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인풋? – 6. 언어학습에서 감정의 중요성에 관하여

‘이해가능한 인풋(comprehensible input)’이 크라센이 강조한 언어학습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는 ‘정서적 필터’ 가설을 통해 불안과 동기 등의 정서적 요소가 언어습득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 또한 강조하였습니다.

그의 ‘정의적 여과막 가설(Affective filter hypothesis)’에 의하면 언어입력이 언어습득 기제(language acquisition device, LAD)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일종의 필터를 통과해야만 하는데, 이것이 바로 정서적인 요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덜레이와 버트(Dulay & Burt)가 1977년에 이미 제시한 것으로 크라센이 시초는 아니었습니다.

큰 근심걱정에 휩싸여 있을 때엔 재미난 영화라도 쉽게 몰입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뇌가 외부의 자극 즉 영상을 순간순간 온전히 받아들이고 또 처리해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때 ‘근심걱정’은 일종의 여과막이 되는데, 여기에 영화의 내용이 ‘걸려버리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의적 여과막 가설과 잘 맞아떨어지는 우리말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잘 들어오지 않는다” 혹은 “잘 안들어온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마음이 좋지 않아서 그의 설명이 잘 안들어 오더라”라는 말에서는 ‘좋지 않은 마음’이 설명을 가로막는 벽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덜레이와 버트, 나아가 크라센은 “정의적 여과막”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크라센은 정의적 여과막을 형성하는 다양한 정서적 요인을 3가지 범주로 나눕니다. 첫 번째는 동기(motivation)입니다. 동기가 높은 학습자와 그렇지 않은 학습자는 언어입력을 받아들이는 정도에서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자신감(self-confidence)입니다. 보통 자신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고 해낼 수 있음을 굳게 믿는 사람이 스펀지처럼 언어를 빨아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불안(anxiety)입니다. 불안하면 언어습득이 잘 일어나기 힘들므로 학습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이와 같은 지적은 한국 영어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학습내용을 제시하면서도 이를 소화할 수 있는 정서적인 요인들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식하게 하다 보면 된다”나 “무조건 따라하자”는 말에 쉬이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이유죠. 제가 직접 경험했던 다음 두 대화는 학습자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는 영어공부의 단면을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장면 1: 한 수업에서

“한 주에 단어 몇 개 까지 외워 봤어요?”
“900개요.”
“900개요? 어떻게 900개를 외워요?”
“전에 특강인가 해서 매일 학원에 간 적이 있거든요? 그때 하루에 100개씩 시험 보고, 주말에는 200개 씩 봐서 총 900개까지 외워본 적이 있는 거 같아요.”
“그게 가능해요?”
“그냥 대충 단어 뜻 단어 뜻 외우는 건데 어찌저찌 했어요.”
“안 힘들었어요?”
“힘들긴 한데 그냥 공부니까 했어요.”
“…”

장면 2: 원치 않게 합석한 식당 옆자리에서

“OO이 영어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뭐 집에서 학습지 좀 시키고 있는데 이제 뭐좀 시켜야 될 거 같기도 해요.”
“중학교 가기 전이 중요해요. 가면 초등학교랑 완전히 다르잖아요.”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내용도 많아지고 본격적으로 시험도 보고 하니.”
“그럼요. 대비를 해야죠. 저도 아들 몇 달 전부터 OOO학원에 보내고 있어요.”
“아 그래요? 어떻게 잘 하고 있나요?”
“처음에는 악몽을 꾸더라고요. 거의 두 주.”
“두 주나요?”
“네. 꿈에서 학원 선생님이 계속 나오더래요. 엄청난 숙제를 하고 또 시험도 계속 보고요.”
“…”
“근데 두어 주 지나니까 괜찮아졌어요. 지금은 잘 적응해서 다니고요. 성적도 좀 올랐어요.”
“아 그건 다행이네요.”

