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 희망은 있을까

거창하게 희망이라고 말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삶을 위한 영어공부’라는 테마로
자신을 성장시키고
타인과 소통하며
함께 연대해 나가자는 제안을 할 때
많은 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들어주었다.

이제와는 다른 공부를 다짐하며
마음을 담은 서평을 건네주었다

대학에서
도서관에서
독서공동체에서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자칫 지루하고 원칙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어쩌면 순진하고 이상적이라고 치부될 수 있는
한국사회 영어공부에 대한 성찰의 이야기들을
깊은 공감으로 맞아 주었다.

수십 년 영어교육과 응용언어학을 하며
내 생각이 ‘주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러기에는
우리는 이미/항상
삶을 갈아넣어야만 유지되는 구조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 구조에서
이 사회는 영어를
숫자로 증명되는 투자대비수익으로 치환하려 든다.
그것을 온전히 벗어날 길은 없다.

하지만
언제나 ‘변방’이 있고
아슬아슬한 삶의 경계 위에서
옹기종기 모여 함께 눈빛을 나누는 이들이 있고
덜 휩쓸리고, 덜 경쟁하며, 덜 증오하려는 이들이 있다.

영어로 인해
타인을 무시하지 않고
자신을 멸시하지 않으며
줄세움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는 영어를 슬퍼하는,
다른 공부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맑은 눈의 벗들을 만나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음이 기뻤던 오늘.

그리 거창하지 않아도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소소한 날들.

고통을 견디게 해주는
따스한 눈빛들.

고마운 얼굴들이 스친다.

아재개그

Posted by on Apr 30, 2019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아재개그’의 창궐은 개그력의 증가라기 보다는 자제력의 감소다. 굳이 정의하자면 개그를 치고 싶다는 순간의 유혹에 대한 굴복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함께 굴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꽃이 필 수도 있으니 굴복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결국 아재개그의 성공여부는 함께 굴복해 주는(?) 사람들의 고귀한 희생에 달려있다 할 것이다. #아재개그를참고다른거올림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지위와 사랑

Posted by on Apr 29, 2019 in 단상, 일상, 집필 | No Comments

한 사람의 가치는 지위가 아니라, 그 지위를 통해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위는 축적된 과거이고 사랑은 바로 여기 당장 필요한 현재이자 가능성으로 열린 미래니까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위를 사랑하는 사람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을 대번에 알아봅니다. 이 두 가지를 혼동하는 사람들은 대개 권력을 누리고 있거나 권력을 위한 지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죠. 자리는 사랑의 능能을 담는 그릇일 뿐입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페이스북 포스팅 머피의 법칙

Posted by on Apr 27, 2019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 No Comments

페이스북 포스팅 머피의 법칙: 필자는 유일한 독자

1. 공유버튼을 누르는 순간 오타가 보인다.

2. 오타 수정을 위해 편집버튼을 누르면 더 고쳐야 할 표현들이 추가로 발견된다.

3. 모두 다 고치고 재공유를 할 때쯤이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거나 포스트를 지나쳐간 상황이다.

자 이제 그나마 마음에 드는 포스트의 유일한 독자가 되실 시간입니다. 원래 소중한 건 오롯이 혼자 간직하는 법이잖아요.

독서 vs. 페이스북 읽기

Posted by on Apr 27, 2019 in Uncategorized | No Comments

언젠가 “그런 페이스북 포스팅 모아놓은 거 같은 책을 누가 읽겠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책보다 페이스북 포스팅을 더 열심히 읽는다. 이제 책을 집어들고 “이 사람 3년치 타임라인을 독파해 볼까”라는 마음으로 읽어나간다면 책이 술술 읽힐지도 모른다. 중간 중간 좋아요 표시도 하고 화나요나 사랑해요 이모티콘도 그리고 답글도 써넣다 보면 막혔던 독서가 쉬이 풀릴지도 모르는 것이다. 한 가지, 무슨 일이 있어도 필자에게 손은 흔들지 말자. 그래봐야 무시당할 테니까. (먼산)

단단한 영어공부는 실용서?

결과적으로 보면 실용서는 아니지만 무척 실용적이었다.”

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없는 것은 주변 분들을 중심으로 평이 나오기 때문인 것 같다. 안면이 있거나 한다리 걸쳐 아는 사람이면 ‘대놓고’ 뭐라 하기 힘들지 않나. 그 와중에서 가끔 책에 실망하시는 분들의 심정은 “그래서 어찌하라는 건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맞는 말인 건 알겠는데 그래서 지금 삶에서 당면한 영어에 대한 압박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반응은 예상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영어공부에 지름길이나 축지법은 없다는 것, 그러므로 자신이 공부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단단한 영어공부>의 핵심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뭔가 해보려고 덤볐는데 ‘그런 건 없다’니 이 얼마나 실망스런 이야기인가.

