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생을 위한 근거이론이야기 (5)

Posted by on Oct 30, 2018 in 강의노트, 수업자료, 집필 | No Comments

 

이번 시간부터는 실제 데이터를 가지고 근거이론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 지난 시간 여러분들이 쓴 ‘언어학습자서전’의 골자를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일들을 끄집어내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잊고 있었던 사건들이나 가슴 깊이 파묻힌 감정들을 꺼내면서 여러 생각이 드셨을 것 같습니다.

2. 자 이제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자리에서 나와 연구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봅시다.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어떤 과정으로 영어를 공부하게 될까요?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주요한 사건은 무엇일까요?

이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인물들은 누구인가요?

학습자들은 영어학습의 여러 단계에서 어떤 행위를 하나요?

이들 행위를 이끄는 동기와 조건에는 무엇이 있나요?

학습과 관련된 행위의 강도, 방향, 반복, 간격 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인가요?

행위를 이끌어나가는 데 있어서 두드러진 상호작용 패턴은 무엇인가요?

여러분들은 영어학습 행위를 어떻게 평가하고 판단하나요?

이런 과정을 통해 도출되는 결과는 무엇인가요?

뭉뚱거려 이야기하면 “한국사회에서 영어학습에 미치는 요인들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어떤 영향을 미치며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일까요?”

3.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이 방법론을 특성에 따라 분류한 묶음(family)을 ‘방법론(methodology)’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지난 번에 말씀드린 대로 방법론에는 크게 두 줄기가 있습니다.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입니다.

4. 양적연구는 이 수업의 관심분야가 아니므로 여러분들께서 좀더 살펴보시길 바라고 오늘은 질적연구에 대해 아래 인용문을 통해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질적 연구(qualitative research)란 통계적 과정이나 다른 양적 방법으로 얻어질 수 없는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 특수한 연구방법으로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수집한 자료들로부터 비수학적 분석과정으로 결과물을 추출하는 연구 방법이다. Creswell(1998)은 대표적인 질적 연구로서 전기, 현상학적 연구, 근거이론 연구, 문화기술지, 사례연구 등을 들었다. 주로 사회과학이나 행동과학 연구 분야의 연구자들, 그리고 인간 행동과 기능에 관한 문제들과 관련된 분야의 종사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질적 연구는 제한된 맥락에서 연구자가 가설적으로 설정한 관계(특히 상관관계나 인과관계)의 타당성을 입증해 보이는 데 치중을 하는 양적 연구와는 방법론에 있어서 서로 상이하나, 오히려 그러한 점 때문에 양자가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최지영, 2012, p. 1)

5. 전통적으로 연구자들은 어느 한 캠프에 속해 있는 것을 정체성으로 삼는 일이 많았습니다. “저는 질적연구자입니다.” “저는 양적연구자입니다.”와 같은 선언이 낯설지 않았죠. “그 사람 질적연구는 안하지 않나?” “그 사람 통계 아니면 연구 안해.” 이런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고요. 어떤 학자는 이 두 캠프의 대립을 ‘종교성’으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양적연구와 질적연구는 서로 다른 종교와 같다는 유비를 드는 것입니다. 연구자는 자연스럽게 두 종교의 신실한 신도가 되는 것이겠지요.

이런 경향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습니다. 소위 ‘mixed method’의 등장으로 양적 연구 방법론과 질적 연구 방법론을 하나의 연구 안에 녹여내려는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전의 ‘방법론 전쟁’의 잔향은 여전히 어느 정도 남아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양쪽에 형성되는 극성(polarity)는 상당히 강하고, 이 두 ‘종교’ 중 하나에 귀의하는 경향을 개별 연구자들 뿐 아니라 연구 결과물이 출판되는 여러 저널에서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근거이론은 비통계적, 비수학적 방법으로 데이터 내에 담긴 ‘뜻’을 찾아내려는 시도라는 것입니다. 이제 근거이론을 최초로 구체화하고 체계화한 두 사람, 바로 Barney Glaser와 Strauss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어공부, 정성을 다해 누군가가 되어보는 ‘배우’되기

영어공부, 정성을 다해 누군가가 되어보는 ‘배우’되기

초등학생은 대개 흉내내기를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만화체 따라 그리기나 연예인 성대모사, 아이돌 댄스 카피는 기본이고, 선생님이나 친구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대화하는 것도 일상적인 일입니다. 유행어에 한번 꽂히면 몇 달을 쓰기도 하지요.

신기해 보이는 것이나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것들을 따라해 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습니다. 엄청난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밈(meme)의 변함없는 인기는 이를 방증합니다. 우리말로는 ‘짤’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밈 현상은 우리 안의 ‘따라쟁이’ 본능을 잘 보여주지요.