첫 번째는 얼마 전 한 대학생과 중고교 시절 영어공부에 대해 나눈 대화 한토막입니다. 제가 1년 넘게 외울 단어를 한 주에 외운 셈이더군요. 학원이 재미가 없고 힘들어서 그리 오래 다니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한 식당에서 우연히 합석하게 된 두 어머니의 자녀 영어교육 이야기입니다. 학원에 간 아들이 처음에는 악몽까지 꾸었지만 이내 어려움을 ‘극복’하고 잘 적응해서 영어성적을 끌어올렸다는 ‘성공담’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겐 무서운 공포담이기도 했습니다. 이틀 연속으로 비슷한 꿈을 꾸는 것만도 두려운데 두 주 연속이라니요.

여전히 일부 학원들은 이같은 ‘무식하게 암기하기’ 어휘교수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이 가진 문제는 크게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학생들은 엄청난 단어의 양 때문에 암기 중에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정의적 여과막 가설에 의하면 이렇게 암기하는 단어는 언어습득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다음으로 한국어-영어 단어를 1:1로 대응시켜 암기하는 것을 단어학습의 가장 중요한 전략으로 삼는 것입니다. 문맥없는 단어암기가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영어교육 이론들이 한 목소리로 주장하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방학 혹은 방과후 시간에 대한 학생의 자기 결정권 문제입니다. 첫 대화에서 학생은 ‘나머지 공부’를 언급하였습니다. 학원에서 암기시험 결과가 일정 점수를 넘지 못하면 집에 가지 못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학생 인권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자신의 의사에 반한 나머지 공부는 일종의 ‘강제노동’ 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방법은 ‘대량암기’라기 보다는 ‘강압적 암기’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편 위의 에피소드는 크라센의 정의적 여과막 가설이 한국 상황에서 갖는 뚜렷한 한계를 보여줍니다. 그의 가설에 의하면 ‘동기가 높고 자신감이 있으며 불안하지 않은 학습자’는 언어습득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요건을 갖추는 것이 그저 개별 학습자들의 몫일까요? 영어학습에 대한 동기가 떨어지고 자신감을 상실하며 영어 이야기만 나오면 마음이 편치 않은 게 각자가 부족해서 그런 걸까요? 혹시 우리사회의 잘못을 개개인의 잘못으로 둔갑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삶을위한영어공부

영어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하여

From speaking English to speaking through English
영어 말하기에서 영어를 통해 말하기로

From nonnative speakers of English to users of English as another repertoire for meaning-making
영어 비원어민 화자에서 영어를 또다른 의미생성의 레퍼토리로 사용하는 사람으로

From English as a threat for successful life to English as an asset enriching life
성공적인 삶을 위협하는 영어에서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자산으로

#삶을위한영어공부

갑작스런 죽음

Posted by on Sep 22, 2018 in 단상, 일상, 집필 | No Comments

어머니는 성북동 초입에서 잠깐 하숙을 치셨다. 업으로 삼으신 것은 아니고 어쩌다 하나 남은 방을 활용하셨던 것. 당신께서는 유난히 기억에 남는 한 ‘똘똘한’ 대학생 이야기를 몇 번 하셨다. 똑부러지는 서울법대생. 할 때 하고 놀 때 노는 스타일. 이른 나이의 고시패스. 오랜 검사생활. 국회의원을 거쳐 정당인으로 살아온 여정.

어머니가 방금 그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보내주셨다. 오늘 새벽에 길을 건너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했다. 사고 후 한 시간이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이제 겨우 60대 중반.

황망하기 짝이 없는 죽음. 한 번도 마주칠 일 없었고 알지도 못하지만 잠시나마 어린 나와 같은 공간 안에서 숨쉬었던 분.

“언젠가 한번 꼭 찾아가고 싶었는데… 방금 뉴스에서 소식이 나오는데 슬프네. 착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드네. ㅠㅠ”

어머니의 말씀이 아프다.

함께 했던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까.

그의 명복을 빈다.

