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Posted by on Oct 21,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고대 이집트의 미로는 인터넷과 스트리밍 기술 위에 수많은 덕후들의 피땀으로 지어진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재림했다. 한번 빠져들면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다는 이 지옥의 이름은 유투부(類鬪涪)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질적코딩 수업

Posted by on Oct 17,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학생들과 영어교육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하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각자가 이미 문제를 모두 정의해놓은 상태로 수업에 임한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영어수업에 있어 가장 자주 언급되는 문제는 (1) 학습자들간의 실력차가 너무 크고 (2) 수능 등 획일화된 평가에 따라서 가르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두 이슈의 무게를 인정하는 것과, 이 두 렌즈를 통해서 모든 문제를 바라보려는 습속(habitus)은 전혀 다르다. 어떤 문제가 제기되더라도 실력차와 평가로 간단히 설명해버리는 태도는 게으름을 넘어 반지성적이다. ‘평가가 문제입니다’, ‘학생들이 차이가 나는데 어쩔 도리가 없어요’라는 말에는 현실의 단면을 그리는 솔직함이 배어있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학기 한 수업에서는 자신의 영어학습사를 기술한 언어학습 자서전(language learning autobiography)과 주변의 학생, 학부모, 교사 중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반구조화 인터뷰를 질적연구 방법론 중 하나인 근거이론(grounded theory)을 사용해서 분석해 보려고 한다. 최대한 선입견을 제거하고 데이터에 기반해서 자신의 영어학습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교사, 학부모, 학습자의 고민에서 어떤 패턴이 드러나는지 살피려는 것이다.

학부생들을 질적 연구자로 키우려는 것은 아니기에 방법론의 철학과 역사, 한계와 효용 등을 온전히 다루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사회과학 방법론의 한 축인 질적연구방법론을 맛보면서 자신과 주변의 영어교육 현실에 대해 좀더 깊이있는 시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방법론을 일종의 휴리스틱으로 활용한달까. 이미 정의된 문제의 틀을 벗어 던지고, 데이터와 씨름하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

한 가지 우려가 되는 것은 학생들이 가져올 데이터의 성격이다. 자신의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영어학습 자서전, 자신과 비슷한 사회경제적, 문화적 환경 하에 있는 학부모나 학생의 이야기라면 결국 자신의 생각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분석 결과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방법론은 데이터를 뛰어넘지 못한다. 초심자에게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업에 마음이 설렌다. 실험이 끝나는 3주 후에도 이 기분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지만 혹시 모르니 두고 봐야겠다. ^^

학기 중반 잡감

Posted by on Oct 8,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일상 | No Comments

학생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어느 정도 다르다고 판단되는 두 학교에서 몇 학기를 가르치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OOO라는 영화 보신 분 있어요?”라는 질문에 손을 드는 학생의 비율이 확연하게 차이난다는 점이었다.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이고, 샘플의 수도 작기에 전체 구성원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비슷한 질문을 할 때마다 확인했던 차이가 마음에 계속 걸린다. 서울의 두 학교에서 이정도 차이가 난다면 다른 지역과는 더 큰 격차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영화, 문학, 과학에 대한 지식을 비롯한 문화적 경험은 개인의 성장은 물론 교수학습에 있어 큰 자산인데, 이 부분에서의 격차는 학교가 해결할 수가 없다. 부모의 문화자본, 상징자본의 차이는 자녀의 ‘교양’의 차이로 이어지고, 이는 바로 교육성취의 격차를 낳는다. 너무 단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제도교육 내에서는 이게 대세라는 걸 부인하긴 힘들다.

한편 가르치는 입장에서 학생들의 삶에 자연스레 접속할 수 있는 방식이 뭐가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날것 그대로의 경험을 토대로 함께 교육적 대안을 탐색하는 기획은 리스크가 크다. 개개인의 경험 들어보는 시간이 몇몇 학생들에겐 ‘시간낭비’이며, 함께 답을 찾아보자는 제안은 종종 ‘전문성의 부재’로 읽힌다는 것을 알기에 쉽게 답을 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수업에서 작은 모험을 감행하려 한다. 학생들의 반응은 갈릴 것이다. 못난 민감함 때문에 절대 무덤덤하진 않을 거다. 하지만 해보고 싶은 걸 해봐야지, 언제까지 가르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하는 마음이 더 크다.

학기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초반의 긴장감을 잃지 않고 수업 전체의 내러티브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부담이 밀려온다. 이 고민은 오래 가르친다고 사라지진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