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 시대의 리터러시 교육

Posted by on Sep 30, 2019 in 삶을위한리터러시, 집필 | No Comments

소셜미디어 시대의 리터러시 교육은 분명 ‘전과시대’와는 달라야 한다. 글을 매개로 하는 관계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이브하게 ‘다양성의 인정과 공존’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담론의 지형은 이미 충분히 파편화되었으며 혐오의 지뢰밭은 도처에 깔려있다. 다만 지혜롭게 자신을 지키면서도 타인과 다른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 법을 궁리하는 글쓰기에 대해 함께 고민할 때라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 타인을 비판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무너뜨리는 행태가 모여 사회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비판의 칼은 늘 양날의 검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이들이 중심에 서는 일이 많아졌다. 나만의 어리석은 기우이길 바라지만 가끔 엄습하는 두려움을 떨쳐내기 힘들다. ‘대화의 불가능성’을 고민하는 단계는 희망이 있다. 하지만 ‘대화의 무용성’이 긍정되는 단계는 담론의 아포클립스에 다름 아니다. #삶을위한리터러시

문제와 함께 살아가기

Posted by on Sep 30, 2019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내게 성숙은 문제해결능력의 발달이 아니라 문제와 같이 살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을 말한다. 문제해결능력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의지와 체념은 상극의 개념이지만, 문제와 벗되어 살아가기로 한 삶에서는 체념과 의지가 사이좋게 융합된, 슬픔을 엮어가는 데서 나오는 힘 같은 것이 존재한다. 어쩌면 잘 산다는 것은 그렇게 체념과 의지가 변증적으로 통일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더더욱 체념적 의지, 의지적 체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문제는 이해(understand)되거나 우회(detour)될 뿐 용해(solve)되지 않는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영어학습을 주제로 한 인문독서 아카데미 강연을 통해 배우고 느낀 점들

5주간의 한빛도서관 강연을 마쳤습니다. 총 10시간 강의였으니 대학강의와 논문쓰기 특강 외에 가장 긴 시간을 가르친 셈이네요. 5주간의 경험에서 얻은 바를 간단히 정리해 봅니다.

1. 수강생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또 많은 것들에 대해 궁금해하고 계셨습니다.

‘영어교육에 관해서라면 전국민이 전문가’라고 하지만 이 말이 사실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들 알고 있는 것들은 많지만 영어교육학이나 응용언어학의 개념을 꿰뚫고 있는 분들은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많은 것을 안다고 해서 확신을 가지고 영어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려는 분들이 적지 않아 기쁜 마음으로 지식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2. 가족 내에서의 영어교육에 대한 책임은 절대적으로 어머니들에게 부과됩니다.

마흔 분의 수강생 중 서른 여덟 분이 여성이었고, 그중 대부분은 초등학교 저학년 전후의 자녀를 둔 30-40대 어머니들이었습니다. 질의응답을 하다 보니 영어교육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을 어머니가 맡고 계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다른 과목의 공부도 마찬가지겠지만 양육과 교육에서 어머니들이 담당하는 부분이 매우 큰데 이것이 자칫 ‘책임 스트레스’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3. 중고교에서의 영어교육 열기가 식었다고 하지만 초등과 미취학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영어교육은 여전히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파주지역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초등학교 전후의 영어교육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한빛도서관은 어린이 영어도서 특화 도서관이기도 한데, 여기에 정기적으로 들르시는 부모님들이 꽤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번 오시면 동화나 리더스 시리즈 등을 30-40권씩 빌려간다고 하시더군요. 나중에 수학이나 과학 쪽에 더 신경을 쓸지는 모르지만 초등학교 수준에서는 영어교육에 대한 수요가 아직 큰 것으로 보입니다.

4. ‘엄마표 영어’의 힘은 막강합니다. 하지만 몇몇 어머니들은 ‘비슷비슷한’ 엄마표 영어 서적보다 조금 더 깊은 지식을 쌓길 원하고 있습니다. (‘비슷비슷한’은 두 어머니의 워딩을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소위 ‘엄마표 영어’ 강연을 주기적으로 들었다는 분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엄마표 영어를 접하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다만 그런 강연들에서 전달되는 메시지가 천편일률적이라고 느끼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엄마표 영어가 어머니들 사이에서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잡았다는 것, 나아가 몇몇 분들은 조금 더 깊은 공부를 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채워줄 강연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수요가 크진 않지만 분명 목마름이 있는 것이죠.