#어머니와나

왜, 영어로, 쓰는가

1. 왜 쓰는가

Nadine Gordimer는 “Writing is making sense of life.”라는 말을 했다. “쓰기는 삶을 이해하는 일”, 말장난을 좀 해보자면 “쓰기는 삶을 재료로 의미를 만드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Gordimer의 원래 의도는 알 수 없으나 나에겐 이 말이 결코 가볍지 않다.

삶은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우린 그 흐름 속에서 크고 작은 경험을 한다. 하지만 이를 기록하지 않으면 이내 흩어져 버린다. 순간 순간의 의미는 쉬이 망각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삶의 흐름을 ‘멈춘다.’ 시간의 흐름 속에 작은 균열을 만드는 것이다. 빈 공간 위에 글자를 하나 하나 새기는 동안 잠시나마 세월의 격랑에 덜 휩쓸린다. 성찰하고 기억할 수 여지가, 세찬 바람 속에서도 고요한 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경험의 측면들이 드러나고 뭉개진 생각의 결이 분명해진다. 글쓰기의 과정은 새로운 생각을 잉태하고 이것이 다시 글쓰기의 양분이 된다. 글쓰기는 지나간 것들의 반추임과 동시에 새로 올 것의 창조다. 쓰기 전까지는 모르는지도 몰랐던 것들이 나의 의식 위로 떠오른다.

이런 글쓰기의 특성은 가르치기 전까지는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 것과 많이 닮았다. 수업을 하다가 보면 내가 정확히 무엇을 알고 있는지, 어떤 내용에 대해 단편적인 지식만을 갖고 있으며 어떤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지 못하는지 알게 된다. 또 수업을 통해 나 자신이 더 많이 배우기도 한다. 가르치는 일은 부족함에 대한 깊은 깨달음 가능케 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배움의 지평을 열어 젖힌다.

2. 왜 영어로 쓰는가

그런데 우리 삶에서 영어로 글을 쓴다는 게 그리 중요한가?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여기 영어실력, 그 중에서도 영작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영어로 글을 써야 하는 분들은 극소수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사망한 Stephen Covey의 책에 소개되어 널리 쓰였던 중요성/긴급성 “Importance/Urgency” 2X2 매트릭스를 떠올려 보자. 여러 분들께 영어 글쓰기는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즉, 잘하면 정말 좋을 것 같지만 안해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는 일이다. 안해도 지장 없는 일은 늘 다른 일에 우선 순위를 내준다. 수업과 잡무, 친구들과의 약속, 그 외 이런 저런 개인사가 치고 들어오면 미루다 못해 까맣게 잊게 되는 것이다.

한국은 영어글쓰기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드는 사회문화적 환경을 갖고 있다. 쉽게 말해 한국에서 영어는 일상에서 쓸 일이 없다. 영어가 외국어인(EFL;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상황인 것이다. 이는 영어를 제2언어로 활용하여 일상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제2언어로서의 영어(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영작을 배우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좋은 교재를 정하는 게 아니라 영어로 써야 할 이유를 찾고, 동기를 유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좋은 교재” “좋은 학원”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사실이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분이 아니라면 단기 공부는 반드시 실패한다. 아니, 영작문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변함없이 지속된다고 하는 것이 좀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왜 영어로 글을 쓰려 하는가?” 이 질문을 회피하고 영어 글쓰기를 하려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영작문을 공부하려는 게 학점을 따는 것 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교실 밖에서 영어로 의미를 만드는 일에 어떤 가치가 있는가?

어떤 경우라도 Gordimer의 이야기처럼 삶을 좀더 깊고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쓰기가 아니라면 이내 영어 글쓰기를 할 이유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학기 여러분과 함께 이 고민을 함께 해보고 싶다.

3. 왜 영작문 수업을 듣는가

몇년 전 모 교육대학원 영어쓰기 강의록의 일부다. 이번 학기에는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영어로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그런데 ‘왜’라는 질문에 대해서 딱 부러지는 대답을 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학부생들의 경우 ‘필수 과목이라서’, ‘해두면 나중에 도움이 될 거 같아서’, ‘혹시 관련분야로 갈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등의 대답이 나온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반응은 자연스럽다.

