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공부란 무엇인가

문법이 맥락과 결합하면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Practice makes per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습하다가 보면 완벽하게 된다는 말이지요. 논란이 좀 있긴 하지만 자주 인용되는 “1만시간의 법칙”(어떤 분야이든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슬로건으로 나올 법한 표현입니다. 이 문장을 분석해 보면 매우 간단한 구조가 나옵니다. 바로 “A makes B”죠.

“A makes B”라는 구문은 매우 단순합니다. 하지만 Makes를 다른 동사로 살짝 바꾸거나 적절한 맥락과 결합시키면 풍부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이 초간단 문형을 가지고 만들어 본 문장들입니다.

1. Make-up makes money.

만약 어떤 사람이 메이크업 하는 법을 유튜브에 올려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해봅시다. 이때 “Make-up makes money.”라는 말을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여기에서 “make-up”은 화장 자체라기 보다는 ‘화장하는 법을 연구해서 만든 영상”을 함축한다고 할 수 있겠죠. 돈되는 일은 무엇이라도 make-up 자리에 넣을 수 있겠습니다. 메이크업을 하면서 삶의 기쁨을 얻게 되었다면 “Make-up makes joy.”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2. No-dress brings popularity.

어떤 사람이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누드시위를 했다고 합시다. 이때 많은 언론들이 그에 대해 주목하고 순식간에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게 되었다면 어떨까요? 이 상황을 “No-dress brings popularity.”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좋은 옷을 입고 다녀서 유명해질 수도 있지만 나체가 되어 유명해질 수도 있는 것이죠. 물론 그렇게 얻은 유명세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요.

3. Consistency makes jokes.

어떤 사람이 조크를 구사합니다. 처음에는 재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결코 굴하지 않고 계속 합니다. 끝까지 밀어부치니까 이제 사람들이 어떤 패턴을 접하면 “아 이거 OO식 유머네”라고 알아보게 됩니다. 나름 웃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기고요. 이런 상황이라면 “꾸준히 하다 보니 유머가 되네”라고 말할 수 있을 거고, “Consistency makes jokes.”라는 표현이 가능할 겁니다.

4. Expediency creates illusion.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는 무명 작가가 있습니다. 원고를 보내고 답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뭐라도 대꾸라도 해주면 좋을텐데 말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다릅니다. 원고를 보낸 지 24시간도 안되어 “원고를 잘 읽어보겠다”는 답장을 받습니다. 이렇게 빨리 답장이 오다니! 뭔가 잘될 것만 같습니다. 이 경우 빠른 처리(expediency) 덕에 잘될 것 같다는 환상(illusion)이 생길 수 있죠. 사실 이번 출판사의 편집자는 이메일 답장을 보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결벽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오늘은 <A makes B>라는 간단한 구문을 이용해서 몇 가지 예문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매우 단순한 구조이지만 여러 가지 상황과 결합하면 그에 맞는 메시지를 만들어 냅니다. 이것은 <A makes/creates B>라는 문형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어떤 문법 구조이건 적절한 어휘와 맥락을 만나면 굉장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정한 맥락을 만나면 거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문법구조를 떠올려 봅니다. 특정한 문법구조를 만나면 이와 잘 어울리는 문맥을 생각해 봅니다. 이 과정 속에서 암기의 대상이 되는 문법이 아니라 삶을 포착하고 표현해 내는 문법을 익힙니다.

이처럼 언어의 구조와 삶의 맥락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 문법 공부입니다. 앞으로 문법을 공부할 때마다 이점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영어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 (증보판)

 

러시아의 발달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의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을 기반으로 한 논의는 수학과 과학과의 오개념(misconception; 잘못된 개념) 연구와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영어과 교수학습의 경우 과목의 특성상 ‘오개념’에 대한 논의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영어는 개념의 체계를 중시하는 수학이나 과학과 같은 과목과 다르게 ‘도구과목’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아 오개념을 생각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은 말로 배우면 되지 거기에서 무슨 개념을 따져야 하느냐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는 것이죠.