나이가 들면서 이런 모방욕구는 경계의 대상이 됩니다. 남들 앞에서 누군가를 따라한다는 게 멋적기도 하거니와 혼자 있을 때도 쑥쓰러운 느낌입니다. 저 또한 중고생 시절 “왜 남들 말을 이렇게 열심히 따라해야 해? 우리말도 아닌 꼬부랑 발음을 익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외국어를 배우는 데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똥고집이었습니다.

모방의 욕구는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그 무엇보다 절실한 외국어공부에서 훌륭한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언어학습이 말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배우는 일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모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문장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흉내냄으로써 더 깊은 이해를 추구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앵무새가 아니라 배우가 되어보는 것이지요.

모방을 자기만의 색깔로 바꾸어 낸 영어공부의 사례로 “영국 방언 모방의 달인”으로 불리는 <Korean Billy>를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동경하는,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해 동경하도록 교육받는 원어민은 정확한 표준어를 사용하며 모든 면에서 완벽한 언어를 구사하는 이상화된 원어민 화자(idealized native speaker)입니다. 그래서 싱가포르 영어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앨러배마 등의 지역 방언을 듣고도 ‘발음이 이상하다’고 느끼지요. 제가 수업시간에 “원어민들도 자라나면서 소유격 its를 it’s로 잘못 쓰는 경우가 꽤 많다”고 했더니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원어민인데 그걸 왜 틀리죠?”라고 질문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국어 내에도 다양한 방언이 존재하며, 한국어 원어민 화자도 말실수를 하고 어색한 문장을 쓰기도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상화된 원어민 화자’는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Korean Billy는 이 모델과 반대의 지점에서 특정 지역, 계층, 문화를 타겟으로 언어학습을 진행하였습니다. 영국영어의 매력에 빠진 그는 영국의 다양한 방언을 타겟으로 공부를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말에 대입해 보면 한 외국인이 소위 ‘표준어’를 고집한 것이 아니라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방언을 유심히 관찰하고 따라한 셈입니다. 이런 신선한 시도는 그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BBC의 눈에 띄어 방송을 타기도 했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사회는 아이들에게 개성있는 캐릭터가 되어보라 요구하지 않습니다. 특정 방언에 대한 관심, 풍부한 감정표현, 새로운 캐릭터의 창조를 꿈꾸기에는 표준의 힘이 너무나 강합니다. 아이들에게 거의 유일하게 주어진 배역은 사회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영미권 중산층 백인의 말투를 지닌 엘리트입니다. 어쩌면 연기를 배우는 사람에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 어울리지 않는 단 하나의 역할만을 강요하는 셈입니다.

십여 년 전 직장 선배 하나가 회사를 그만두고 영어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영어교육 업계에서 나쁘지 않은 직장이었지만 표준화된 커리큘럼과 학습법으로 진짜 말을 가르치긴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미국영어’나 ‘영국영어’가 아니라 ‘누군가가 될 수 있는 영어’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가 Listen and Repeat(듣고 따라하기)를 생각없이 반복하는 앵무새가 아니라 ‘꼬마 연기자’로서 다른 삶을 동경하며 영어를 배웠다면 어땠을까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닿을 수 없는 네이티브라는 환상의 고지를 정복하려는 등반가 아니라, 이 동네 저 동네로 난 작은 골목길을 순례하며 진짜 사람들을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여행자였다면 어땠을까요. 그저 영국인 Billy가 아니라 Korean Billy로,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내가 닿으려 하는 언어와 문화의 일원으로 살아보려 했다면 어땠을까요. 저는 왜 그토록 오랜 시간 ‘이상화된 원어민 화자’의 그늘에서 슬퍼하는 자신을 방치했을까요?

‘세계를 탐험하는 배우’로 저를 이끌어 준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좀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랬다면 허깨비같은 네이티브를 좇기보다는 정성을 다해 누군가가 되어보는 ‘배우’로서 공부할 수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작성중

영어교사들을 위한 인지언어학 이야기 45: 체화된 시뮬레이션 가설 (1)

Posted by on Oct 25, 2018 in 강의노트, 인지언어학, 집필 | No Comments

“기온이 39도까지 올라가는 최악의 폭염, 40명이 넘게 모인 좁은 교실의 에어콘이 고장났다. 사람들은 나누어준 팜플렛을 말아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문장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일까요? 다른 말로 하면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이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듯한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문장의 의미는 단어에서 오고, 단어의 의미는 그 정의이다    