그 와중에 ‘실용서는 아니지만 무척 실용적’이라고 평해 주시는 분이 있어 감사한 마음이다. 영어공부에 있어 ‘실용’이 갖는 의미를 재정의하고, 실용을 위해 쉼없이 달려야 하는 사회에 쉼표 하나를 찍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읽어주신 것이다.

“영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책. 발음이 유창하지 않다는 이유로, 영어 단어 스펠링을 하나 틀렸다는 이유로 체벌을 받으며 영어를 배운 세대에게는 파격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영어를 학습하는 도구를 찾는데 급급하기 보다 영어 공부에 대한 고찰이 먼저 필요할 것 같다. 결과적으로 보면 실용서는 아니지만 무척 실용적이았다.”

덧. 그럼에도 나의 쪼잔한 마음은 ‘책에 있는 대로 공부는 해 보시고 하시는 말씀인가요?’라고 항변하고 있다. 인생이 어찌될지 모르지만, 그럴 상황이 온다면 ‘삶을 위한 영어공부’ 실전 그룹을 만들어 즐겁게 영어공부를 해보고 싶기도 하다.

#단단한영어공부 #삶을위한영어공부

양보절, 그 양보 맞습니다

Posted by on Apr 26, 2019 in 단상, 수업자료, 영어, 집필 | No Comments

오래 전 한 영어 강사가 양보절을 설명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 예시를 잘 보여주더니 하필 마지막에 “그런데 이거 ‘니가 양보해’의 그 ‘양보’ 아닙니다”라는 말을 덧붙이더군요. 최근 비슷한 설명을 다시 한 번 듣게 되어서 짧게 글을 남깁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양보절’의 ‘양보’는, ‘이번엔 네가 양보해’의 그 양보가 맞습니다. ^^

1. 우선 다음 사전에서 ‘양보’를 찾으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양보 [讓步] 1.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여 자기의 주장이나 생각을 굽히고 그의 의견을 좇음. 2. 다른 사람에게 길이나 자리, 물건 따위를 내주고 물러남.

2. 한편 양보절을 영어로 표현하면 concessive clause이고 그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온라인 맥밀란 사전)

a subordinate clause that begins with a conjunction such as ‘although’, ‘while’, or ‘whereas’, and makes a statement that is unexpected in some way, or contrasts with information in another clause.

여기에서 concessive의 명사형에 해당하는 단어는 concession이고, 이의 뜻은 ‘양보, 인정, 양도’ 정도가 됩니다. 즉, 그 양보가 그 양보인 것이죠.

3. 적지 않은 학생들이 이 용어로 혼란을 겪습니다. 이것은 일상생활의 ‘양보’와 문법의 ‘양보’를유기적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비고츠키가 말한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 사이의 차이와도 연관이 됩니다.

4. 이를 고려하여 ‘양보절’을 간단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1) Though, although, even if, whereas와 같은 접속사들은 ‘양보’를 나타냅니다.

(2) 이렇게 양보를 나타내는 말이 붙는 문장은 영어로 ‘conceded’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3) 예를 들어 Although the politician was very selfish, he was willing to help the victims.를 봅시다. “the politician was very selfish” 앞에 Although가 붙었으니, 이 문장의 내용은 인정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인정된 후 다음에 나오는 절에 (비유를 하자면) ‘양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는 점입니다. 위의 경우 양보의 대상은 주절인 “he was willing to help the victims.”죠.

(4) 이를 해석하면 ‘그 정치인은 비록 매우 이기적이었지만, 희생자를 기꺼이 도왔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는 매우 이기적인 인간이었다’는 내용 바로 앞에 ‘들러붙은’ Although 덕에 ‘희생자를 기꺼이 도왔다’는 문장에 양보를 해야 하고, 그 결과 주절의 내용이 훨씬 더 큰 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5) 이렇게 하위절을 ‘양보’하면, 의미 강도(intensity)의 차이가 더 크게 납니다. 그래서 대조의 의미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5. 결론적으로 양보절은 특정한 절을 하위절로 만들면서 주절의 내용과 반대(the opposite)되거나 예상치 못한(the unexpected) 것으로 개념화합니다. 따라서 “He is not shy. He is very quiet.”와 같이 두 개의 독립적인 문장에서는 이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무게감 있는 것인지 명시적으로 알 수 없지만, “He is not shy although he is very quiet.”라고 하면 “매우 조용하지만 수줍어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수줍어하지 않는다는 게 문장의 주요 포인트가 되는 것입니다.