하지만, 도구적 성격이 강하다고 해서 오개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살펴보면 영어라는 언어에 대한 잘못된 개념, 영어의 사회적 성격에 대한 잘못된 지식은 적지 않습니다. 영어에 대한 잘못된 상식 몇 가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영어에는 존대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입니다. 존대가 없다기 보다는 한국어와 같은 존대법이 없다고 해야 옳습니다.

한국어에는 높임말을 위한 여러 장치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어휘의 구별(밥/진지, 나이/연세, 자다/주무시다)과 선어말어미 ‘-시’(하다/하-시-다, 가다/가-시-다)입니다. 말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나 청자와의 관계에 따라 적절한 어휘와 어미를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어에는 이러한 어휘구분이 없습니다. 밥은 누가 먹어도 ‘rice’이고, 수면은 누가 취해도 ‘sleep’입니다. 언어의 특성상 한국어 ‘-시’에 해당하는 어미도 없습니다. 한국어와 같은 존대 시스템 (systems of honorific speech; 넓은 영역의 존대를 구현하는 형태소 및 문법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어에서도 예절을 갖추고 존대를 표현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가족의 사망시 합장을 위해 이미 있던 묘지에서 시신을 꺼내는 일은 ‘exhume’이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dig up’이나 ‘dig out’이라고 쓰면 의미는 통하지만 상황에 따라 굉장히 무례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는 동사 ‘dig’보다는 ‘exhume’을 쓰는 것이 적절합니다.

나아가 한 가지 의미도 여러 가지 문장으로 구체화될 수 있고, 이들은 각각 다른 수준의 격식과 공손함을 표현합니다. 다음 예들을 보시죠.

Shut up! (닥쳐!)
Be quiet. (조용히 해.)
Please be quiet. (조용히 좀 해주세요.)
Can you be quiet? (조용해 주실 수 있나요?)
Could you please be quiet? (혹시 조용히 해주실 수 있을까요?)
Your quietness is requested. (조용히 해주시길 부탁합니다.)
We would like to request your silence. (조용히 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Your silence is cordially requested. (조용히 해주시길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

이들 문장은 기본적으로 조용히 해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하지만 각각의 느낌은 천양지차입니다. 따라서 상황과 청자에 따라 세심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Could you be quiet please?” 할 상황에서 “Shut up.”하거나, ‘Be quiet.’로 충분한 상황에서 ‘Your silence is cordially requested.’라고 쓰면 당황스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영어에 한국어와 동일한 존대법은 존재하지 않지만 다양한 문법구조와 조동사 등을 사용하여 예의와 존대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두 번째, 영어는 미국의 공식언어라는 ‘상식’입니다.
미국의 공식어(official language)는 당연히 영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미국 연방수준에서의 공식어는 없습니다. 국가가 영어를 쓰라 마라 하지 않는 것이지요. 다만 주정부 수준에서 영어만을 공식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흔히 ‘English-only’라고 불리는 정책입니다.

현재 50개 중 절반이 조금 넘는 주가 영어만을 공식어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와이가 영어와 하와이어 모두를 공식어로 인정하는 것과 다른 방향을 취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주정부의 의지, 영어와 관련된 법원 판례, 해당 정책 조문 해석의 문제, 개별 교육기관의 대응 등에 따라 ‘English-only’ 정책은 사뭇 다른 파급력과 강제력을 지닙니다. 이민자가 세운 나라에서 하나의 언어만을 강제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도 논리적이지도 않기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현상입니다.

세 번째는 네이티브 스피커는 문법적으로나 어휘적으로 완벽하다는 생각입니다.

“주변에 네이티브 없어? 물어보면 되잖아.”

알쏭달쏭한 문법이나 어휘에 대해 고민할 때 흔히 듣게 되는 말입니다. 하지만 네이티브라고 해서 영어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을까요?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You’re’와 ‘Your’를, ‘it’s’와 ‘its’를 구분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유머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절대 한국어 문법과 어휘 안틀린다”처럼 황당한 말은 없습니다. 한글 띄어쓰기를 완벽하게 해내는 한국인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국어를 평생 써온 사람들도 한국어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가지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영어 원어민 화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어 네이티브의 완벽함’이라는 생각은 한국인 모두가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는 생각만큼이나 허황된 것입니다.