영어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습니다. 그리고 뜻을 확인하죠. 우리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신문을 읽다가 “전가의 보도”를 만났는데 그 뜻을 모른다면 국어사전을 찾기 마련이죠. 사전에서 뜻을 확인한 후 텍스트를 계속 읽어나갑니다. 이 시나리오에서 단어의 의미는 사전의 정의(definition)입니다. 단어를 안다는 것은 사전의 정의를 안다는 것이며, 이는 의미에 대한 전통적인 이론의 근간을 이룹니다. 말의 뜻은 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도록 하죠. 단어의 뜻이 사전에 나와 있는 정의라고 한다면 그 정의는 무엇으로 이루어질까요? 국어사전이라면 쉽게 모국어라고 답할 것입니다. 뜻풀이 또한 우리 말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단어의 뜻을 알려고 하는 경우라면 어떨까요? 영단어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이해하기도 하고 영영사전의 정의를 통해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렸을 때 스페인어 사용국에서 오래 산 경험이 있다면 영어-스페인어 사전을 가지고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여기에서 하나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언어의 의미가 언어로 된 정의라면, 정의를 이루고 있는 언어는 어떻게 이해하는 것일까요? 영어학습 초기에 영영사전을 사용해 보셨다면 단어를 찾다가 ‘뺑뺑이를 돌아 본’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단어의 뜻을 정의하는 부분에 모르는 단어가 나와서 그 단어를 다시 찾아보니 또다시 모르는 단어가 나오는 경우입니다. 이때는 그냥 영한사전을 참고해서 해결하곤 했지요. 그렇다고 해도 질문은 남습니다. 언어의 의미가 언어 내에 있다면 세상만사와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요?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언어는 언어 밖으로 어떻게 나가서 세계와 만나는 것일까요?

언어를 이해하게 만드는 시스템은 우리 뇌에 존재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이해하는 또다른 시스템을 생각해 내야 합니다. 언어를 언어로 이해해서 그 의미를 모두 아는 것이라면 언어와 세계가 만날 길은 영영 사라지니 말입니다. 이 점을 깊게 고민한 학자는 미국의 철학자 Jerry Fodor였습니다. 그는 인간이 일상생활에서 주고받는 자연어 이외에 우리 뇌 속에서 이 언어의 의미를 알게 해주는 상징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진정한 말뜻은 다른 말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차원이 다른 언어로 변환했을 때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주장을 사고언어가설(LOTH; the Language of Thought Hypothesis)라고 부릅니다.

사고언어는 우리가 발음할 수 있는 언어와는 다르게 소리값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사고를 코드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죠. 마치 단어를 이리 저리 옮겨 문법구조를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고언어는 정신어(Mentalese)라고도 불리는데, 우리가 어떤 자연어를 사용하든지 공통으로 갖고 있는 시스템입니다. 다시 말해 한국어를 쓰건 영어를 쓰건 스페인어를 쓰건 관계없이 이들 언어의 의미를 부호화(encoding)할 수 있는 인간 공통의 표상체계인 것입니다. 이같은 가정에 근거하여 Fodor를 비롯한 사고언어가설의 지지자들은 인간이 한국어와 같은 자연어보다 더 추상적인 수준의 기호 시스템인 정신어로 사고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뇌는 이러한 정신어를 표상할 수 있는 생물학적 체계를 갖추고 있고, 이는 모든 이들이 갖고 태어납니다.

전통적 의미가설과 사고언어가설의 한계

하지만 사고언어 가설도 언어의 의미에 대한 전통적 가설이 갖고 있는 약점을 완전히 넘어서지는 못합니다. 언어의 의미를 언어에 가두어 버린 전통적인 관점도, 일상어를 사고의 언어로 ‘번역’해서 이해한다고 믿는 사고언어가설도 의미의 발생을 언어적이고 인지적인 측면에 가두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 두 가설은 우리가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과정을 순수히 상징적인 차원(symbolic dimensions)에 국한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언어를 통해 사고하고 생각을 교환하는 일은 보는 일이나 듣는 일, 우리의 근육을 움직여 운동하는 일과 관계 없이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일일까요? “기온이 39도까지 올라가는 최악의 폭염, 40명이 넘게 모인 좁은 교실의 에어콘이 고장났다. 사람들은 나누어준 팜플렛을 말아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는 문장을 이해하는 데 오로지 언어적이고 논리적인 표상(representation)만이 개입하는 것일까요?

오랜 시간 언어학은 이 질문에 대해 확실한 답을 내놓을 수 없었습니다. 언어와 사고, 시각, 청각 등의 지각체계, 나아가 운동체계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방법론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간학문적 접근을 통해 60년대 이후 꾸준히 발전해 온 인지과학, 이와 함께 발전하고 있는 심리언어학적 연구방법론, 2000년대 들어서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뇌영상 기술 등이 언어의 작동방식, 언어가 의미를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을 밝혀낼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천 년 미스테리 속에 숨겨져 있었던 의미생성의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데 속도가 붙기 시작한 것입니다.

