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둘째 주

Posted by on Aug 7, 2017 in 단상,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물리적인 시간으로만 보자면 시간강사는 자유로운 편이다. 강의와 학사일정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일정을 스스로 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모든 업무가 무한정 늘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 강의가 끝나면 바로 다음 강의 준비를 시작해서 수업 시작 1분 전까지 몰아친다. 강의를 마치면 바로 다음 강의 고민을 시작한다. 학기 내내 이 패턴이 반복된다. 주말도 예외는 아니다.

강의자료를 미리 읽었다고, 대략의 개요를 짜 놓았다고 해결되진 않는다. 내가 그닥 머리가 안좋은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성향의 문제다. 그래서일까.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자신을 갉아먹는 바보같은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학기 숨쉴 틈 없는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면서 이런 강박(?)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이 굳어졌다. 여전히 강의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 삶의 균형을 깨뜨릴 정도라면 언젠가 큰 문제가 되어 나를 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강의자가 성장을 멈추면 학생들이 성장할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건강에 대한 걱정 또한 기우만은 아니다. 축적되지 못하는 경험에 대한 아쉬움도 커졌다. 별것도 아니지만 그것 밖에 없는 인생이니까.

요즘 비판적 응용언어학에 관한 이야기를 한 친구와 나누고 있다. 돌아온지 만 5년 만의 진지한 학술적 대화다. 한 분야를 오래 고민한 이들과의 대화는 학생들에게 배우는 바와는 조금 다른 결의 배움을 가능케 한다. 선생이 아닌 벗의 위치에서 배울 수 있음이 즐겁고 고맙다.

돌아보니 자신감은 사라졌으나, 이를 긍정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어리숙하고도 위태로운 긍정.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마음. 허나 자신감을 그리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나쁘지 않은 세월이었다.

7월도 다 보내지 못했는데 시작된 8월 둘째 주. 함께하는 이들 덕에 힘을 내어 발걸음을 내딛는다. 더위가 곧 물러가고 “아침 저녁으로는 그래도 좀 선선하네요”라는 말이 들려왔으면 좋겠다.

뜻밖의 방문

Posted by on Aug 5,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방학때 시간 되면 논문쓰기 세미나나 한번 할까요?”라고 말을 던진 건 지난 학기 말. 방학 중에 얼굴을 보자거나 공부하자는 말은 대개 까맣게 잊혀진다. 이번엔 달랐다.

함께 사회언어학과 언어교육에 대해 고민했던 다섯 명의 대학원생, 아니 예비 연구자들이 찾아왔다. 초압축 버전으로 논문쓰기 특강을 했다. 저녁식사와 차를 배경으로 펼쳐진 수다 또 수다. 진지와 유머, 아픔과 희망을 가로지르는 대화는 더없는 축복이다.

돌아오는 길. 서로 고마울 수 있어 고마운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2017.8.4.

Information Cascade와 학습자

Posted by on Aug 3, 2017 in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아랍 혁명의 파도 속에서 통치자들이 가장 신경썼던 것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의견과 정보, 사건 동영상 등이 자유롭게 흐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소위 “Information Cascade”(정확한 번역어를 모르는데 ‘자신의 생각이나 인지와 상충되는 면이 있더라도 특정 정보에서 관찰되는 행동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독재에 대항하는 정치혁명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지만 한국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초중고생들을 의사결정자로 보자.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 다양한 결정을 내린다. 연령이 낮을수록 부모가 제공하는 정보가 큰 영향을 미친다. 이후 친구들과 학교 선생님들, 또 학원 선생님들이 전달하는 정보를 지속적으로 접하며 여러 가지 판단을 한다.

학생들은 어떤 정보에 노출되는가? 정보를 필터링하고 배분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지역별, 사회경제적 지위별로 정보의 양과 질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정부와 기업 등이 갖고 있는 정보, 교육과정에 들어가는 정보, 각급 학교 및 개별 교사들이 갖고 있는 정보와 학생들의 정보는 얼마나 같고 또 다른가? 새로운 미디어 환경과 MOOC 등의 교육 플랫폼이 학습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기존 입시제도와 공교육, 사교육은 어떤 정보 플랫폼 위에서 돌아가는가?

정보라는 관점에서 학습자를 바라보자. 올바른 정보에 의한 합리적 결정(informed decision)이 가능한 구조인가? 교사와 학부모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겠지만, 현 상황의 정보 위계에서 가장 ‘바닥’에 위치하고 있는 건 학습자 아닐까? ‘학습자의 주체성’ 타령을 하기 전에 그들이 발딛고 설 수 있는 튼튼한 정보 플랫폼을 구축해야 하는 것 아닐까?