네 번째는 영어 읽기를 늘리기 위해서는 무조건 영어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영어 읽기에도 배경지식(background knowledge)이 동원됩니다. 한국어 독서로 폭넓은 배경지식을 갖추었다면, 영어 읽기에 도움이 되지요. 예를 들어 미국 정치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미 대선 기사를 영어로 읽는다고 바로 이해가 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현대 미국정치를 전공했다면 영어로 미국의 대선 기사를 읽을 때 훨씬 수월할 겁니다. 읽기과정에는 단지 언어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지식, 해당 지문의 내용에 대한 지식이 동원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섯째, 무조건 영어와의 접촉을 것이 가장 효율적인 영어학습 방법이라는 생각입니다.

입력을 늘린다고 무조건 영어가 느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어로 방송을 열심히 본다고 한국어달인이 되진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일례로 쓰기 공부를 위해서는 읽기와 쓰기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무작정 읽는다고 쓰기가 자동으로 늘진 않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듣기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하루 종일 영어를 듣는 것이 최선은 아닙니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 듣기 영역과 수준을 정하고 이에 맞추어 체계적으로 공략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조건’ ‘많이’ 하다 보면 ‘티끌’이 ‘태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티끌모아 태산” 전략은 티끌을 시간이 무한정이라는 조건 하에서만 유효합니다. “영어, 무조건 하면 된다”는 말도 옳을 수 있습니다. 영어를 공부할 시간이 무한정 주어지고, 의미없는 일조차 끝없이 반복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만 말입니다. ‘무조건’이나 ‘무작정’이라는 말을 ‘열심히’라는 뜻 이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곤란한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흑인영어는 ‘표준영어’에 비해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고정관념입니다.

한국에서 교육의 표준이 되는 영어와 흑인영어는 발음, 어휘, 문법 등 여러 측면에서 다릅니다. 그렇기에 흑인들의 영어를 들으면 어색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일부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상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름이 틀림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흑인들의 영어는 자체적인 논리와 표준이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흑인영어는 이중부정(double negative) 구조가 있습니다. “I ain’t have no problem. (난 아무 문제가 없다)”나 “You don’t know nothing. (너는 아무 것도 모른다)” 같은 경우인데, 교실에서는 ‘틀리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흑인영어는 이중부정을 체계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것은 ‘틀리다’기 보다는 부정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특정한 의미를 이중으로 표현하는 것은 소위 ‘표준영어’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I’m doing my homework now.”라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여기에서 현재진행(be+ing)은 ‘지금’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now’를 또 쓸까요? 현재를 이중으로 표현하기에 틀렸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체계가 존재할 뿐이죠.

사실 이중부정은 포르투갈어나 스페인어 등 세계의 여러 언어에서 발견됩니다. 미국 내에서도 흑인영어 뿐 아니라 미국의 남부방언에서 종종 사용되죠. 놀랍게도 영문학의 최고봉이라 칭송받는 셰익스피어도 이중부정을 사용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이중부정이 널리 사용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글의 날, 글의 결

좋은 글은
날과 결이 살아있다.

날을 갈다가
결이 사라져 버리거나
결을 살리려다
아무 것도 자를 수 없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날선 글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결없이 날만 선 글이 잘못된 것.

이리 보면
좋은 글을 쓰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 뭉툭하고 평평한 글로 괴로운 아침에