덧. 결국 한국어 ‘양보’와 영어 ‘concession’이 완전히 똑같진 않지만 또 상당히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파생하는 것 같습니다. 추측컨대 일본을 통해 문법용어가 들어오면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싶고요.

#단단한영어공부 #예전글업데이트

일을 줄이자. 삶을 되찾자.

Posted by on Apr 25, 2019 in 단상, 일상, 집필 | No Comments

일을 효율적으로, 더 많이 해내는 데 대한 이야기는 많은데 사회 전체가 일을 줄여야 할 필요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사실 일을 줄이면 잘할 수 있을 확률이 엄청나게 높아지는데.

교육개혁도 마찬가지다. 더 많이 측정하고, 더 많이 평가하고, 더 ‘잘’ 줄세우면 학력수준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학생과 교사에게 그 어떤 조건도 없는 시간을 주면 문제의 상당부분은 자연스레 풀린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더 빡세게 돌리자’는 마인드는 여전히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대개의 경우 복잡한 메커니즘 통해 개혁하려 하기 보다는 성원들에게 시공간을 돌려주는 게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학습과 발달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덧. 이 글의 모티프가 된 소로의 말 둘. (from 기쁨샘)

“일의 노예가 되는 것은 옳지 않다. 인간의 육신은 곧 토양으로 섞여 들어가 퇴비로 변한다.”

“우리가 잠시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 가능하겠는가?”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스쳐 지나가는

Posted by on Apr 24, 2019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신대방동 살 때이니 꽤 오래 전 일이다.

퇴근할 때 늘 마주치는 사람이 있었다. 서너 살 위쯤 되어 보이는, 변함없이 셔츠와 청바지를 사랑하는, 뿔테 안경이 제법 잘 어울리는 남성이었다.

주로 지하철역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마주쳤지만 공원 산책 중에도 여러 번을 스쳤다. 그는 늘 같은 자세로 날렵하게 생긴 자전거를 끌고 있었고 가끔은 담배를 피웠다.

그렇게 마주치길 어언 4-5년.

그날은 우연히도 집앞 독서실에서 그와 마주쳤다. 자전거를 세우고 공부하러 들어가려는 것 같았다. 반가운 마음에 용기를 내었다.

“안녕하세요? 이 독서실 다니시나 봐요.”
“누구시죠?”
“아… 저 이 동네에서 자주 뵈었는데요…”
“저는 뵌 기억이 전혀 없는데…”
“…..”

어색한 침묵과 함께 나는 그를 만난 적이 없는 것이 되었다. 나는 그를 수없이 스쳐갔지만 그는 나를 단 한번도 스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와 말을 섞는 경험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가끔은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숱한 사람들의 관계가 그 남성과 나의 관계 아닐까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또 나에게 그런 느낌을 갖고 있을 것이다.

허무하다거나 부질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말 한번 섞을 만한 ‘임계치’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만남이란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생각해 본다.

기능어의 분포

언어에서 빈도수 최상위를 차지하는 단어들은 대개 기능어(function words)이다. 영어의 경우 대표적인 기능어로는 관사, 접속사, 대명사, 조동사, 전치사 등이 있다. 참고로 초기 영국 말뭉치 언어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British National Corpus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the, of, and, to, a, in, that, it, is, was 순이다. (좀더 세심한 데이터 작업을 거치면 is와 was가 다른 be동사형과 함께 하나로 묶여야 하지만 그 경우에도 10위는 대명사인 “I” 몫이다.)

대규모 말뭉치의 경우 하위 말뭉치의 장르에 따라 이들의 분포가 사뭇 달라진다. 일례로 롱맨 코퍼스의 경우 대화문 말뭉치에서는 대명사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학술적인 글에서는 전치사와 관사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이러한 차이는 학술적인 글과 면대면 대화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얼굴을 맞대고 하는 대화에서는 많은 정보들이 공유된 채 대화가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명사가 계속 새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특정한 대상을 대명사로 지칭하는 빈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학술적인 글에서는 ‘글’의 특성상 정보가 공유된 채로 담화가 흘러가지 않는다.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기에 명사가 자주 사용되는 것이다. 아울러 많은 정보들이 명사구로 표현된다. 따라서 명사와 짝을 이루는 관사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나아가 전치사가 포함된 복합명사구(e.g. the adaptation of the method within a new context)의 쓰임이 면대면 대화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따라서 전치사의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참고로 wordcount.org를 기준으로 가장 빈도가 높은 일반명사는 time(66위)이고 그 다음은 people (81위)이다. <어머니와 나>에서도 언급했듯 빈도수만으로 볼 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과 사람인 셈인데, 그저 우연으로 보기에는 가볍지 않은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데이터와영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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