5.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학부모의 의식변화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5주간 강의와 질의응답을 통해 우리 사회의 영어교육 지형이 바뀌기 위해서는 학부모의 의식변화가 절실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최선을 다해 자녀의 영어교육을 지원하면서도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불투명한 미래, 주변과의 비교 등이 불안의 주요 원인이더군요.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입시와 내신 등의 제도적 변화와 함께 영어공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영어를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어공부를 공부하는 것의 중요성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6. ‘삶을 위한 영어공부’ 실천 프로그램의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단단한 영어공부>를 내고 나서 단순히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영어공부 프로그램을 기획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한 친구와 함께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보자는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고요. 이번 경험에서 배운 바를 앞으로의 기획에 적용해 보려고 합니다. 작고 소소하지만 깊이있고 단단한 영어공부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전에 없었던 학습 프로그램을 기획해 볼 생각에 설레네요.

7. (대놓고 광고입니다.) 한번 하고 말기에는 10시간 강의 준비한 게 아깝다는 생각입니다.

그간 집필한 것과 강의한 바를 종합해서 5강짜리 강의를 기획하고 실행했습니다. 한 번 하고 말기에는 조금 아쉽고 또 아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전국영어교사모임 강연에서는 ‘교사버전’으로 각색을 해볼 예정이고요. 이후 다른 곳에서 불러주시면 또 열심히 준비해 볼 생각입니다. 공식적인 강의피드백은 없었지만 여러 분들이 많이 배우고 느꼈다고 말씀해 주셨네요.

비슷한 주제로 강의를 원하시는 분은 메시지 주십시오. 일정을 맞춰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아래 한빛도서관 강연 내용을 옮겨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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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독서아카데미] 단단한 영어공부 – 파주시 한빛도서관

한빛도서관의 <인문독서 아카데미> 강연은 5주, 총 10시간에 걸쳐 진행됩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았습니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뼈대로 하되, 그간 진행해 온 강의 내용을 보강하여 진행할 예정입니다.

강의내용: 영어공부, 왜 하는가. 내 삶을 위한 외국어 학습이란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영어교육을 되돌아보고 우리 삶을 단단하게 하는 영어공부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

1강- 영어 왜 공부하는가 : 네이티브 중심주의를 넘어서
2강- 인풋이 아니라 경험이다 & 영어, 오해를 풀고 새롭게 보기
3강- 문법, 형법에서 마법으로 & 어휘, 생각을 담고 세계를 넓히다
4강- 응용언어학자가 바라보는 언어와 사고의 관계
5강- 쓰기공부: 가로쓰기X세로쓰기X좁게쓰기

#삶을위한영어공부
#단단한영어공부

전국영어교사모임 자율연수 삶을 위한 영어교육

[강좌공지] 제가 전국영어교사모임과 함께 4회에 걸쳐 아래와 같이 자율연수를 진행합니다. 관심있는 선생님들이 계실까 하여 여기에도 공유합니다. (주변에 널리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교사와 연구자가 함께 궁리하는 ‘삶을 위한 영어교육’ 자율연수 신청>

1. 일시: 10월 17일~11월 7일 매주 목요일, 저녁 6시 20분~8시(100분) / 총 4회
2. 대상: (사)전국영어교사모임 회원 및 관심있는 비회원 교사
3. 참가비: 연구회원 8만원 / 정회원 9만원 / 비회원 10만원
4. <Early Bird 할인> 9월 30일까지 접수하시면 만원 할인!!
5. 입금계좌 : 하나은행 153-910003-53205 (사)전국영어교사모임

※ 영수증과 전과정 듣는 분께 이수증을 발급해드립니다.
※ 교육청 지정 특수분야직무연수가 아닌 자율연수입니다.
※ 교재 및 간단한 저녁 식사 제공합니다.
※ 일부 강의만 신청할 경우 강의 당 2만 5천원이며 할인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 매 강좌 선착순 20명이며 입금 순으로 마감합니다.

[강사 김성우]
성찰과 소통, 성장의 언어 교육을 꿈꾸는 리터러시 연구자로 사회문화이론과 비판교육학을 통해 영어교육을 새롭게 정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에서 응용언어학을 전공하며 제2언어 쓰기이론,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언어교육, 학술영작문 등을 가르쳤다. <영어교육과 IT>, <현대 영어교육학 연구의 지평>, <결정적 어휘력 콜로케이션> 등의 책을 공동집필했고, <어머니와 나>를 썼으며, <함께하는 영어교육>에 ‘영어교사를 위한 인지언어학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대학에서 ‘영어교육론’, ‘말하기 듣기 교수방법론’, ‘언어와 사고’, ‘영어교육 방법 및 교육공학’ 등을 가르쳐 왔으며, ‘영어논문쓰기 특강’을 통해 의학, 생물학, 경영학, 작업치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과 만나고 있다.

