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와 분석

Posted by on Nov 9,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의식意識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비롭다. 그런데 ‘의식은 신비한 것’이라 뭉뚱그려 말해버리면 신비함이 모두 사라진다. 어디 의식 뿐이겠는가. 긴 관찰과 엄밀한 분석이야말로 신비의 친구이며,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기어코 말하겠다는 욕망이야말로 신비의 적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코퍼스 수업 준비하다가

Posted by on Nov 8,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1. 얼마 전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친구가 “이제 NLP(자연어 처리, Natural Language Processing)의 시대가 올텐데”라는 말을 던졌을 때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글번역에서 시리까지 이미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분야이지만 언어연구, 인공지능, 프로그래밍, 본격적 전문가 시스템, 음성 인터페이스, 기계번역, 교육 등등이 만나는 지점에서 NLP의 중요성은 점점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2. 기회를 놓쳤다기 보다는 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게 맞겠지만, 몇 번의 기회가 나를 스쳐갔다. 1995년에 처음 인터넷을 접하고 98년 경에 원격교육/웹기반교육에 실무에 입문했고, 석사 논문 주제로 웹기반 학습을 다루었다. 워드스미스, 콩코던스 등 초기 NLP의 기초 패키지를 활용하고 교육하러 돌아다닌 건 2002년 이후 몇 년.

IT와 밀접하게 일한 게 정확히 10년이다. 시쳇말로 그 바닥을 떠나서 다른 일을 하고 싶었고, 운이 좋아 새로운 여정에 나설 수 있었다. 그다지 후회는 하지 않는데 왜일까 생각해 보니 IT 일하면서 몸 망가진 경험 때문인 거 같다.

4. 학위과정을 마치고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내가 느낀 건 크게 세 가지였는데, (1) 애매한 10년 경력을 떼어낼 도리가 없으나 (2) 그 경력과 전문성을 가지고 NLP와 관련하여 잘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으며 (3) 그럼에도 앞으로 관련 분야의 중요성은 점점 커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5. 학생들과 3주간 코퍼스 언어학(NLP의 한 분야로서 언어학과 컴퓨터과학이 만나는 분야) 수업을 한다. 한 학기 정도는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은데, 거기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NLP를 제대로 아는 사람의 도움이 절실하다.

6. 땅치고 후회하며 갑자기 공부할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전공과 관련하여 다시 배우고 싶은 것 한 가지를 꼽으라면 NLP 관련 지식 아닐까 싶다.

근데 RegEx는 몇 번을 공부했는데 맨날 까먹는구나. ㅎ

영어교육과 커리큘럼 단상

내 맘대로 영어교육과 학사 교과과정을 짤 수 있다면 1년간 한국어로 된 형식언어학, 인지언어학, 응용언어학, 사회언어학, 및 자연어처리 관련 서적을 집중적으로 읽히고, 해당 분야의 ‘대가’들이 대중을 염두에 두고 만든 다양한 강연 콘텐츠를 플립러닝 방식으로 학습하게 할 것이다. 1년 동안 기반을 쌓고 그 위에 3년 동안 영어교육을 쌓아도 괜찮다 싶다. 아니 그런 접근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고 본다.

교육’문제’ 단상: 시민과 사회, 학교 구성원과 학교

Posted by on Nov 2,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오늘 한 학생이 수업 시간에 들려준 이야기다. 그는 과제로 한 젊은 교사와 짧은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라는 말이 최소 6번 나왔다고, 3-4 페이지 정도의 짧은 전사본에서 높은 빈도 같다고 했다.

나는 각각의 “어쩔 수 없이”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는 데이터를 좀더 들여다 봐야 알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짧은 대화에서 6번이 나왔다면 그가 느끼는 무력감은 상당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말했다. “어쩔 수 없이”의 원인이 수능과 같은 국가 평가 체제인지, 새로운 교육실험에 대한 주변 교사들의 은근한 반대인지, 자신이 원하던 교육의 이상을 펼쳐낼 수 없는 학생수 때문인지, 학생들과의 관계 때문인지, 해당 학교의 사회경제적 특수성 때문인지, 이들의 다양한 조합 때문인지 등은 저 어구로 판단할 수 없으니 말이다. (물론 인터뷰 대상 교사의 특유한 말버릇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 경우에도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는 추정을 거둬들이긴 힘들다.)

집에 오다가 교사들이 학생들의 수준차에 대해서 언급할 때 종종 나오는 표현이 떠올랐으니 바로 “한 반에 ABC도 모르는 애들이랑 ~한 애들이 같이…”였다. 이 표현은 “어쩔 수 없음”에 대한 이유로 제시되곤 한다. ‘그렇게 다른 학생들이 한 공간에 있는데’ 뭘 어쩌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복잡해진다. 이런 친구들이 함께 공부한다는 게 문제인가? 아니면 ABC를 못하는 학생이 있다는 게 문제인가? 아니면 이런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는 교사가 문제인가? 아니면 이런 상황을 ‘내 손해’로 받아들이는 일부 학생들이 문제인가? 아니면 그런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교수전략을 전해주지 못한 교사양성 및 재교육 기관의 문제인가? 국가교육과정, 교과서 체제, 수능 중심 수업의 문제인가?

혹 이 모든 것을 손쉽게 ‘문제’라고 명명하는 것이 진짜 문제 아닐까?

딜레마다. 당면한 수업의 문제는 교실 안에서 해결해야 하지만, 경제 및 사회문화적 힘에 의해 형성, 유지, 강화, 완화된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서기 전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교실’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준별 수업(tracking)도 개별화 교수(differentiated instruction)도 완벽할 수 없다. 교사 개인의 온전한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의 원인을 외면하고 노동을 착취하려 함에 다름 아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문제’라고 불리는 것들이 해결되어야 할 대상이라기 보다 내가 발딛고 있는 현실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을 이해하고 개선하려는 노력 속에서 논의되는 수많은 문제들은 개념적 무게를 잃었을 뿐 아니라 실천을 위한 방향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가 너무 많아 모든 게 문제라고 뭉개버리는 일이 적잖이 발생한다. 결국 ‘문제’의 문제가 현실의
문제를 가리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 말을 ‘문제들이 문제가 없다’로 알아들으시는 이는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못난 기우로 괄호 안에 덧말을 던져 놓는다.)

학교는 불완전한 공간이고, 그 불완전한 공간이 ‘덜 나쁜 곳’이 되게 만드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완벽에 대한 기대를 접고 ‘덜 나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란 무얼까. 이상적이지 못한 사회에서 이상적인 학교를 꿈꾸는 것, 혹은 학교만은 달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모순임을 인정한다면, 시민과 사회의 관계를 학교 구성원들과 학교에 대입하면서 많은 이슈들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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