“체화된 시뮬레이션 가설(embodied simulation hypothesis)”은 이같은 흐름에서 부상하고 있는 언어의 의미작용에 대한 가설 중 하나입니다. 이에 따르면 가설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언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다른 언어로 뜻풀이를 해서도 아니고 사고의 언어로 변환을 해서도 아닙니다. 우리가 언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언어에 의해 촉발(trigger)되는 다양한 감각 시뮬레이션을 실행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단순화시켜 말하면 우리는 뇌와 신체가 기억하고 있는 바를 자원으로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수행함으로써 특정 언어를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

 

영어학습,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기 (2)

이런 면에서 우리는 영어공부를 ‘더욱 나답게 되는 일’로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주어진 내용을 충실히 암기하고 쌓아가기 보다는 영어라는 자원을 통해 더 나은 나를 만들어 가는 일에 천착하는 것이지요. 쏟아지는 정보와 교재, 학습법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이런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요?

저는 세 가지 원칙을 제안드리려 합니다.

하나. 공부 대상 및 과정의 구체화 (concretization)

둘. 영어 레퍼토리 수집 (collection)

셋. 끊임없이 나만의 이야기 만들기 (personalization)

나다운 나를 찾는 과정으로서의 영어공부를 위한 첫 단계는 나에게 맞는 구체적인 목표 설정입니다. 다른 사람이 정해준 일반적인 목표, ‘누구에게 적용가능한 목표’가 아니라 지금 시기 내 삶에서 영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를 꼼꼼히 따져보는 일 말입니다.

“영어를 배운다”는 말은 매우 추상적입니다. 우선 ‘영어’가 담는 내용과 행위가 광범위합니다. ‘배운다’는 동사 또한 애매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영어의 쓰임과 기능이 다양하기에 영어학습이 포괄하는 범위가 매우 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공부의 대상이 두루뭉술할 때 그 대상과 자신의 거리가 멀어집니다. ‘영어’는 거대한 만큼 멀리 있고, ‘배운다’는 애매한 만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알처럼 스르륵 빠져나가기 마련입니다. ‘뭐 좀 해보려고 하’면 하루가, 한 달이, 또 한 해가 금방 사라지지요.

그렇기에 나다운 영어공부는 추상적인 것들을 끊임없이 구체화하는 과정 즉, 구체적인 활동과 내용, 꼼꼼한 학습법을 만들고 실천하는 과정을 지향합니다. 최적의 시간과 장소, 콘텐츠와 순서, 암기와 정리법 등을 탐색하고 이를 실천하면서 자신의 몸에 맞는 공부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 보는 일 자체가 훌륭한 공부입니다.

예를 들어 ‘내일부터 영어공부 좀 해야지’가 아니라 ‘내일 밤부터는 자기 전에 정말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를 30분간 보고, 스크립트를 세 번 정도 정독하고, 모르는 단어를 찾아 단어장에 정리하고, 스크립트 없이 다시 한 번 보고, 이후 쉐도잉을 한 후, 가장 마음에 드는 대사 두 개를 골라 공책에 적어야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꾸준히 해낼 수 있는 작은 과업을 계획하는 것입니다. 특히 공부시간을 확보하기 힘든 직장인이라면 여러 가지를 동시에 공부하려 하기 보다는 한 가지를 꼼꼼하게 계획해야 합니다. 시작 단계에서는 미약해 보이지만 작은 성공의 경험이 쌓이다 보면 영어실력이 훌쩍 커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나다운 영어공부를 위한 두 번째 전략은 다양한 종류의 수집(collection)입니다. 어렸을 때 우표나 기념주화, LP 등을 꾸준히 모으는 수집가 몇몇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특징은 (1)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2) 조금씩 꾸준히 모으는 데서 뿌듯함을 느끼지만 (3) 정말 아끼는 대상이라면 집요한 노력을 통해 손에 넣는 데 있었습니다. 이런 수집가들의 특성을 영어공부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정치에 관심이 있고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스타일을 좋아하신다면 웹에서 그의 연설들을 찾아보고, 멋진 표현을 모으고, 최고의 연설에 순위를 매겨보고, 인상적인 대목을 외워 말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스타워즈의 팬이라면 요다와 다스베이더의 말을 최대한 모으고 그중 멋진 대사를 반복해서 낭독하고 녹음하면서 재미를 찾을 수 있겠지요. 특정 도시를 텍스트로 삼아 주변의 영어 광고나 간판들을 찍고 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보거나 어색한 안내문을 모아 수정해 볼 수 있습니다. 구글 스트리트 뷰와 같은 지도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 곳곳을 누비며 도시의 언어경관을 탐색할 수도 있습니다.