간단히 말하면, 교육 시스템을 정보의 선별, 통제, 공유 등의 관점에서 보면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늘 그렇듯 답은 없지만 계속 안고 가야 할 질문.

대화

Posted by on Aug 2,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대화 [對話] 서로 마주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대화의 기술’은 대개 말하기(話) 만을 다룬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대함(對)일 지도 모른다. 마주봄 없이 말하는 사람들 속에서 말은 거처를 잃고 허공에 흩어진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인간을 정의한다면?

Posted by on Aug 1,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인간에 대한 정의: “가장 광범위한 맥락 하에 놓이는 존재”

“인간은 OO적 동물이다”라는 간명하지만 별 의미 없는 정의들이 있다. 사실 정의라기 보다는 강조하고 싶은 면을 부각시키는(‘수사학’이라기 보다는 ‘말장난’에 가까운 의미의) 레토릭에 가깝다. (호모 루덴스라고 하는데 놀 시간이 없어. 호모 파베르? 뭐 고장나면 눈물을 머금고 바로 수리기사님을 부르지.)

인간이 특별히 잘나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굳이 인간을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 ‘정의’해 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지 잠시 생각해 봤다. 딱부러진 답은 나오질 않았지만, 쓴 시간이 아까워 조금 억지스럽게 짜낸 답은 이렇다.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 복잡한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 존재이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종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두뇌용량의 증가 및 문명의 발전 등으로 인해 다양한 사회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기술적 세계를 창조하고, 이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제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 복잡하게, 다양한 세계와 조우하며 살아간다. (<비밀의 숲>의 여운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으나, 세상에서 고작 몇 명 읽을 논문을 붙잡고 늘어진 1인. 오늘은 강력한 더위의 충격으로 말 그대로 몸이 늘어난 듯하다. 세기말에는 데카당스에, 세기초에는 새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에 고뇌한다. 정말 참 내 별 걱정 다하고 산다.)

나의 사고와 행동은 생물학적 종으로서의 인간 역사에 기반한다. 한국사회의 특유한 역사에서, 서울이라는 시공간이, 부모형제를 비롯 인생길에서 만난 적지 않은 이들이 나의 뇌를 만들어 왔다. 나아가 읽고 본 책과 영화 등에서, 여행에서 보고 느낀 바에서, 미디어를 통해 접한 역사적 사건에서, 다양한 신화와 이야기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영향받고 있다.

즉, 우리 모두는 각자가 태어나서 자란 환경에 따라 수많은 요인들의 영향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받고 있다. 우리의 두뇌-몸에 새겨진 기억은 인지, 감정, 판단, 행동, 의지에 영향을 준다.

우리는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데 있어서 광범위한 맥락 하에 놓인 존재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시간축, 동시대 다른 존재들과의 교류, 밤하늘을 바라보고 그 너머를 응시하는 우주적 상상력의 영향을 모두 받는다.

결국 굳이 인간을 ‘정의’해보라 한다면 “누구보다 많은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 존재” 즉, “가장 광범위한 맥락 하에 놓이는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무언가 할 수 있음을 특성으로 갖는 존재가 아니라, 거대한 시공간 하에 놓여지는 존재 말이다.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정의 아니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부각시키는 얄팍한 말장난이라고요.)

 

‘다름이 아니라’와 글쓰기 교육

“다름이 아니오라”는 메일에서 피해야 할 어구로 종종 지적된다. “다른 게 아니고” 같은 표현들은 가급적 피하라는 것. 생각없이 나오는 군더더기 표현으로 정보가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저 표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다름이 아니오라”는 메일의 내용이 아니라 문화적 사고패턴에 대한 정보를 담기 때문이다. 내용상 필요없을 지 모르지만 문화적으로는 통용되는 메시지 전달의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메시지가 아닌 메타-메시지의 영역이다.

유난히 ‘있잖아’, ‘그거 알아?’ 등의 표현을 자주 쓰는 친구가 있다. (그런 친구 하나쯤은 다 있지 않나.) 이들은 그 자체로 특정 내용을 담고 있진 않다. 그래서 이런 말장난을 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실행에는 옮기지 않는다. (대신 써본다.)

“있잖아.”
“응 있지. 분명 있어.”

“그거 알아?”
“그거? 이건 아는데.”