<강의 주제: 함께 궁리하는 삶을 위한 영어교육>

1강 네이티브 중심주의와 인풋만능주의 돌아보기 (10월 17일)

한국사회에서 영어공부의 궁극적 목표는 흔히 “네이티브처럼 영어하기”로 표현됩니다. 1강에서는 이러한 “네이티브 중심주의”에 숨어있는 생각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우리가 영어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진짜 이유에 대해 함께 궁리합니다. 아울러 인풋 가설의 뿌리가 된 크라센의 언어습득이론을 살펴보고, 한국사회에서 가지는 함의와 한계에 대해 논의합니다.

2강 어휘와 문법교수에 관한 새로운 생각들: 형법이 아닌 마법으로서의 문법 & 생각을 담고 세계를 넓히는 어휘(10월 24일)

전통적인 어휘문법 교수법의 한계에 대해 논의하고 새롭게 어휘와 문법을 공부하는 방법을 궁리해 봅니다. ‘틀리면 절대 안되는’ 문법이 아니라 의미를 표현하고 세계를 창조하는 마법과도 같은 문법, ‘영어-한국어’ 짝을 최대한 암기하는 어휘공부가 아니라 단어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고 어휘를 더 깊이 알아나가는 어휘공부에 대해 살펴봅니다.

3강 응용언어학자가 바라보는 언어와 사고의 관계 그리고 개념메타포 이론(10월 31일)

언어와 사고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 흔한 인식처럼 우리가 쓰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할까요? 3강에서는 사피어-워프 가설과 인지언어학적의 하위 분야인 인지메타포이론 중심으로 말과 생각의 관계에 대해 탐구해 봅니다.

4강 영작문 교수를 위한 세 가지 고려사항: 가로쓰기X세로쓰기X좁게쓰기(11월 7일)

영어공부에서 가장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쓰기공부, 어떻게 해야 할까요? 4강에서는 장르이론(genre theory)의 관점을 중심으로 쓰기공부를 위한 원칙들에 대해 살펴 봅니다. 아울러 전체 강좌를 맺으면서 “삶을 위한 영어공부”의 모습에 대해 함께 논의합니다.

강좌 신청 링크: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dVMKUpdQDsAdBCrdNv8EF4SOD6gvh8nfZg8fj_Vkuxb6_7BQ/viewform?fbclid=IwAR339VGSTJhGZojx3bSNf79NYuMuTuqXKoEnjKCc-f87sdS-Buv6D_Hmr18

글과 말 중에서

(글과 말 중에 어느 것이 더 중하다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굳이 둘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언제든 말 잘하는 사람보다 글 잘 쓰는 사람을 택할 것이다. 물론 말과 글의 영역은 어느 정도 겹친다. 하지만 좀더 긴 세월을 담아 한 사람의 경험과 지식을 보여주는 것은 글 쪽이다. 말에서 글로 가는 길은 직선이 아니며, 글을 고치는 수고는 말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정말 좋은 글을 쓰는 사람에겐 나도 모르게 신뢰를 안겨주게 된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나는 유튜브랑 안맞는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는 절망감이.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서울대학교 생협 노동조합 파업의 변

Posted by on Sep 24, 2019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오후에 잠시 대학본부에서 농성을 하고 계신 전국대학노조 서울대지부 생활협동조합 노동자분들을 찾았습니다. 본대는 학내 선전전을 나가셨고 몇몇 분들이 자리를 지키고 계셨습니다. 자리를 정리하느라 분주해 보이셔서 긴 이야기를 들을 형편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5일째 파업에 참여중인 노동자 분들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파업에 나서며 발표했던 <파업의 변>을 받아왔습니다.

제목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치고 올라왔습니다. 파업의 이유에는 임금과 복지후생, 공간문제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제목으로 뽑은 것은 “최소한의 존중을 얻고자”였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중에 대한 요구에서 파업이 시작된 것입니다.

“저희의 초봉이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1,715,000원입니다… 10년차 직원에게 3%를 올려서 206만원 달라는 요구를 학교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기본급. 10년을 일해도 200이 되지 않는 급여를 받아야 하는 상황. 협상의 결과 연봉이 도리어 내려가는 현실. 노조는 2003년 네이처의 논문을 인용하며 ‘원숭이에게 오이만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아프고 또 화가 납니다.