크리스 앤더슨이 제안하듯 TED 강연을 통해 청자와의 유대를 높이는 표현, 설득을 위해 초석을 까는(priming) 과정, 말의 속도나 발성이 달라지는 순간들,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활용되는 메타포 등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면서 프리젠테이션 기법을 익힐 수 있습니다. 요리를 좋아한다면 유튜브에서 자막이 제공되는 푸드 채널을 꾸준히 보면서 관련 표현을 익히는 것도 좋습니다. 요리쇼는 음식의 이름이나 계량과 관련된 어휘들 뿐 아니라 다양한 동작을 나타내는 구어 동사 표현의 보고죠.

IT관련 리뷰 유튜버를 꾸준히 팔로우하면서 기술 및 제품 관련 영어를 익히거나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평을 받아쓰기 하면서 다양한 칭찬 및 비판에 유용한 어구나 깊은 감동을 표현하는 방식을 배울 수도 있겠습니다. 위키북스나 핀터레스트에서 인물별, 주제별 명언을 모으거나 유명 인사들의 유언을 모아 공부할 수도 있고, 잘 정리된 유머나 말장난 사이트를 독파할 수도 있겠지요. 영어를 오랜 시간 공부한 학습자라면 ‘자본주의 광고의 꽃’으로 불리는 미국 수퍼볼 광고를 시청하고 관련 언론기사를 읽으며 광고에 드러난 미국 문화의 단면을 공부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여러 영역의 수집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관심이 가는 주제 1-2개를 따라가며 꾸준히 공부하다 보면 생각보다 깊은 내공이 쌓입니다. 이는 다른 분야를 수집하고 공부할 수 있는 초석이 되지요. 내공과 내공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를 찾아가는 영어공부 세 번째 전략은 “나의 말로 바꾸기”입니다. 이는 언어학습 이론에서 개인화(personalization)라고 불리는 기법입니다. 생소한 주제를 다룬 글에 나온 단어는 금방 외워지지 않습니다. 한-영 혹은 영-한 단어 목록으로만 배운 단어들도 쉬이 잊혀지지요. 이때 단어와 좀더 친해지면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 ‘개인화’의 원리입니다. 사람과의 사귐처럼 말과 사귈 때 그 말을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요.

효율적인 개인화를 위해서 마음에 드는 단어나 문장을 자신의 처지에 맞추어 써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는 형용사를 배웠다면 내 주변 사람들과 형용사를 매치시켜 보고, 새로 배운 속담을 제목으로 하는 경험담을 써보는 것입니다. 회사내 인간관계를 다룬 지문을 읽었다면 그 내용을 현재 직장에 적용해 보고 몇몇 문장을 활용하여 자신과 상사와의 관계를 묘사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영어자료를 대하는 방식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은 교재에서 제시하는 단어와 문장을 최종 학습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재를 종착지로 삼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는 교재의 잠재력을 절반도 활용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주어진 텍스트에 등장하는 어휘, 문장, 문법 등의 요소를 학습의 목적지가 아닌 출발점으로 삼을 때 영어공부가 더욱 풍성해집니다. 제시된 내용의 암기를 넘어 나의 생각과 감정, 의견과 바람을 표현하는 재료로 삼는 관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교재개발 전문가가 전해준 언어는 ‘올바른 것’일지는 모르지만 ‘나의 것’은 아닙니다. 영어교재 집필자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을 표현하고 성장시키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상으로 나답게 되는 영어공부를 위한 방법으로 구체적인 공부법의 탐색, 흥미로운 콘텐츠의 수집, 나와 세계를 표현하는 습관 형성 등을 살펴보았습니다. 한국인 모두를 위한 영어학습법이 아니라, 영어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궁리해야 합니다. 교육과정 속에, 영어학습 이론에, 마케팅 슬로건에 속한 영어가 아니라 내 손 안에, 혀 끝에, 수집 목록에, 유튜브 채널에, 노트 필기에, 다양한 간판들 속에, 자주 찾는 요리 웹사이트 속에 있는 구체적인 영어를 찾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 영어를 암기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나를 키워가야 합니다.