#삶을위한리터러시

언어학습 자서전이 말해주는 것

Posted by on Dec 30, 2018 in 단상, 삶을위한영어공부, 영어, 집필 | No Comments

다섯 해 째 대학생들의 ‘영어학습 자서전’을 읽고 있습니다. 영어학습 자서전이란 평생 자신이 경험한 영어학습의 역사를 1인칭 시점으로 정리한 글을 말합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영어학습 연대기를 꼼꼼히 작성하면서 영어공부를 어떻게 시작했는지, 영어공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였는지, 기억에 남는 교재는 무엇이었는지, 어떤 공부방법을 주로 사용했는지, 영어학습의 위기 혹은 터닝포인트는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해 반추합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영어학습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누적 백 여 명이 빼곡히 적어낸 언어학습 자서전 속에서 한국사회의 영어교육에 관여하고 있는 여러 주체들을 만나게 됩니다. 학부모, 영어유치원 선생님, 공교육 교사, 학습지 교사, 학원 강사, 유학 및 어학연수 업체 관계자, 과외와 재수학원 선생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한국의 영어교육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영어교육에 대한 평가와 관계 없이 참으로 많은 주체들의 경쟁과 협업에 기반해 영어공부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어 보입니다.

‘영어공부에서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현재 나의 영어실력’. 개별 학생들이 걸어온 공부의 궤적은 조금씩 달랐지만 영어학습 자서전을 관통하는 주제는 이 문구로 요약할 수 있었습니다. 평생 영어공부의 결과라는 관점에서 현재 자신의 영어실력을 평가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던 것입니다. 읽기는 꽤 잘 하지만 쓰기는 못한다, 말하기는 다른 영역에 비해 떨어진다, 전반적으로 나의 영어실력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인풋(영어에의 노출) 부족인 것 같다 등의 서술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와 같은 결과에서 두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영어공부의 과정에서 감동과즐거움의 순간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서술은 영어와의 ‘사투’를 그리고 있었고, 중학교 이후의 영어학습은 철저히 입시를 염두에 둔 준비과정으로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당연히 영어를 통해 세계를 만나는 설렘과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영어와의 전투에서 승리 혹은 실패한 이야기가 영어학습사의 중심 주제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는 집단에 속한 학생들조차 자신의 실력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실력을 가졌음에도 영어실력의 부족함을 강조하는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강점보다는 약점을 드러내는 서술이, 이룬 것보다는 앞으로 성취해야 할 목표에 대한 이야기가 두드러졌지요. 자신이 설정한 영어학습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슬픔과 좌절을 묘사한 대목도 적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영어가 갖는 위상과 권력을 생각해 볼 때, 영어학습의 역사를 돌아보는 글이 성공과 실패, 투자대비 성과, 원하는 수준에의 도달 혹은 미달 등으로 점철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흥미와 재미를 염두에 두고 시작하지만 점차 성적과 시험을 위한 영어공부가 되는 현실에서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는 피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누구나 다 하는’ 영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는 쓰라림 또한 떨쳐내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세상은 ‘왜 여태껏 그 실력밖에 안되느냐’고 계속 속삭이고 있지요.

“삶이 영어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영어에 끌려가는 삶.
한국사회의 영어공부는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삶을 위한 영어공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기 보다는 힘겹게 올라야 할 사다리가 되어버린 영어, 삶을 풍요롭게 하기 보다는 불안하고 팍팍하게 만들고 있는 영어에 대해 고민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경험, 재미, 만남, 감동, 깨달음, 상상으로 가득한 영어공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했습니다. 영어를 정복하기 위해 처절히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영어와 함께 놀고, 떠들고, 감동받고, 박장대소하고, 농담을 주고받는 법을 궁리했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 이 질문들에 천착하면서 한국사회의 영어공부를 관통하는 세 가지 주요 현상에 대해 더욱 깊이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경험이 아니라 입력(input)을 우선시하는 영어공부.

학습의 주체가 아니라 네이티브와의 비교 대상이 되어버린 자신

공부의 기쁨을 쌓아 성장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욕심

(계속)

#삶을위한영어공부

저녁 상념

Posted by on Dec 27, 2018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딱 입에 풀칠할 만큼 일이 들어오고 서럽게 외롭지 않을 만큼 사람들이 찾아주었으니 그것으로 족한 한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저녁. 미래에 대한 불안이 돌아봄의 따스함을 해칠 이유 따위는 없는 것. 단 하나, 세상이 좀 덜 가혹해지길 바라는 마음. 가혹함에 맞서는 우리가 좀더 강해졌으면 하는 바람.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미리미리 일하는 나

Posted by on Dec 26, 2018 in 단상, 일상, 집필 | No Comments

나: 글써야 하는데 힘드네.
짝: (차분) 그냥 내일 쓰는 걸로 해.
나: … …
짝: 그러다가 글쓸 생각이 나면 ‘음… 심심한데 글이나 써볼까?’ 하는 거지.
나: 그런 방법이…
짝: 그럼 내일 할 일을 오늘 하는 거잖아.
나: 오 미리미리 일하는 기적이 벌어지는 거군!
짝: 그렇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내일 할 일을 오늘 조금 당겨 한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것만 같은
‘미리미리 해놓기’가 가능해진다.

