀간 폭풍 사진은 한시간 반씩 산책한 결과입니다. ^^)

(2) 좋은 분들과 함께 단기 논문쓰기 특강을 하게 되었다. 예전 자료를 다시 손보고 있다. (관심은 있었지만 무지했던 분야의 분들이라 기대가 됩니다.)

나의 한계를 본격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고, 잡글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부족하나마 쓰고 싶은 책이 생겼고, 무엇보다 날씨가 좋다.

Life goes on.

Posted by on Sep 12,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틈은 존재들 사이에서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드러내지만 자신을 둘러싼 존재들을 경멸하지 않는다. 존재들이 스러져갈 때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틈같이 살았던 이들, 그런 ‘틈의 화석’을 발굴하려 또다른 틈이 되는 이들이 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모두를 위한 영어교육학 강의 (3) – 주어의 재발견

구조에 대한 설명에서 의미를 이끌어내는 활동으로

먼저 다음 두 시나리오를 봅시다.

시나리오 1

교사: “자 여기, 문장 제일 앞에 나오는 이걸 뭐라고 하죠?”
학생: “명사요.”
교사: “그건 품사구요. 문장에서 하는 역할이 뭐예요? 5형식 배운 사람은 알텐데…”
학생: “주어요!”
교사: “맞아요. 주어. 그럼 이 자리에 나올 수 있는 거 뭐뭐 있지?”
학생: “명사요.”
교사: “좋아요. 명사. A cat 같은 거. 그리고 또?”
학생: “……”
교사: “명사를 대신하는 거, 뭐 있지?”
학생: “대… 명사?”
교사: “그렇죠. 명사를 대신하니까 대명사. ‘대’가 대신한다는 뜻이예요. It, she, he 이런 것들이 대표적이죠. I도 있구요. 명사, 대명사. 그리고 또?”
학생: “……..”
교사: “명사나 대명사 말고 동명사나 To 부정사도 올 수 있죠. 오케이? 자주는 아니지만 That 절도 올 수 있어요. 여기에서 That은 명사절을 이끄는 거죠. 그럼 예문을 몇 개 더 살펴볼게요.”

시나리오 2

교사: “자 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볼 수 있어요.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랑, 그 주제에 대한 설명. 앞의 것을 subject라고 하고 뒤의 것은 predicate라고 해요. 근데 이런 용어는 몰라도 돼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거지. 자자 다시. 문장은 뭘로 이뤄진다?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랑 그것에 대한 설명. 따라해 봐요. 주제와 설명.“
성우: “주제와 설명.“
교사: “오케이 좋아요. 그럼 성우는 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성우: “음… 영화요.“
교사: “영화요? 그럼 이렇게 시작하면 되겠네요. “The movie” 따라해 보세요. “The movie”.
성우: “The movie”.
교사: “영화가 어쨌어요?“
성우: “지루했어요.“
교사: “지루했다… 그럼 지루했다를 표현하는 단어를 찾아봐야겠네요.“
성우: “어떻게 찾죠?“
교사: “음 쉬워요. 한영사전을 찾으면 되죠.
성우: “(사전을 찾는다) Boring?“
교사: “맞아요. 근데 예문을 잘 봐요. 거기 boring만 있어요?“
성우: “아니오. 앞에 is가 있네요.”
교사: “그렇죠? 그러니까 boring은 혼자 못쓰이고 is 같은 애들이랑 같이 쓰여요. ‘is boring’ 이렇게. 좀 재미있게 표현하려면 The movie made me yawn. 그러니까 영화는 나를 하품하게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쓸 수도 있겠죠?”
성우: “네.”

…(중략)…

교사: “그럼 영화 말고 다른 거 이야기해 보고 싶은 거 없어요?”
성우: “친구 충식이요.”
교사: “오케이. 그럼 “friend”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My friend 충식 이런식으로 쓰면 되겠네요.”
…(중략)…
교사: “근데 영화나 중식이, 컴퓨터나 비디오 게임 이런 거 말고 다른 이야기도 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음… 뭐 좋아해요?”
성우: “사진찍는 거요.”
교사: “오 좋아요. 사진찍는 거. 그렇게 뭔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 수가 있어요. Taking photos 같이 표현하면 되죠. 사진찍는 거 어때요?”
성우: “재미있어요.”
교사: “그럼 Taking photos is fun.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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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시나리오에서 ‘주어’를 설명하는 방식은 사뭇 다릅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주어는 구조적 관점에서 설명되고, 그 예 또한 명사, 대명사, That-절 등의 문법용어(grammatical terms) 혹은 상위언어 용어(metalinguistic terms; 언어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쓰는 언어)입니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 주어는 문법용어로 전달되기 보다는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가’라는 의미 범주로 제시됩니다. 이에 따라 학생은 자기가 이야기하고 싶은 소재를 이야기하고 (저는 이걸 ‘던지고’라고 종종 표현합니다) 교사는 이에 대한 설명을 이끌어 냅니다. 사실 이것이 본래의 “subject”/”predicate” 짝에 근접한 설명일 수 있습니다. 문장이 사실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던지고, 이에 대해 설명을 하는 두 가지 파트로 이루어지는 거죠.

요약하면 “문장 = 말하고 싶은 주제를 던지는 부분 + 그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 정도 되겠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주부와 술부 정도 될 듯하네요. 그런데 ‘주부’나 ‘술부’ 같은 용어도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꽤 많더군요.