영어를 통해 내가 더욱 나다워진다는 것은 영어가 열어주는 새로운 가능성을 통해 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의 말”을 “나의 말”로 바꾸는 과정에서 영어가 자라고 내가 성장합니다. 더 나은 자신을 찾아나서는 삶을 위한 영어공부의 길,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작성중

교사가 이론가 못지 않게 중요한 이유

Posted by on Oct 24, 2018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많은 사람들이 큰 이론이나 영향력 있는 모델을 만들고 싶어해요. 파급력이 큰 것들을 추구하죠. 하지만 이론이나 모델은 그 본성상 일반적일 수밖에 없어요. 고도화의 추상화를 특징으로 하니까요. 당연히 개개인의 삶에 가 닿지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교사의 역할은 이론가의 역할보다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어요. 이론에 기반해서 교육과정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교사를 통해 학생에게 전달되는데 결국 학생 하나하나가 경험하는 것은 교사와의 상호작용이거든요. 이론이 아니라요.

오늘 여러분들이 나누어 주셨듯이 다른 무엇보다도 선생님 때문에 영어를 좋아하게 되는 학생이 꽤 있어요.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 학생이 만난 건 이론이 아니라 교수자입니다. 교사의 자세, 태도, 실력, 눈빛, 말투, 사람됨이죠. 이걸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나를 통해 교과라는 세계 전체를 만나게 되는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을요.”

“외국어교육이라는 학문의 특성상 다른 언문화권에서 이론이 들어오는 일이 많죠. 그런데 이론이 수입될 때 보통 그 이론이 성장하고 뿌리박은 토양은 탈각되고 앙상한 개념들만 들어와요.

예를 들어 “의사소통중심 교수법(communicative language teaching)”은 미국과 캐나다의 토양에서 만들어진 이론인데 한국으로 왔죠. 주로 영어 원어민 화자들이 제2언어로서의 영어(ESL)를 가르치는 환경에서 발전된 이론인데 영어가 외국어(EFL)이자 주요 입시과목인 상황에 적용된 거죠. 아시다시피 많은 면에서 실패했어요.

뿌리박았던 토양을 잃은 나무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요. 사실 그래서 한국사회라는 토양에 서 특정 개념의 위상과 역할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이에 기반해 실천할 사람이 필요한데, 이중 제일 중요한 게 교사라고 생각해요.

어떤 면에서 교사는 이론의 생사를 결정하는 존재라고 봐요. 교육이론의 완결성은 텍스트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증명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교사의 역할은 이론가 못지 않게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학생들의 영어학습사 발표를 들으면서 덧붙인 말입니다. 자신의 공부사를 돌아보면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나아가 앞으로 가르치게 될 학생들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무엇보다 이론에 주눅들거나 매몰되지 않고 학생 한 사람 한 사람과 만나는 가운데 이론가 못지 않은 자부심을 갖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영어학습,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기 (1)

새로운 언어를 통해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기. 외국어를 공부하는 여러 이유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입니다. 누군가를 만나 배우고 감동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이 바뀌듯, 새로운 언어가 열어주는 세상을 통해 내 안의 지식, 경험, 의견, 욕망, 아픔 등을 새롭게 발견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영어교육 프로그램들은 사람들을 획일화하는 경향을 지닙니다. 특정한 프로그램을 선택한 사람들은 엇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같은 주제, 같은 관점, 같은 공부 순서, 같은 학습법을 ‘강요당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이는 프로그램 제작자들의 의도와는 관계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같은 내용을 제시하는 데에서 오는 한계입니다.

언어학습을 위한 내용구성에 있어 원칙은 분명 존재합니다. 문법과 같이 그 내용이 잘 정의된 요소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출판사들과 영어학습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이런 순서를 S&S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합니다. “Scope and Sequence”의 약자로서 어떤 범위의 내용을(scope) 어떤 순서대로(sequence) 가르칠 것인가를 정하는 가이드라인을 S&S 라고 하지요.

하지만 특정 S&S가 학습자의 성향이나 정체성과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흥미없는 소재를 늘어놓은 학습교재를 자신이 즐길 수 없는 방식으로 학습해야 한다면 영어공부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지요.

이런 경향은 평가의 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언젠가 한 토익 수험서를 훑어보다가 스피킹 섹션에서 다음 질문을 발견했습니다.

“최근에 옷을 언제 샀나요?”
“일년에 라이브 공연에 몇 번이나 가나요?”

수험서들은 이런 문제에 대한 전략적 대비를 강조하며 ‘모범 답안’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여름 인턴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서 정장과 셔츠를 샀다.” “라이브는 서너 번 가는데 주로 락이나 힙합 공연이다.” 등의 문장들이 한국어와 영어로 정리해 주는 것입니다.