대학측의 성실한 교섭으로 생협 노동자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길 바랍니다. 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이, 적절한 휴식시간이 확보되길 빕니다.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급진적 평등이 아니라 최소한의 존중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았으면 합니다. 교육기관의 반교육적 노동관행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길 빕니다. 무엇보다 한 커뮤니티 안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동등한 인간으로 함께 살아가길 원합니다.

관련보도: 30년 만에 문 닫은 서울대 학생식당…’이유 있는 파업’
https://www.youtube.com/watch?v=HXMLqI4czWA

마침표를 찍다

Posted by on Sep 22, 2019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마침표를 찍는다”는 표현이 있다. 일을 마무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작 말의 세계에는 ‘마침표’가 없다. 말은 단어의 연쇄로 이루어지며, 더 이상 단어가 발화되지 않을 때 이것을 해당 발화의 종료로 여긴다. 마침표를 찍는 행위는 말을 글로 옮길 때 태어나는 ‘부재의 증거’이지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떤 면에서 마침표는 자신의 본질(부재)을 철저히 배반하는 구두점이다.

마침표를 잘 찍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더 이상 어떤 말도, 생각도, 행동도 이어가지 않는 것이 가장 훌륭한 마침표가 된다. 침묵 속에서 스러져가는 모든 존재는 이것을 잘 보여준다. 그들에겐 ‘마침’이 있지만 마침’표’는 없는 것이다.

마침표 없는 공백을 사랑하기란,
선언하지 않고 살아내기란 얼마나 힘든가,
가끔 생각한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인지언어학 이야기 52: 인지문법의 세계 (관사 마지막 이야기)

 

“What’s this?”
“Cat”

관사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뼈아프게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다음과 같이 단어를 외웠다는 사실입니다.

고양이 – cat
손목시계 – watch
양 – sheep
책상 – desk
물 – water
사과 – apple

이쯤 되면 제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눈치채셨을 겁니다. 이런 식의 짝짓기에서는 명사 앞에 관사를 붙이지 않습니다. 그냥 단어와 한국어 짝이 나열되는 식이죠. 그 결과 셀 수 있는 명사와 셀 수 없는 명사의 구분이 없이 머릿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명사를 처음 배울 때 불가산과 가산의 개념이 자리잡을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양이 그림을 두고 “What is this?” 혹은 “What is that?”와 같이 물어볼 때에는 “(It’s) a cat.”과 같이 <관사+명사>의 짝이 보다 적절한 답변입니다. “What’s this?라고 했는데 그냥 “Cat”이라고 한다면 틀렸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어색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관사와 명사가 어떻게 짝을 이루는지 살피면서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통수단의 개념화, 그리고 관사

교통수단을 표현할 때 <by + 무관사 명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by bus, by train, by car, by plane, by bicycle” 등의 표현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동사와 같이 쓸 때는 조금 복잡합니다. 대표적으로 take와 같이 쓰이는 bus/subway/taxi 를 생각해 보시죠.

a. I take a bus to work.
b. I take the bus to work.

특별한 문맥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위의 두 문장은 특별한 문제없이 바꾸어 쓸 수 있습니다. “나 버스 타고 일하러 간다.”의 의미로 말이죠. 굳이 차이를 찾는다면 bus 앞에 정관사 the를 쓴 b의 경우가 ‘다른 교통수단이 아니고 버스임’ 혹은 ‘내가 늘 타고 다니던 그 버스’를 조금 강조한다는 정도인데요. 이것이 두 문장의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진 못합니다. (참고로 두 원어민 화자에게 물어봤더니 한 친구는 a를, 다른 친구는 b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데이터로서 두 명은 너무 작은 숫자이니 무시할 만하지만, 원어민들의 직관이 반대라는 점이 흥미로왔습니다.)

이에 비해 subway의 경우는 확연히 다릅니다. 부정관사는 적절하지 않고 정관사만 가능하죠.

c. I take a subway to work. *
d. I take the subway to work.

별표는 문법적으로 옳지 않음을 이야기합니다. 버스의 경우에는 “여러 교통수단 중 하나로서의/특정한 노선을 지나는 버스(the bus)” 혹은 “여러 버스 중 하나(a bus)”를 상정할 수 있지만, 지하철의 경우에는 “시스템화 된 교통수단으로서의 지하철(the subway)”으로만 개념화됩니다. 여러 개 중 셀 수 있는 개체로 개념화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당연히 a subway, two subways 등은 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고로 subway의 경우 아무 것도 안붙이고 무관사로 쓰는 경우도 종종 발견됩니다. 다만 a subway라고 쓰는 경우는 좀처럼 없습니다.)