결국 시나리오 2에서는 시나리오 1에서와 같이 상위언어에서 상위언어로 이어지는 구조적 접근이 아니라, 말하고 싶어하는 소재를 이끌어내고 이에 대해 설명을 함께 만들어 가는 의미적 접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문법용어가 완벽히 자리를 잡은 성인이라면 첫 번째 접근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 이 사회는 너무나 많은 문법교육을 요구하죠. 거시적으로 보면 교실에서의 교사-학생간 소통 규약(여기에서는 문법용어를 지칭)을 확립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이 투입되고 있는 것입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문법용어 및 시험 때문에 영어를 포기하게 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꼭 필요한 비용인지 의문이 듭니다.

이런 면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문법용어와 형식적 측면을 배제하고 최대한 의미만으로 문법구조를 풀 수 있는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연령이 낮은 학생을 가르친다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이죠.

하지만 여전히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습속(habitus)에 뿌리를 둔 문법 설명은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조금씩 변해가는 중에서도 오로지 문법으로만 영어를 배운 이전세대의 교육방식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자신의 세력을 지켜내고 있다고나 할까요?

911 수업자료 하나

[911 관련 중고교 수업 자료] 오늘이 911이군요. 세월이 참 빠릅니다. 놀란 동생이 TV를 보라고 소리쳤는데 너무나 비현실적인 장면에 순간 영화 아닌가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만, 당시 테러공격으로 인해 수많은 비행기들이 항로를 돌려 캐나다의 Gander라는 도시에 착륙했습니다. 총 인구 9천명의 작은 도시였는데 하루 아침에 7천 명 정도의 승객이 밀려들었죠. 갑자기 사람이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나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Gander 주민들은 귀찮다 여기지 않고 성심성의껏 도왔습니다. 아무런 댓가 없이, 상대가 누구냐에 관계 없이 자신들의 시간과 정성을, 삶의 터전를 나누어 준 것입니다. 종교도, 국적도, 피부색도, 성적 지향도, 그 어떤 것도 Gander 주민들의 환대를 막진 못했죠. 이를 USA Today가 보도한 영상입니다. 자막이 있어서 틀어주기 좋을 듯하네요.

 

제가 감사하죠 vs. Thank YOU

‘감사합니다’는 대개 ‘Thank you’로 번역되는데, 상대에게 감사를 돌릴 때 두 언어의 패턴 차이가 흥미롭다.

한국어
A: 감사합니다.
B: 제가 감사하죠. (‘제가’에 강세. 생략되었던 주어 등장.)

영어
A: Thank you.
B: Thank you. (‘you’에 강세. 비격식체에서는 주로 Thank YOU. 표기. 있던 목적어를 강하게 발음.)

한국어 ‘감사하다’는 타동사로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자동사로 쓰이고, 다른 꾸밈말을 동반하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단독으로 쓰일 경우가 가장 많은 것이다. 전통 문법으로 보면 ‘감사합니다’는 주어가 생략된 형태다.

이에 비해 영단어 thank는 타동사로 목적어를 취한다. “Thank you”가 가장 빈번히 쓰이지만 “Thank her”, “Thank him” 등이 가능하다. “Thank you”에서는 한국어 문장과 마찬가지로 주어가 생략되었지만 구조의 제약으로 목적어를 생략하진 못한다. (물론 him이나 her를 취할 경우 I가 등장하게 되므로 구조적 특성이 완전히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본 논의에서 중심은 아니므로 패스.)

일반적으로 한국어는 주어 생략이 잦다 하고 영어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 상대에게 감사를 돌릴 때엔 이런 일반론이 살짝 뒤집히는 게 재미있다.

덧. 실험해 보진 않았지만 “Thank YOU.” 해야 할 상황에서 주어 I를 강조하며 “I thank you.”라고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하다.^^

네이티브에게 외국어 배우기

그러나 외국어 교육에 전문성이 없는 (맥락 이해를 위해 역자 삽입) 원어민(native speaker)에게만 배우는 것은 에베레스트산에 오르는 데 산 꼭대기에서 태어나 밑을 향해 소리치며 방향을 지시하는 사람에게 안내를 받는 일과 같습니다. 발음은 정확할 지 몰라도 당장 흔들거리는 보울더(비바람에 깎여 둥근 모양이 된 바위)에서나 위험천만한 빙하의 균열 지점에서 확고한 발판을 찾는 데 도움을 주진 못합니다. 여러분들께 필요한 것은 말하자면 언어학습을 돕는 셰르파입니다.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해당 언어의 고지에 오른 비원어민 화자(nonnative speaker) 말입니다.

“But learning from a native speaker alone is like being guided up Mt. Everest by someone who was born at the top of the mountain and is shouting directions down from above. The sounds may be pronounced correctly, but that won’t help you find firm footing among the loose boulders and treacherous crevasses. What you need is a language Sherpa, if you will: a nonnative speaker who struggled with the language and who conquered it.” (p. 89)

Richard M. Roberts and Roger J. Kreuz. (2015). Becoming Fluent: How Cognitive Science Can Help Adults Learn a Foreign Language. Cambridge, Massachusetts: The MIT Press.

눈치

Posted by on Sep 7,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눈치’를 파보면 대개 맥락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권력관계가 나온다는 것. 눈치 빠른 사람이면 다 아는 거 아닙니까.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절망

Posted by on Sep 3,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대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어 짜증난다기 보다는 무슨 수를 써도 다른 이해의 가능성울 설득할 수 없을 거라는 좌절감이예요. 사람은 어떻게든 될 수 있습니다. 다 사정이 있는 거죠. 그 어떤 가능성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엄연한 공존, 겹침의 가능성이 거세된 존재들, 그게 절망인 것 같아요.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