문화적 자본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구별하는 기제로서 영어 특히 영어 글쓰기의 역할이 분명 존재하며, “영어공부 방기 = 미래에 대한 불안 가중”이라는 등식이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그닥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금요일 오전 수업에 피곤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왜 이 친구들이 영어로 글을 써야만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결국 내가 다다르는 결론은 학생들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겠다는 것. 뭐 이런 심심하기 짝이 없는 결론이 있나 싶지만 요즘 들어 학생들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곱씹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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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쓰는가를 학생들에게 질문하려 했는데
왜 가르치고 있는가를 자신에게 묻고 있다.

#영어로글쓰기
#삶을위한영어공부

ACROSTIC Poem을 활용한 쓰기활동

이번에는 “Acrostic Poem”을 한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acrostic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실 텐데요. 옥스포드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정의가 되어 있습니다.
 
acrostic n. A poem, word puzzle, or other composition in which certain letters in each line form a word or words.
 
이 정의로도 바로 이해가 잘 안되실 수도 있겠네요. 예를 들어 이런 건데요. 직접 쓴 CAT의 acrostic poem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각 행의 첫 글자를 모으면 CAT이 되지요.)
 
Calm posture, smooth jumps, and mystical eyes,
Aren’t you an alien creature?
To me, you are such an unfathomable relief.
 
네 그렇습니다. 제가 고양이를 좀 좋아라 하지요. 좀 유치한가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SORROW 입니다.
 
Sorry, you are wrong
Or am I mistaken?
Rough days ahead, waiting to be felt.
Reliving all those misunderstandings and misgivings,
Oh my weary soul will be
Weeping in futile gestures of forgiveness.
 
일필휘지로 써 보았는데 어떤가요? 슬픔이 느껴지나요?
 
오늘은 여러분이 두 단어를 골라 이렇게 acrostic poem을 써보도록 할게요. 하나는 CAT처럼 짧은 단어를, 다른 하나는 철자 대여섯 개 이상의 조금 긴 단어를 권해드립니다.
 
써놓고 보니 조금 긴 것도 써보고 싶네요. 이것도 일필휘지로 써보았습니다. ^^
 
FRIENDSHIP
 
Fear not, my heart
Rest in our dear memories
I was young and immature, so were you
Experiencing no success was okay
Neither time nor space could stop us, ’cause we were
Determined to be with each other
Seeking the brightest stars of the darkest life
Helplessly hopeful,
Into the adventure, we set our feet
Painful together, peaceful together
 
여러분들께 friendship은 무엇인가요? :)
 
#영어로글쓰기

3-Word Story

Posted by on Sep 20, 2018 in 수업자료, 영어, 영어로 글쓰기, 집필 | No Comments

수업중 쓰기 활동

지난 시간에는 six-word memoir를 함께 써보았습니다. 이번에는 3-sentence story 입니다. 아래는 웹에서 모은 몇 개의 공포 스토리입니다.

2- or 3-sentence horror stories

I begin tucking him into bed and he tells me, “Daddy check for monsters under my bed.” I look underneath for his amusement and see him, another him, under the bed, staring back at me quivering and whispering, “Daddy there’s somebody on my bed.” — justAnotherMuffledVo

They celebrated the first successful cryogenic freezing. He had no way of letting them know he was still conscious. — KnowsGooderThanYou

They delivered the mannequins in bubble wrap. From the main room I begin to hear popping. — Mikeyseventyfive

출처:
150+ Short Two-Sentence Horror Stories To Freak You Out

긴 글이 아니어도 충분히 재미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꼭 세 문장일 필요는 없죠. 무서운 이야기일 필요도 없습니다.