수험생들은 으레 모범답안을 외웁니다. 외우는 게 잘못은 아닙니다. 아니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문장들을 자신의 상황에 맞게 고쳐 외우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냥 주어진 대로 암기하는 경우가 꽤 되지요. 그러다 보니 있지도 않은 인턴, 사지도 않은 정장, 가지도 않은 여행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갑자기 없던 여동생이나 드론이 생기기도 합니다. 관심도 없던 주제에 ‘확고한 자기 의견’이 생겨버리기도 합니다. 본의 아니게 ‘사소한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거짓말로 피해 볼 사람이 없기에 별 문제는 아니라고 넘길 수 있습니다. 채점기관이 사설 탐정을 고용해서 답안을 쓴 수험자에게 정말 여동생이 있는가, 그집 옷장 안에 최근 구입한 정장이 진짜 있는가를 추적하지도 않겠죠.

하지만 이것은 효율성의 극대화가 지상최대의 과제가 된 사회의 사소한 비극입니다. 영어, 아니 영어점수를 위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인양 하는 풍경은 결코 멋지지 않습니다.

시험공부를 위해 문장을 암기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문장의 의미가 우리 삶과 어긋나는 거라면 어떨까요? 영어 일기를 쓰기 위해서는 영어표현을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일상과 관련 없는 영어일기용 문장을 줄줄 외우고, 이를 엮어서 일기를 써야 하는 상황이라면요? 누구도 이로 인해 큰 피해를 보지 않는다고 해서 괜찮은 걸까요?

어쩌면 이런 ‘사소한 비극’이 차곡 차곡 쌓여 공부를 갉아먹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지 않아도 평범한 우리의 삶을 더더욱 진부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요? 영어가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힐 수 있는 가능성이 아니라 세계를 획일화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계속)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집필중

정확은 부정확의 축적입니다

외국어를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 말을 아끼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여 정확성에 나름 자신이 생길 때까지 문장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함정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부정확하게 말하기’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정확에서 정확으로의 변화는 온 오프 스위치처럼 작동하지 않습니다. ‘부정확(不正確)에서 ‘부(不)’를 떼어내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요. 정확성의 발달은 부정확함에 대한 용인, 부정확하게 느껴지더라도 말하는 용기, 나아가 부족한 자신에 대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부정확함에 야유와 조롱를 보냅니다. ‘발음이 왜 저 모양이냐’는 눈빛이 도처에서 감지됩니다. 이는 우리 가 각자의 불완전함을 수용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는 목소리가 들려야 할 곳에 침묵을 가져오고, ‘부정확’에 대해 과도하게 마음을 쓰도록 만듭니다. 때로는 자괴감까지 따라옵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말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옹알이를 하고 서툰 발음으로 말소리를 내었으며 ‘엄마’를 정확히 부르는 데만도 수십 개월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모국어 체계에 길들여진 상태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상황이라면 더 어려울 수밖에 없죠.

“그 사람 발음 정말 이상한데 말은 다 통하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발음이 안좋아도 통하는 영어는 없습니다. 통하는 영어라면 발음이 좋은 것이죠.

‘네이티브와 같은 정확성’이라는 족쇄를 풀고 소통하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만이 좀더 정확해질 수 있습니다. 소통하는 사람만이 좀더 정확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처음부터 정확할 수 없고, 그래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기억하세요. 한걸음 더 나아가는 용기와 함께 말은 자라납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작성중

학부생을 위한 근거이론 이야기 (4)

Posted by on Oct 20, 2018 in 강의노트, 수업자료, 집필 | No Comments

 

학생들과 한국사회 영어교육의 핵심문제를 논의하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각자가 이미 문제를 모두 정의해놓은 상태로 수업에 임한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영어수업에 있어 가장 자주 언급되는 문제는 (1) 학습자들간의 실력차가 너무 크고 (2) 수능 등 획일화된 평가에 따라서 가르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두 이슈의 무게를 인정하는 것과, 이 두 렌즈를 통해서 모든 문제를 바라보려는 습속(habitus)을 고수하는 일은 전혀 다르다. 어떤 문제가 제기되더라도 실력차와 평가로 간단히 설명해버리는 태도는 게으름을 넘어 반지성적이다. ‘평가가 문제입니다’, ‘학생들이 차이가 나는데 어쩔 도리가 없어요’라는 말에는 현실의 단면을 그리는 솔직함이 배어있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학기 한 수업에서는 자신의 영어학습사를 기술한 언어학습 자서전(language learning autobiography)을 질적연구 방법론 중 하나인 근거이론(grounded theory)을 사용해서 분석해 보려고 한다. 최대한 선입견을 제거하고 데이터에 기반해서 자신의 영어학습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안에서 어떤 패턴이 드러나는지, 이를 통해 바라본 한국사회의 영어교육은 어떤 모습인지를 살피려는 것이다.