“있잖아”가 전달하는 내용은 없다. 하지만 화자가 “있잖아”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청자는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있잖아’라는 말을 짜증스러워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오랜 기간 특정 문화 속 대화를 통해 사고구조를 형성해온 사람들은 “있잖아”를 듣는 순간 뭐가 있는지 순간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다름이 아니오라”는 상대방이 메시지를 읽기 전 짧은 준비를 할 여지를 준다. 뒤에 나오는 내용이 상대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하거나, 업무를 요청하거나, 불쑥 질문을 던지거나 하는 일일 수 있다는 신호(signal)다.

그렇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일은 무례하게 비춰질 위험을 무릅쓰는 꼴이다. “다름이 아니오라”는 진부하고 정보성도 떨어지지만 이런 위험을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하는 전략으로 유효하다. 겨우 두 단어지만 말이다.

“다름이 아니오라”를 쓰지 말라고 할 때 “안좋으니 쓰지 마세요”라고 말하기 보다는 이 구절이 여전히 우리 곁에서 떠나지 않는 문화적, 인지적 이유를 설명하면 어떨까? 안좋으니 쓰지 말라고 하기보다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나눠보면 어떨까?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느냐고,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고 핀잔만 듣게 될까?

하지만 때로는 ‘어쩌라는 것’ 보다는 ‘그렇다는 것’이 더 나은 글쓰기 교육일지 모른다. ‘~하라’ / ‘~하지 말라’만 난무하는 글쓰기 교육은 테크닉을 주고 생각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다름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Photo by Dung Anh on Unsplash

꼭 뵙고 싶습니다!

Posted by on Jul 27,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꼭 뵙고 싶습니다.”

이렇게 설레는 멘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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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신청 정원 초과시 학생들의 메일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강사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거의 모든 메일에 부사 ‘꼭’이 등장한다. 위의 문장도 어느 학생의 메일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다.

내가 수업을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학기 말이면 그런 말은 나오지 않는다. 가끔 ‘꼭 다시 연락하겠다’는 친구들도 있지만 인연을 이어가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연락하고 만나고 지내는 학생들은 큰 인연이지 싶다.

이렇게 2학기가 성큼 다가왔다. 학생들을 보고 싶지만 방학을 보내고 싶진 않다. 딜레마는 언제나 시간이 해결해 준다.

현재란 무엇인가?

Posted by on Jul 25,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현재’는 흔히 생각하듯 ‘물리적 순간’이 아니라, 특정 시점에서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 100% 확실하게 예측 가능한 사건들의 집합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아무말 대잔치

Posted by on Jul 21, 2017 in 강의노트,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1. Literally는 ‘말 그대로’이지만 비유적으로 사용될 때가 더 많은 듯하다.

예: “It literally killed me.” (<-안죽고 살아서 신나게 말하고 있음.)

2. ‘아무말 대잔치’를 제목으로 한 글들은 대개 읽을만하다. 아무말 대잔치는 진지하게 쓴 글 중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3. 유명인의 아무말 대잔치는 아무댓글 대축제로 급속히 발전한다.

4. “진실로”를 반복 사용한 수사 중에 예수의 말씀 빼고 쓸만한 얘기가 별로 없는 거 같다.

5. “It is true but…”, “I’m sorry but…” 등의 어구에서 “but”이 나오는 순간 앞의 ‘true’와 ‘sorry’의 가치는 땅에 곤두박질친다.

But은 진실이나 미안함보다 힘이 세다.

6. 내일 지방 강의가 있다. 진짜로 진짜로 자러 가야겠다.

새학기 준비

Posted by on Jul 20, 2017 in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고 흥미나 관심, 수준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16주 수업의 개요와 읽기자료, 과제 및 평가방법까지 모두 정해야 한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 두어 명의 중학생 친구들과 3년 여를 만나면서 제일 좋았던 것은 그날 그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 물론 학생수가 적었다는 게 컸습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상호 신뢰의 관계를 쌓을만한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 대학에서의 만남은 대개 강의계획서와 함께 시작됩니다. 첫 시간에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은 배움의 내용과 방향이 아니라 과제와 시험, 평가 기준에 대한 것입니다.
 
. 현재의 대학교육 체제에서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 하지만 자연스럽다는 게 바람직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 빈틈없이 짜여진 강의요목과 완벽한 변주로 흘러가기 – 이 둘 사이 어딘가에서 중심을 잡아야만 하겠습니다.
 
. 아직도 서툰 것은 이런 접근법을 ‘객관적’이어야만 하는 상대평가 구조에 통합하는 일입니다.
 
. 이번 학기에도 새로운 강의가 많습니다. 얕디 얕은 응용언어학/영어교육학 지식의 팽창은 계속되겠네요.
 
. 고민한다고 될 일이 아닌데 고민이 됩니다.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게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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