무엇에 관해 쓰냐고요? 그건 각자 생각해야 하지만 제가 가져와 본 몇 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힘들었던 이별의 순간 (w/ 사람, 장소, 사물, 동식물 …)
2. 황당했던 꿈 이야기
3. 운명같은 우연
4. 내가 ‘행운의 편지’를 쓴다면?
5. 세상 가장 쓸쓸했던 날
6. ‘오늘 하루 시력을 잃었다’
7. 소설을 쓴다면 이런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8. 대통령이 점심 식사에 초대하다. 3분간 대학생으로서 솔직한 이야기를 하라는데…
9. 세상 누구에게도 없는, 나 혼자 간직한 희망 혹은 소원
10. WRITING 각각의 알파벳으로 행이 시작되는 시를 쓴다면?

웹에서 3-sentence stories나 100-word stories 등으로 검색하면 다양한 샘플을 볼 수 있습니다.

#영어로글쓰기

유니버설 디자인과 영어교육

 
“유니버설 디자인(영어: universal design, 보편 설계, 보편적 설계)은 제품, 시설,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사람이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해 제약을 받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유니버설 디자인’, 위키백과)
 
디자인의 관점에서 영어수업을 봅시다. 영어교재를 봅시다. 영어교육과정을 봅시다.
 
‘디자인 오브젝트’의 관점에서 현재의 영어교육은 반-유니버설 디자인(anti-universal design)에 가까운 것 아닌가요? 저 위의 항목에 ‘계급’이나 ‘사회경제적 지위’를 넣으면 어떨까요? 온갖 이유 때문에 평등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그렇다면 우리의 영어교육은 어떻게 다시 디자인(redesign)되어야 할까요?
 
#삶을위한영어공부

평안했던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것

Posted by on Sep 16, 2018 in 단상, 집필 | No Comments

“평안했던 시절”을 그리워한다고 하지만 실상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평안’도 ‘불안’도 존재하지 않았던 날들일지 모른다. ‘평안’이라는 개념이 마음속에 자리잡은 후 우린 한 번도 평안한 적이 었었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던 것들을 그리워하기 때문일까? ‘아무 걱정 없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일은 더욱 아련하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새로운 약속

Posted by on Sep 16, 2018 in 단상, 집필 | No Comments

어떨 때는 원고 파일 여는 데 2-3일이 걸린다. ‘걸린다’고 하지만 ‘미룬다’가 맞는 말이고, 미루기의 배후에는 고질적 게으름과 함께 아련한 패배의식과 막연한 비관주의가 버무려져 있다.

새로운 약속을 했고 본격적인 집필이 시작되었다. <어머니와 나> 보다 훨씬 오래된 문제의식을 담은 이야기다. 그간의 생각을 정리해 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의 매듭을 지어야만 다음 매듭이 가늠된다.

#삶을위한영어공부

913 부동산대책 잡감

Posted by on Sep 14, 2018 in 단상, 집필 | No Comments

집을 가지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가질 일이 있을까 갸우뚱하며, 투자를 위해서 집을 산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입장에서 보면 세상이 이토록 시끄러운 게 외계의 일 같다. 경제를 모른다 해도 괜찮고 나이브하다 핀잔을 줘도 괜찮고 그러니 집이 없지라고 타박해도 괜찮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적잖은 정규직 노동자들 및 영세 자영업자들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수십 억 부동산 가진 이들에게 적절한 책임을 물겠다는 조치를 ‘세금폭탄’으로 몰아가는 사회는 분명 제정신이 아니다. ‘니가 부동산이 없어 그런 소리를 하지’라고 말한다면 ‘바로 그거다’라고 말할 것이다.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해야 한다. 있는 척, 앞으로 있을 것 처럼 말하는 것은 철저한 기만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이 사회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으로 이 땅의 주인으로 살아갈 새로운 세대에 대해. 없음을 가리기 위해 있음의 편에 서는 기만을 언제까지 봐야할까 하는 질문과 맞딱뜨릴 때마다 마음이 갑갑해진다. 부끄러운 건 없음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모르는 것인데.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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