Bus, subway, taxi에 대한 개념화의 차이

Taxi는 조금 애매한 듯합니다. Bus의 경우 the bus/a bus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고, subway의 경우에는 정관사가 동반되거나 아예 생략되기도 하는데요. Taxi는 예외적인 상황이나 특정 문맥이 없다면 기본적으로 부정관사 a가 필요합니다. 일부가 “the taxi”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전통적인 T/F 문법 문제라면 take a taxi만이 정답으로 인정되겠지요.

이같은 관찰을 종합하여 교통수단에 대한 관사사용을 개념화(conceptualization)라는 관점에서 정리해 봅시다. 우선 사람들은 택시를 셀 수 있는 개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세상에 수많은 택시들이 있고 그 중 하나를 잡아탄다는 생각입니다. 이에 비해 지하철은 하나의 시스템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하철 열차를 여러 지하철 열차 중 하나로 개념화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버스는 그 중간 어디쯤엔가 위치한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복잡하지만 아예 패턴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관사공부의 패러독스

몇 차례의 연재를 통해 인지언어학의 관점에서 관사의 용법을 살펴보았습니다. 교사들이 보기에도 쉽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과 관련해 관사에 대해 강의를 할 때 종종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종종 혼동도 되고 틀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공부하기 전보다는 정확성이 분명히 좋아졌습니다. 그거면 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관사 학습에는 일종의 패러독스가 존재합니다. 영어에서 가장 빈번히 나오는 품사 중 하나가 관사이고,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말뭉치(corpus)를 살피면 the가 늘 빈도수 1위를 차지한다는 점입니다. A/an의 빈도도 상당히 높습니다. 이렇게 보면 관사의 바다 속에서 관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등잔 밑이 어두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죠.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영어논문쓰기 강의를 하면서도 관사가 가장 어렵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빈도수가 높다고 개념적으로 쉬운 것은 아닙니다. 관사는 생긴 것도 단순하고 종류도 3가지(정관사, 부정관사, 무관사) 밖에 되지 않지만 개념적으로 명쾌히 이해하기엔 영문법에서 가장 복잡한 항목 중 하나입니다. ‘개념화의 차이에 따라 관사의 활용이 달라진다’는 인지언어학의 기본 개념을 떠올리면서 다양한 맥락 속에서 관사를 살피는 공부를 꾸준히 해 나갈 때 이런 한계를 조금씩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매일 사람들을 접하지만 관계가 가장 어렵습니다. 관계를 두루두루 살피고 깊이 성찰하지 않는 한 관계에 대한 지혜는 자라지 않을 듯합니다.

학술적인 꿈 (개꿈?)

매우 학술적인 꿈을 꾸었다.

MT 날이었다. 대학원에 입학한 친구들과 버스에 올랐다. 1박2일의 학술MT였는데 주제는 “논문쓰기의 모든 것”이었다. 오후, 밤, 오전까지 빼곡한 세션들을 박사과정 고참들과 교수들이 하나씩 맡았다. 나도 ‘영어로 논문쓰기’ 세션을 맡아 진행하기로 했다.

분위기가 그리 엄숙하진 않았다. 참가자들은 밝은 표정이었다. 어떻게든 서로 도우며 즐겁게 연구해 보자는 분위기였다. 세션이 시작되고 내 차례가 왔다. 앞에 나가자 마자 이 생각이 들었다.

‘음 그런데 이게 실제 이루어질 리가 없잖아. 꿈이네, 이거.’

그리고 잠에서 깼다.

강사들에게 방학 중 임금을 준다는 말에 혹했는데, 듣고 보니 그건 용돈도 안되는 돈이었다. 과 조교분과의 전화 대화가 아직도 생생하다.

“OO이요? 그럼 거의 안주는 거네요.”
“네…”

화나고 슬펐다. 4대 보험이랑 꼴랑 이 돈 때문에 그렇게 강사들을 쫓아낸 건가. 방학 중 임금이라고 말을 하지 말던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말이다.

방학 때 업그레이드된 <영어로 논문쓰기> 강의나 해야겠다. 꿈 속에서는 망했지만 현실에서는 잘해야지.

타자화하지 않고 타자를 받아들이기

타자화하지 않고 타자를 받아들일 때 우리 자신도 타자의 위치에 놓일 수 있다. 타자들이 섞여있는 세상은 중심이 없는 변방의 세계로 ‘나그네들간의 환대’를 가능케 한다. 어쩌면 리터러시교육의 핵심 과제는 ‘타자로 남을 용기’에 관한 문제일지 모른다. #삶을위한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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