학부생들을 질적 연구자로 키우려는 것은 아니기에 방법론의 철학과 역사, 한계와 효용 등을 온전히 다루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사회과학 방법론의 한 축인 질적연구방법론, 그 중에서도 근거이론을 맛보면서 자신과 주변의 영어교육 현실에 대해 좀더 깊이있는 시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방법론을 일종의 휴리스틱으로 활용한달까. 이미 정의된 문제의 틀을 벗어 던지고, 데이터와 씨름하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

한 가지 우려가 되는 것은 학생들이 가져올 데이터의 성격이다. 자신의 생각, 어떤 면에서 편향(bias)이 고스란히 반영된 영어학습 자서전이라면 이에 대한 분석결과 또한 자신의 생각을 확증(confirm)하는 방향으로 나올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방법론은 데이터와 연구자를 뛰어넘지 못한다. 초심자에게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업에 마음이 설렌다. 실험이 끝나는 3주 후에도 이 기분을 유지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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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질적연구의 주요 분야 중 하나인 근거이론의 핵심을 3주 안에 전달하려고 하니 반세기를 발전해 온 방법론의 디테일이 적잖이 날아가 버린다.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지만 한 학기에 여러 질적연구 방법론을 몽땅 가르치는 개론수업의 경우보다는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다. 그러고 보면 양적이든 질적이든 방법론 수업의 대부분은 수박 겉핥기식이 되는 것 같다. 방법론을 구체적인 연구 주제들과 유기적으로 통합시키지 못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학부생을위한근거이론이야기

강사법 발의 단상

Posted by on Oct 18, 2018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지난 주, 국회에서 강사법(시간강사 처우개선법)이 발의되었다. 일부 사립대의 심상찮은 움직임은 강사법 통과에 대한 노골적인 반대로 읽힐 여지가 있다. 이들의 반기가 실행으로 옮겨질 경우 강사법이 통과되고도 강사들 사이의 격차가 커질 것이다. 빈자 중 일부는 조금 나은 빈자가 되고, 다수는 그 가진 것마저 몽땅 빼앗기는 상황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한편 교수노조와 민교협 정도를 제외하고는 강사법에 대해 지지를 보내는 교수들의 목소리를 듣기 힘들다. 교수들과 시간강사들의 삶이 겹치는 지점은 미미하기에 이런 ‘침묵’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적지 않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들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이 없듯 각자의 삶이 평행으로 달리는 상황에서 ‘평행우주’를 살아가는 것이다.

강사법의 통과 여부, 이후 원만한 실행 여부를 떠나 대학의 교육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긴 힘들 것이다. 문제의 핵심에는 시간강사들로 대표되는 비전임 교원의 열악한 처우와 지독한 불안정성이 있다. 한 학기가 시작되면 정신없이 달리다가 이내 방학과 다음 학기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삶, 매 학기마다 무작위로 주어지는 강의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게감 있는 연구나 깊은 통찰이 담긴 수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부정적 영향은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식상한 표현일지 모르나 분명한 사실이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가르치고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대학이 가진 지적, 사회적 기능의 몰락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특별한 재주가 없어 당분간 대학에서 밥을 먹길 원하는 입장에서 이번 법안의 처리와 여러 대학의 대응은 이 바닥에 대한 나의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이미 돈의 노예가 된 기관이라지만 돈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몇주 후 이 글을 돌아보면서 ‘별걸 다 기대했군’이라고 말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 예감이 틀리기를 간절히 빈다.)

일상에서 바꾸고 싶은 것들

Posted by on Oct 18, 2018 in 단상, 수업자료,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일상에서 바꾸고 싶은 것들”이라는 주제의 쪽글 과제에서 한국사회가, 대학생 세대의 아픔이 보인다. 이런 내용들이다.

1. 하루하루 과제와 알바로 쉴 틈이 없어 어서 빨리 졸업하고 싶다
2. 스트레스로 자꾸 술을 마시게 된다
3. 긴 통학으로 피곤하고 집 주변에 별다른 시설이 없어 불편하다
4. 취업 준비로 인해 인생짐이 너무 무겁다
5.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립다
6. 연애가 무상하다
7. 타인의 시선과 평가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싶다
8. 친구들과 경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9. 세상에 대한 걱정을 좀 덜하고 싶다
10. 새로운 물건을 사고 싶은데 여의치가 않다
11. 덜 먹어야되는데 자꾸만 먹게 된다.
12. 어둡고 부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고 싶다.

학생들의 고민을 읽으며 기성 세대가, 또 내가 참 무력하구나 싶다. 한 학기 충실한 수업을 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고민상담성’ 문단을 쓴 친구들에게 답장을 보내며 나를 돌아본다. 내 안에도 바꿔야 할 것들이 참 많구나.

몇몇 절절한 글을 읽고 만나는 학생들의 얼굴은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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