해야만 해서 하는 게 아니고
안해도 되는데 해주는 것!

게다가
전력투구가 아니라
‘음 심심한데 일이나 해볼까?’라며
쉬엄쉬엄 설렁설렁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놀다가
내일 일이나 당겨서 해볼까 싶다.

이렇게
미리미리 일하는 내가 되었다.

참 쉽죠, 잉?

방학때 애용해야겠다.

가장 긴 찰나

Posted by on Dec 22, 2018 in 단상, 집필 | No Comments

많은 인연들이 있지만 그저 스쳐갑니다. 우연히 마주본 얼굴, 이 사람도 나만큼 아프다는 걸 단박에 깨닫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알아보는 그 순간을 사랑합니다. 당신에게 아무 것도 아니었던 내가 함께 아파하는 존재로 변화하는 순간. 당신이 아름답기만한 꽃이었다가 상처입은 고목으로 내 고통의 뿌리에 닿는 순간. 그렇게 같은 대지에 뿌리박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세상 가장 긴 찰나를 기억합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자유로운 죄수

Posted by on Dec 20, 2018 in 단상, 일상, 집필 | No Comments

궁극의 판옵티콘은 계량화, 서열화, 표준화이다.

이들은 정치권력을 뛰어넘는 수준에서 작동하며, 학급 석차, 모의고사 점수, 결혼정보회사의 등급산정, 지원가능대학 차트, 친구 수와 좋아요에 대한 집착, ‘격조’있는 식사 자리, 결혼 적령기, 최소한의 혼수, 출신학교, 읽은 책의 수, 장애인/비장애인의 엄격한 구분 등으로 우리 삶에 침투해 있다.

꼼꼼하고도 촘촘하게 모두를 줄세우는 판옵티콘에 대한 무지는 우리를 ‘자유로운 죄수’로 만든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간절히 원하면

Posted by on Dec 19, 2018 in 단상, 일상, 집필 | No Comments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 코엘료의 말이었던가. 이 말은 너무 자주 ‘충분히 간절하지 못한’ 이들이 실패한 원인을 지적하기 위해 쓰인다. 우주를 움직일만한 간절함에 미치지 못한 이들을 비난하는 기제가 되는 것이다. “정성이 부족했어. 노력이 부족했어. 네 마음이 부족했어.” 아니다. 간절함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이 사회가, 이 우주가 무심했던, 아니 가혹했던 것이다. 세상 누구보다 간절했으나 세상에서 가장 아프게 실패한 이들이 우리 곁에 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리터러시 vs. 동영상/음성

Posted by on Dec 19, 2018 in 단상, 삶을위한영어공부, 집필 | No Comments

문자기반에서 동영상 및 음성기반 소통으로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많은 이들은 이 추세를 커뮤니케이션 채널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 하지만 개인과 미디어와의 거리를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간단히 말해 문자보다는 음성 혹은 영상이 몸에 가깝다. 전통적 리터러시를 기반으로 한 소통이 생각을 공적 문자체계에 얹어 놓는다면, 오디오비디오 기반 소통은 생각을 ‘몸에 얹어’ 세상에 내보낸다. 글은 저자의 특징을 넌지시 드러내지만 음성과 영상은 저자 자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창작자와 미디어의 거리가 가까와지고, 미디어와 소비자의 거리가 가까와진다. 그 결과 창작자와 독자의 거리는 무척이나 가까와진다. 이렇게 서로에게 한걸음 다가선 미디어 생태계가 이 사회와 각자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불분명하다.

#삶을위한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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